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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사들을 파묻는 그 사건은 다 어디서 온 걸까

[취재파일] 검사들을 파묻는 그 사건은 다 어디서 온 걸까
서울 남부지검에서 근무하던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상사인 모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 과중한 업무부담이 지목됐습니다. 숨진 검사가 쓴 유서에는 “일이 너무 많다. 쉬고 싶다”, “사건은 늘어만 간다. 거기다 매일매일 보고서... 보고...보고..실적...”,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들의 심정이 이렇겠지...”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도대체 일이 얼마나 많은 걸까요.
 
그 검사가 일하던 곳은 형사부였습니다. 형사부는 주로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이나 고소·고발 사건을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지난해에만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70만 5천689건에 달합니다. 전국적으로 형사부에 소속된 검사는 1천 명쯤인데, 단순 계산으로 검사 한 명이 1년에 700개 정도 사건을 맡는 겁니다.
 
검찰 형사부와 비슷하게 고소·고발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경찰서 경제팀 직원들도 같은 처지입니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한 경제팀 소속 경찰관은 “1년간 담당한 사건이 300개가 넘는데, 다른 경찰들에 비해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라고 토로합니다.
 
물론, 이렇게 들어오는 사건들이 모두 ‘다룰 만한 사건’인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 경찰이 경기 일산경찰서에 수사민원 상담센터를 시범 운영하면서 고소·고발 등 민원 해결 상담을 진행한 결과, 접수된 고소·고발 상담건수 가운데 전체 87.5%가 반려됐습니다. 변호사를 두고 민원인들과 직접 상담해봤더니 고소·고발까지 가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현재 법률 체제 아래에선 무분별한 고소·고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고소·고발이 ‘민사사건 해결’을 위한 증거수집 수단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겁니다.

우리나라 재판 체계상 민사재판에서는 당사자들이 제출하고 주장하는 내용 외에는 법관들이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송 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들을 직접 제출해야 하는데요, 이 증거 수집이란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렇다보니 민사소송 상대방을 사기 등으로 고소·고발하고,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를 민사재판에 활용하는 겁니다.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들도 “민사재판을 진행하는 중에 형사소송을 내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전략”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들여다봐도 ‘당사자들끼리의 분쟁이지 형법으로 처벌해야 할 내용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70만 건이 넘는 고소·고발 사건 중에 불기소 되는 경우가 40만838건, 전체의 57%에 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국 김수남 검찰총장이 제시한 '형사부에 수사 인력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겠다'는 대안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갑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검사가 달려들어서 처리하도라도, 1년에 검사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은 350건 정도나 됩니다. 매일매일 출근해 하루 한 건씩 처리해야 설이나 추석날 쉬고 일주일 정도 휴가를 다녀올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막 임관한 막내 검사부터 검찰총장까지 다 덤벼들었을 때 말입니다. 
결국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해 손을 봐야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수사기관에 대한 고소·고발이 '민사재판을 위한 증거수집 수단’으로 전락한 것과 다름없으니, 차라리 사설탐정을 허가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형사 고소·고발 비용을 수사 인력들을 고용해 민사재판 증거물을 수집하는 의뢰비로 쓰는 것이 어떠냐는 겁니다. 민사 소송 당사자가 소송 시작 전 상대방의 자료 가운데 증거로 쓸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게 하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10년 전인 2006년 4월 4일 대검찰청은 “업무 효율화를 위한 전국 형사부장회의 개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사부 검사들이 만성적인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리고 있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정도의 충실한 사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곧바로 검찰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는 내용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검사들의 평균 퇴근 시간은 밤 9시 20분으로 하루 평균 11시간이 넘게 일하며, 밤 11시 이후에 퇴근하는 경우도 36.6%에 달했습니다. 87.7%의 검사가 일주일에 3번 이상 야근하며, 한 달에 5번 이상 주말 출근한다는 응답도 19.5%에 달했습니다.

당ㅅ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선 형사부장이 주제별로 난상토론을 하고 주요 문제점과 근본원인을 발굴하여 그에 대한 개선안을 도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뒤, 젊은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때 발굴했다는 그 근본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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