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사리라 불렸던 이 지역은 요즘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나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남시 미사 강변 지구 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새로 지어진 아파트 숲 사이, 개발을 앞두고 있는 황폐한 땅에 예쁜 성당 한 채가 외로이 서 있습니다. 이름하여 구산성당인데요, 우리나라 천주교사는 물론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근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이 건축물이 언제 헐릴지 모르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최효안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구산성당은 원래 180년 전 구산 공소로 시작됐습니다. 공소란 성당보다 작은 단위로 주임 신부 없이 신도들만으로 운영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 200년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성당 없이 공소로만 운영된 공소 시대였습니다. 그만큼 성직자의 도움 없이 평범한 신자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종교의 자유를 지켜낸 기간이 길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자리는 교수형을 당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믿음을 저러비지 않은 순교 성인 김성우의 생가터인 동시에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서양인 신부인 피에르 모방 신부가 은신하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웠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15살이던 김대건을 신학생으로 발탁해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일궈낸 게 바로 모방 신부입니다 .
구산성당은 이렇게 공소에서 출발해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이던 1956년에 건립됐는데요, 이례적이게도 갖은 종교박해를 꿋꿋하게 이겨낸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자재를 운반하고 벽돌을 찍어내 지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전문적인 건축가가 아닌 그 공간을 실제로 향유할 이들이 직접 공공의 종교적 건물을 지었고, 그 결과물이 반세기 이상 온전히 남아있는 겁니다.
[박병순/구산성당 건축 참여 신도 (79살) : 아주머니들은 세숫대야 그런 거 가지고 오고 남자들은 지게하고 바소쿠리 이렇게 해서 돌 나르고, 동그란 돌 그런 거… 여자들은 모래 나르고….]
하지만 맨손으로 한강에서 모래와 자갈을 퍼 날랐던 박병순 할아버지는 요새 성당 걱정에 아예 성당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성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시행하는 미사강변도시 개발권에 포함돼 존치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성당의 철거나 훼손만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서 성당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함으로써 허물어버리지 않고 새로운 위치에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긴 한데요, 전문가들은 구산성당의 사례야말로 우리 사회가 근대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수준과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인간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던 시기 민중들이 스스로 종교의 자유를 지켜낸 숭고한 업적을 증명하는 동시에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공동체 의식으로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한 자랑스런 건축물을 그냥 없애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건 어리석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안창모/경기대대학원 교수 건축역사학자 : 우리가 찬란한 문화유산의 프레임에 갇혀서 굉장히 크고 거대한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공유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이란 생각을 갖게 되면 사실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소중해지고 그런 생활습관, 그런 훈련이 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성당을 그대로 둔 채 새롭게 대형 아파트촌이 형성된다면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어 더 높은 건축적, 공간적 가치를 지닐 수 있을 텐데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근대유산이 우리 앞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도록 각계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 [취재파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유산…'구산성당'을 아시나요?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