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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법도박이요? 6개월만 살고 나오면 되는데요 뭐"

[취재파일] "불법도박이요? 6개월만 살고 나오면 되는데요 뭐"
지난 1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불법도박사이트 운영진 38명을 검거해 11명을 구속했습니다. 수사 결과 발표로 드러난 이들의 '초호화 생활'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 박모 씨의 거처에서 발견된 각종 명품가방과 슈퍼카, 귀금속, 현금 등은 수백억 원 어치에 달하고, 해외로 도피한 부총책은 강남에 있는 월세 2천2백만 원짜리 고급빌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총책 박 씨가 4년 전까지만 해도 월세 20만 원의 단칸방에 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도대체 돈을 얼마나, 어떻게 벌면 이런 초호화 생활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한편으론 화도 났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려보기 어려운 이런 화려한 삶이, 법의 느슨한 경계를 파고든 불법 도박업주들에게는 쉽게 허락되는 것에 대해 박탈감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취재 과정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업체에서 한 때 일을 했던 업계 관계자와 어렵사리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를 통해 불법 도박 사이트가 어떻게 큰 수익을 거두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 도박 '합법'인 해외에 서버 두고 무제한 베팅
박 씨가 운영하던 도박 사이트는 해외 스포츠 경기나 카지노 등을 중계하는 사이트입니다. 필리핀에 서버를 두고 있습니다. 경기의 결과를 맞추면 미리 정해진 배당률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서버를 두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도박이 합법입니다. 당연히 도박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합법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도박 자체도 불법이고, 해외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며 도박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드는 것도 국민체육진흥법 제49조(도박개장), 형법 제247조(도박공간개설) 위반입니다. 각각 최대 징역 7년과 5년 이하, 또는 벌금 7천만 원과 3천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배당률도 높다고 합니다. 일률적이진 않지만 국내 사설 도박 사이트에 비해 평균 3~4배 가까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이야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제한 베팅'이 가능한 것이 해외 도박 사이트의 매력(?)입니다. 국내 일반 사설 사이트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일정 금액까지만 베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사이트는 경기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돈을 걸 수 있고 금액도 제한이 없습니다. 브레이크 없이 무제한으로 돈을 걸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무제한 베팅은 운영자에게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는 구조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만약에 사용자가 1.1배에 1백만 원을 베팅했어요. 그러면 결과를 맞춰도 10만 원 밖에 못 벌어가잖아요. 그런데 맞추지 못하면 1백만 원을 잃는 거예요. 사용자가 따가더라도 큰 손해는 없고, 잃으면 업체는 돈을 많이 버는 건데 그걸 무제한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가 이득이겠어요."

● 높은 수익률에 비해 초기 운영 자금 적어…국내 도박업자들 눈 돌리는 이유

운영자는 어떻게 수익을 낼까요. 업계 관계자는 "높은 수익률에 비해 초기 운영 자금이 적게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 관계자의 설명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해외 도박 사이트에 가입해 1백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러면 사이트에서는 도박을 할 수 있는 '알' 또는 '머니'를 줍니다. 일반 온라인 게임으로 치면 '사이버머니'와 '코인'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편의상 '도박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

도박사이트마다 베팅이 가능한 최소 금액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달러라고 해보겠습니다. 현재 환율(1,147원)을 적용하면 우리 돈으로 1만 1,470원이지만 환율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사이트에서 임의대로 10달러는 10만 원, 100달러는 100만 원, 1천 달러는 1천만 원 등 편의상 가격을 책정해놓습니다. 사용자가 10만 원을 입금해 베팅을 하면 사이트 운영업체가 도박머니 10달러를 베팅합니다. 만약 두배의 수익이 나게 되면, 업체는 사용자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는 겁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사이트 운영 업체는 초기 자금이 많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용자가 1천만 원을 베팅한다고 해서 업체가 1천만 원의 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업계 관계자는 "유저(사용자)가 1천만 원을 입금하면 중개 업체(사이트)는 (10분의 1 수준인) 1천 달러(약 114만 원)만 베팅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이트를 운영할 때 초기 자금이 많지 않아도 가능하죠."

● "처벌이 무서울까요? 6개월만 살고 나오면 또 큰 돈 벌 수 있는데"
국내 사설도박업계에서 유명한 도박꾼이었던 박 씨는 이런 해외사이트의 수익성을 일찌감치 맛봤습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박 씨는 국내 도박꾼들 중 거의 처음으로 해외도박사이트를 경험해본 사람이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해외에 도박사이트를 개설하게 됐다고 합니다.

박 씨 일당이 운영하던 도박 사이트의 회원은 확인된 것만 1만 3천여 명, 도박 자금은 1조 원 정도입니다. 경찰은 비공식적으로 이 사이트가 굴리던 도박 자금이 4조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확인된 수익금이 2천9백억 원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실제 수익금도 훨씬 많겠죠.

이들은 이렇게 번 돈을 기반 삼아 2014년부터는 다른 사업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사업체를 인수, 운영했는데 그 중에는 국내 유명 디저트카페 업체도 있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 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유명 축구팀인 레벤타의 스폰서로도 나섰습니다. 이 두 축구팀 소속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박 씨 일당이 운영하던 도박사이트 운영회사의 이름이 떡하니 써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베팅업체나 도박사이트가 스포츠팀을 후원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을까요? 앞서 밝혔듯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도박개장 및 도박공간개설입니다. 해외 스포츠 경기 등을 중계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도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에 대한 혐의가 적용된 것이죠. 최대 징역 7년, 5년 이하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롯이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단 도박 중계사이트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고, 박 씨 일당이 세운 사이트 운영회사도 필리핀 정부의 허가를 받은 합법 업체입니다. 국내 사용자들에게 도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혐의는 적용이 될 수 있지만 사이트를 폐쇄할 수도 없습니다.

박 씨를 도와 해외에서 도박사이트 운영회사를 차리는 등 해외 사업을 주도한 교포 출신 공범은 국내법으로 처벌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도박사이트 운영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벌이 무서울까요? 그냥 6개월 살고 나오면 되는데요 뭐. 어차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옥바라지 해주잖아요. 돈도 얼마 안 들어요. 6개월 옥바라지하는데 한 1억 원 정도 들까요? 1억 투자하고 6개월 쉬다 나오는 거예요. 사이트는 계속 운영되니 돈은 계속 벌리고, 6개월 벌 받았으니 그 이후엔 떳떳하게 다시 사업하는 거죠."

따져보면 일반 사람들이 도박으로 돈을 벌 확률보다 잃을 확률이 높은데, 그 잃은 돈이 합법(해외)과 불법(국내) 사이의 빈틈을 파고든 박 씨 일당과 같은 도박업자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셈입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 불법도박 규모는 83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4년 전(75조 원)에 비해 8조 원이나 늘었습니다.

결국 결론은 한 가집니다. 내 인생을 망치고, 엉뚱한 사람 배만 불리는 불법도박은 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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