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 본부 임원의 선임 권한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이 갖고 있습니다. 현재 KOC 위원장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입니다. 김 회장은 일찌감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한국선수단장으로 확정했습니다. 남은 자리는 부단장이었습니다. 관례대로 조영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부단장의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문제는 여성 몫의 부단장이었습니다.
용인대 총장을 오래 역임한 김 회장은 용인대 여성 교수인 A씨를 부단장으로 뽑을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체육계에서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김종 차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과 친한 다른 여성 체육인 B씨를 부단장으로 추천한 것입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자신의 고유 권한을 왜 김종 차관이 침범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의 잣대로만 보면 부단장 선임 문제는 이사회, 그것도 긴급 이사회의 안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부단장보다 격이 높은 선수단장도 김정행 회장의 지명으로 결정한 마당에 여성 몫의 부단장을 긴급 이사회에서 논의를 통해 선임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긴급 이사회는 개최됐고, 부단장 선임은 공식 안건으로 상정됐습니다. 김종 차관의 파워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 긴급 이사회(제4차 이사회)는 지난 8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3층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긴급 안건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수영 스타 박태환 선수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리우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선수단 본부 임원을 확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몇 시간 뒤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삼성그룹 후원금 전달 행사>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니까 몸이 불편해 불참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해 긴급 이사회에 일부러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이날 긴급 이사회는 강영중 공동 회장이 주재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0월5일 신임 회장을 선출할 때까지 공동 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정행 회장의 이사회 불참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박근혜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힌 김정행 회장은 그동안 엄청난 수모를 당해왔다. 국민생활체육회와의 체육단체 통합 과정에서도 문체부의 힘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대한체육회의 실권은 이미 국민생활체육회 출신인 강영중 회장과 조영호 사무총장에 넘어갔다. 그 뒤에 김종 차관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권력에서 소외된 김정행 회장이 부단장 1명마저 자기 마음대로 선임하지 못하니 화가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긴급 이사회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항의를 표시한 것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김종 차관의 추천이 사실상 김정행 회장에게는 ‘외압’으로 비쳐졌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김 차관의 말이 곧 ‘법’인 상황에서 말이 추천이지 실제로는 ‘명령’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종 차관은 SBS와의 통화에서 “여러 경력을 고려해 B씨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은 했지만 공식적으로 추천한 적은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이 좋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가? 만약 김정행 회장이 추천한 A씨가 부단장에 선임된다면, 김정행 회장, 최종삼 태릉선수촌장, 그리고 A씨까지 온통 ‘용인대 판’이 되고 만다. 한국선수단에 용인대 출신이 이렇게 많은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라며 반문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결국 A씨와 B씨를 모두 부단장으로 선임하기로 했습니다. 타협이 아니라 일종의 ‘야합’을 한 셈입니다. 자기들도 떳떳하지 못했던지 대한체육회는 지난 8일 보도 자료를 통해 본부 임원을 선정했다고만 발표했지, 누가 무슨 자리에 선임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선수단 부단장이 전세기를 탈 경우 왕복항공권 가격은 1,100만원입니다. 여기에다 숙박비와 현지 체재비용을 더하면 수천만 원이나 됩니다. 이 돈은 물론 국민 세금으로 지불됩니다.
체육단체 통합과정과 최근 박태환 파동에서 드러난 대한체육회의 행태, 그리고 김종 차관과 김 회장의 이번 갈등 사태를 종합해볼 때 박근혜 정부의 스포츠 행정은 한마디로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