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리우 취재파일 20] 올림픽 기수, 중국은 2m 소련은 100kg

2008년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은 사상 가장 웅장한 개회식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전통대로 그리스를 시작으로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메인 스타디움에 모인 8만 관중은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프로복싱 슈퍼스타 필리핀 매니 파퀴아오 선수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이 가운데 필리핀 선수단이 눈길을 확 끌었습니다. 필리핀 국기를 든 기수는 바로 프로복싱 슈퍼스타로 8체급을 석권한 매니 파퀴아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올림픽 선수도, 임원도 아니었지만 오직 이름값 때문에 조국의 국기를 들었습니다. 이렇듯 올림픽 기수는 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선수가 맡는 게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옛 소련 등 몇 나라는 단지 유명하다고 해서 반드시 기수로 뽑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마다 독특한 선정 원칙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키다리를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줄곧 남자 농구 선수가 기수를 맡아왔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기수로 나선 야오밍 농구선수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미국 NBA 스타로도 유명했던 야오밍은 226cm로 중국은 물론 올림픽 역사상 기수 가운데 최장신이었습니다. 그는 2004년 아테테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메인 스타디움 3층에서 멀리 그라운드를 내려다 봐도 눈에 금방 들어올 만큼 엄청난 키를 갖고 있는 게 커다란 장점이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기수였던 이젠롄의 신장은 213cm입니다. 역대 중국 선수단 기수 가운데 2m가 안됐던 유일한 선수는 1990년대 스타였던 류웨이둥으로 2m에서 2cm 모자란 198cm이었습니다. 류웨이둥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기수를 맡았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의 러시아 기수 역할을 담당한 테니스 선수 샤라포바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중국이 ‘키’를 선호했다면 옛 소련은 ‘체중’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소련은 전통적으로 레슬링이나 역도 무제한급 선수가 주로 기수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려 160kg이나 되는 세계 최고의 역사가 선수단을 이끌고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서는 레슬링 무제한급의 알렉산드르 카렐린이 기수를 맡았는데 그의 체중은 130kg이었습니다. ‘체중’과 덩치를 선호했던 옛 소련의 전통은 연방 해체 이후 달라졌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미녀 테니스 스타’인 샤라포바가 기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수 역할을 맡은 핸드볼 선수 윤경신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한국 선수단도 중국과 옛 소련 정도는 아니지만 키와 몸무게를 모두 중시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유도의 조용철이 기수였는데, 그의 체중은 100kg이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키 190cm인 유도의 장성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키 2m의 윤경신이 우리 선수단 기수로 활약했습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단 기수를 맡은 여자 레슬링 선수 요시다 사오리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체격이 작은 여자 스타를 기수로 내세운 것입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유도 간판인 다무라 료코가 일장기를 들었는데, 그녀의 키는 147cm에 불과했습니다. ‘탁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후쿠하라 아이(155cm, 48kg)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레슬링 영웅인 요시다 사오리(157cm, 55kg)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단 기수를 맡았습니다. 요시다 사오리는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4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하는 스타 중의 스타입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나란히 들고 입장하는 정은순(남), 박정철(북)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기수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남측 정은순과 북측 박정철은 한반도기를 나란히 들고 입장해 남북한의 화해 협력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당시 장내 아나운서가 “남한과 북한이 처음으로 올림픽 개회식에 함께 입장합니다”라고 소개하자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을 비롯해 주경기장에 운집한 관중은 일제히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미국은 수단 난민 출신 육상 선수를 베이징올림픽 기수로 선정해 수단 정권을 지지하는 중국의 인권 의식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2008년 대회 때 중동 국가인 아랍에미리트가, 2012년 대회 때 카타르가 여자선수를 기수로 선정한 것은 남녀평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귀화 선수에게 기수를 맡긴 경우도 있습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서 태권도 여자 49㎏급 대표로 나온 강슬기(당시 25세)에게 기수를 맡겨 눈길을 끌었습니다. 강슬기는 국내에서 수원정산고와 우석대를 나온 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올림픽 기수는 ‘나라의 얼굴’로 불립니다. 그 기수만 봐도 그 나라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206개국 기수들의 면면이 이제 조만간 발표되기 시작할 전망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기수들이 화제를 모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