삼성그룹 계열사의 전산 업무를 관리하는 회사로 시작한 삼성SDS는 이제 여러 기업에 다양한 ‘IT 서비스’를 제공하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2012년엔 ‘물류사업’으로까지 사업범위를 확장하며,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주목을 받는 회사로 올라섰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반영하듯, 삼성SDS 정유성 사장은 홈페이지 인사말을 통해 “2020년 매출 20조, 글로벌 IT기업 톱10 진입을 목표로 ‘Vision2020’을 이루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2020년을 향해 뛰어가야 할 회사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건 지난 5월 무렵입니다. 증권가 정보지, 이른바 ‘찌라시’를 통해 삼성SDS가 회사를 분할할 거란 소문이 돈 겁니다. 소문은 점점 구체화하더니, '삼성SDS가 IT 서비스/물류사업 중 ‘물류사업’을 떼어낼 것이다'란 보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한국거래소는 삼성SDS에 이 소문이 사실인지 조회공시를 요청했고, 삼성SDS는 “물류사업 분할을 추진 중”이라고 공시했습니다.
삼성SDS가 회사 분리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자, 소액주주들은 발끈하고 일어섰습니다. 소액주주들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의견을 나누고, 삼성SDS 본사를 두 차례나 항의 방문했습니다. 또, 오는 19일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항의방문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항의방문에 나선 소액주주 중 상당수는 삼성SDS 직원이거나 직원 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몸담은 회사를 항의방문했을까요? 그리고 삼성SDS는 왜 회사를 나누려고 할까요?
● 회사의 사업경쟁력 강화
삼성SDS가 밝힌 물류사업 분할의 ‘표면적인 이유’는 사업 경쟁력 강화입니다. 그동안 주력 사업이었던 IT 사업보다 뒤늦게 시작한 ‘물류사업’이 성장세가 두드러져, 아예 이 ‘물류산업’을 별도로 분리해 키워가겠단 겁니다.
사업별 지난해 매출액을 보면 ‘IT 사업 매출액’은 5조 2,475억 원, ‘물류사업’은 2조 6,060억 원으로 IT 사업의 매출이 2.4배 정도 더 많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시작한 물류사업은 다른 계열사의 해외 물류사업을 상당 부분 이관해 받으며, 불과 5년여 만에 매출이 2조 6,000억 원에 이를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매출액만 놓고 봐도 IT 서비스 1조1,250억 원, 물류사업 6,200억 원으로 격차가 1.8배로 좁혀졌습니다. 한마디로, 회사를 먹여 살릴 미래 먹을거리는 IT 서비스가 아닌 ‘물류사업’으로 바뀌었단 겁니다.
이에 대해 삼성SDS 박성태 경영지원실장(전무)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선인장이 어느 정도 자라면, 더 크도록 두 군데 떼어서 심어놔야 한다. 분할을 통해 더 큰 선인장이 될 수 있도록, 두 개 선인장을 만들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물류사업을 확실히 키우려면 IT 회사 이미지를 갖고 가는 것보다는 따로 떼어내 별도로 키우는 낫다는 겁니다. 특히, 내년이면 삼성SDS가 갖고 있는 삼성관계사 물량도 거의 다 소화하는 만큼, 지금부터는 독자 생존을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삼성SDS ‘물류사업’, 삼성물산으로 합병 유력
이런 삼성SDS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여, 분할작업이 안정적으로 잘 이뤄졌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럼, 삼성그룹은 분할한 ‘물류사업’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문가들은 이 ‘물류사업’은 삼성물산으로 합병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삼성SDS의 ‘물류사업’을 떼어내 ‘삼성물산’에 붙일 의도란 겁니다.
(※ 이에 대해, 삼성은 삼성SDS 분할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물산과 전자로의 합병 등 추가 계획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라고 할 수 있는 삼성물산은 지난 2014년 건설-리조트(에버랜드)-패션사업(제일모직)-상사, 이렇게 4개 회사가 합쳐지며 거대기업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삼성은 왜 이렇게 거대한 기업에 굳이 ‘잘 나가는’ 물류산업까지 붙여주려고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삼성물산의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무리한 합병’이란 비판에도, 삼성그룹은 합병을 결국 성사시켰습니다. 당시 삼성이 내세운 합병 명분은 ‘시너지 효과’였습니다. 각기 다른 성격의 4개 기업이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낼 거란 게 합병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어도 지금까진 삼성이 내세웠던 ‘시너지효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삼성물산은 통합 후 첫 분기인 지난해 4분기 89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더니, 올 1분기엔 무려 4,348억 원으로 적자 폭이 훨씬 더 커졌습니다. 1분기 만에 적자 폭이 5배나 늘어난 겁니다. 특히, 전체 매출에서 40%를 차지하는 ‘건설 부문’의 적자(4,150억 원)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4개 회사 중 상사와 패션부문이 흑자를 내긴 했지만, 유가 하락과 내수부진 등으로 영업이익은 각각 20억 원과 7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시너지 효과를 얘기하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실적입니다. 게다가, 수주 환경 악화 등으로 당분간은 실적이 크게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날개 없이 추락하는’ 삼성물산의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특단의 조치로 ‘삼성SDS의 물류사업’이 선택된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실제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삼성물산이 삼성SDS의 물류사업을 가져오면, 상사부문이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삼성SDS의 물류사업은 오는 2020년까지 7조~8조 원대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인데, 여기에 상사가 보유한 네트워크까지 활용하면 매출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단 겁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주마가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삼성SDS 최대 주주인 삼성전자가 이렇게 새로 생긴 ‘물류 신설법인’의 주식을 삼성물산으로 넘기고, 그 대가로 삼성물산이 삼성SDS 지분 일부를 삼성전자에 넘겨주면 대규모 자금 없이 손쉽게 합병할 수 있습니다. 홀로 남게 되는 삼성SDS의 ‘IT 사업’은 삼성전자에 흡수되거나 별도의 자회사로 분리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최종 목적지는 이재용 부회장 지분 확대
조금 복잡하지만, 삼성그룹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추정해 보겠습니다. 먼저, 삼성SDS가 인적 분할되면, 이 부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 지분 9.2% 만큼 분할된 ‘물류사업’ 회사 지분도 9.2%를 가지게 됩니다. 이후 이 ‘물류사업’ 회사가 삼성물산으로 합병되면, 이 지분은 다시 삼성물산 주식으로 전환됩니다.
