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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칼로 스탠턴' 그리고 '개돼지'

[취재파일] '장칼로 스탠턴' 그리고 '개돼지'
어제 MLB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을 차지한 강타자는, 2010년 데뷔 당시 이름이 마이크 스탠튼이었다. 2012년, 푸에르토리코 혈통임을 드러내기 위해 등록명을 'Giancarlo Stanton'으로 바꿨다. 그 이후, 한국 야구팬들과 언론 매체들은 이 선수의 이름을 한글로 '지안카를로 스탠튼'이라고 표기했다. 

4년 넘게 아무 탈 없이 지안카를로 스탠튼으로 호명되던 이 선수는, 올해 갑자기 공식 한국어 표기가 바뀌었다. '장칼로 스탠턴'으로, 현지 발음과 최대한 비슷하게 표기해야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립국어원이 뒤늦게 팔을 걷어붙인 결과다. 
'장칼로 스탠턴'이 '지안카를로 스탠튼'보다 'Giancarlo Stanton'과 얼마나 더 음운학적으로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다수 매체들은 아직 차마 '장칼로'를 쓰지 못하고 있다. 기사를 읽을 야구팬들이, '장칼로'를 얼마나 뜬금없다고 느낄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아예 누군지 모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칼로'를 보고 '지안카를로'를 바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으니까. 
국립국어원의 '현지 발음과 최대한 비슷하게'라는 원칙에는 예외 조항이 있다. 외래어 표기법 제5항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으로 존중한다'고 적시돼 있다. 가령 Boston을 '바스튼'이라고, Seattle을 '씨애를'이라고 적지 않는다는 거다.

국립국어원의 눈에는 '지안카를로'는 '굳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왜일까? 지안카를로라고 부르고 써온 팬과 언론의 4년이라는 시간은 뭐란 말인가? 굳이 이 4년을 무시하면서, 언중이 쓰는 것과 다른 표기를 '표준'으로 뒤늦게 들이밀어야 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장칼로'를 따라가야 하는 매체들과, '지안카를로'가 눈과 입에 익은 팬들이 병존하면서, 같은 사람의 이름이 다르게 적혀 생기는 혼란을 굳이 초래해야 할까?

해외 스포츠 선수들은 선수 생활 동안 한국에서 여러 차례 '강제 개명'된다. 주로 큰 국제대회를 앞두고 '집단 개명'이 이뤄진다. 

네덜란드의 '반'씨 축구 선수들은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모두 졸지에 '판'씨가 됐다. '반 바스텐’은 '판 바스턴'으로, '반 니스텔루이'는 '판 니스텔로이'로, '반데사르'는 '판데르사르'로 변신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데이빗 오티즈'는 2013년 WBC를 앞두고 '다비드 오르티스'로 개명됐다가, 올해 다시 '데이비드 오티스'로 돌아왔다. 명 외야수 앤드루 존스는 2013년 WBC에서 '안드뤼'로 개명됐다. 그 대회에서 네덜란드의 3루수로 뛴 산더르 보하르츠는 오늘 잰더 보가츠라는 이름으로 생애 첫 MLB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어이없는 무더기 개명 사태가, '스포츠팬'이라는 언중을 깡그리 무시한 '엘리트주의'의 전형적 사례로 느낀다. '개돼지 사태'와 본질적으로 같은 사례로 보인다.

리우 올림픽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개명 태풍'이 몰아칠까. 혹시 우사인 볼트의 이름이 영어식으로 '유세인'으로 둔갑하는 건 아닐까.
덧붙여, 요즘은 슬럼프에 빠져있지만 한때 촉망받는 여자 테니스 유망주였던 'Eugenie Bouchard'라는 선수가 있다. 표기에서 느껴지듯,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이다. 해외 중계방송에서는 당연히 성을 프랑스식에 가깝게 발음한다. '부샤 -ㄹ' 혹은 '부샤-ㅎ'처럼. 주니어 시절부터 이 선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기사에 '부샤르'라고 적었다.

아니나 다를까. 2년 전 국립국어원은 이 선수의 한글 표기를 부샤'드'라고 선언했다. 캐나다 문화원의 자문을 받아 국립국어원에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이 선수는 몬트리올 출신이니 부샤'르'로 쓰는 게 가깝지 않을까요? Lucien Bouchard라는 정치가를 뤼시앵 부샤'르'라고 정리한 전례도 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지적에 동감한다며, 다음 심의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선수의 공식 표기는 '부샤'드'로 남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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