삼성SDS 주식이 삼성물산 주식과 어떤 비율로 교환될지 알 수 없지만,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이 늘어나는 건 분명합니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이미 삼성전자 지분 4.12%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도 동시에 키울 수 있습니다. 합병 후 삼성물산이 삼성SDS의 현금 재원을 활용해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기업, 증권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시가총액이 큰 삼성전자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고,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다시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재편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결국, 지배구조 관점에서 보자면, 삼성그룹 사업재편 방향은 '삼성물산 기업가치 제고'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확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복잡한 얘기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면, 1) 삼성물산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사업이 없어 주가 상승요인이 부족하다. 2)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사업을 뭐라도 가져와야 할 상황인데, 3) 때마침 그 대상으로 ‘삼성SDS 물류사업’이 낙점됐다는 겁니다. 이번 기회에 애물단지가 된 건설과 수익성이 높지 않은 리조트와 패션부문 대신, 성장 가능성이 큰 ‘물류 사업’ 회사로 업종을 바꾸겠단 겁니다.
● 풀어야 할 숙제
문제는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쪼개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단 점입니다. 회사 분할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겁니다. 이들의 반대는 과거 삼성SDS가 걸어온 흐름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상장 등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다른 계열사로부터 물류사업을 떼어내 삼성SDS 붙여 덩치를 키우더니, 이제는 다시 반대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충분한 설명도 없이 회사 쪼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이에 대해 삼성측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관계사의 물류를 대신해 주는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기능을 수행하여 사업을 확대해 온 것이며, 분할 이후 합병 등 추가계획은 없다고 밝혔기에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대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소액주주 상당수는 삼성SDS 직원이거나 직원 가족들로서, 2020년까지 ‘세계 톱10 IT기업’으로 키우겠단 비전을 투자했는데, 이제 와서 그 믿음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고 비판합니다. 그룹의 필요에 따라 회사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 것은 오히려 ‘삼성 최고위층’이었다는 겁니다.
이와 별도로, 전문가들은 법적으로도 분할과정에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상법 제399조엔 “이사가 회사의 사업부문을 분할 매각하는 것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것임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강행할 때 임무 해태(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는 일)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여지가 있다. 주식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소 제기를 청구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삼성SDS의 주주들이 앞으로 물류부문 분할 매각 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면 상법 위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겁니다.
아울러 분할된 물류부문을 총수 일가나 삼성 계열사에 헐값 매각할 때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삼성은 과거 주식 헐값 매각 소송으로 대법원에서 패소해, 전·현직 임원들이 회사 돈을 물어준 적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2005년 10월, 당시 박원순 변호사 등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이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20억 원을 회사(삼성전자)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삼성물산 출범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회사의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 가격이 낮게 평가됐다는 2심 판결까지 나온 상황에서, 삼성이 무리하게 분할·합병·사업매각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또, “삼성SDS에 대한 배임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어 주주 동의 없는 강행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삼성SDS의 분할추진이 애초 밀실에서 이뤄진 데다, 주주들에게 타격을 주는 꼼수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습니다. 특히, 실제 공시 전 분할 정보가 알려진 데다 공시를 통해서도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증권사 한 임원은 “대주주의 지배구조를 위해 상장사 사업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건 후진적인 모습이다. 일가 지분율이 높은 삼성SDS에 ‘물류사업’ 일감을 몰아주다가, 이젠 반대로 사업 경쟁력을 내세워 줬던 걸 다시 떼는 건 결코 선진적인 처사는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 삼성SDS는 분할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검토가 끝나 기전에 외부에 알려지게 된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소액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3차례에 걸쳐 면담을 실시하였고, 열린 자세로 주주들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불편한 소통방식
분할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초, 한 증권사는 '주주는 인질이 아니다'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삼성SDS가 시장과 소통하는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삼성SDS가 공식 기업설명활동(IR) 채널이 아닌 언론 등에 내부정보를 흘려 주가하락을 가져오고 주주들에게 손실을 안겼단 겁니다.
보고서를 쓴 연구원은 분할 혹은 합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통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주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 책임 있는 관계자 발언이나 공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공개되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의뭉스러운 태도는 결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과는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회사를 나눌까?” 시장은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이고 선명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삼성SDS가 가는 길을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매의 눈’으로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