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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생존 위해 굶는 '최저임금'의 진실

●‘97만4898원’ 

올해 1인 가구에 대해 법원에서 정한 최저 생계비다. 개인회생을 신청할 때 기준으로 사용된다. 각자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월 소득이 120만 원인 사람이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최저 생활에 필요한 97만 원을 뺀 나머지 금액만 변제하게 된다. 2인 가구 165만 원, 3인 가구 214만 원, 4인 가구 263만 원으로 가구수가 늘어나면 기준 금액은 높아진다. 대다수 사람들은 “97만 원으로 살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라고 말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16년 최저생계비(1인 기준 64만 원)는 이보다 더욱 낮다.

●‘155만3,390원’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발간한 ‘미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 분석보고서’에 나오는 ‘2014년 기준 1인 근로자 월평균 생계비’다. 2인 가구는 274만 원, 3인 가구는 336만 원으로 높아진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자료로 사용된다. 근로자 1명이 2014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 달에 155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2013년 대비 3.1%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2년이 지난 현재, 생계유지를 위해선 이 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126만270원’ 

올해 최저 시급인 6030원을 기준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법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최저임금인데, 2014년 기준 1인 근로자 월 생계비보다 낮다. 현시점에서 월세, 식비, 교통비, 통신비를 내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당연히 자기계발비는 생각하기 힘들고, 커피 한 잔은 언감생심, 문화 생활은 먼 나라 이야기, 저축은 꿈도 못 꾼다. ‘근로자 생활안정,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최저임금제의 입법 목적은 창대하지만, 이렇듯 현실은 “생활은 불가능하고, 생존조차 힘든 수준”이다. 

여기에 부양 가족이 1명이라도 있으면 “생존을 위해선 굶어야 한다”고 노동계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불가능한 생존이 현실에선 반복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자료를 토대로 노동계가 파악한 최저임금 근로자의 평균 가구원수는 2.5명~3.32명이다. 최저임금 126만 원으로 2인~3인의 생계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209만 원(시간당 1만원) vs 126만 원(시간당 6030원)

최저임금 협상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사용자(경영계)는 올해도 어김없이 6,030원 ‘동결’을 주장했다. 근로자들이 경영계를 향해 “2017년 최저임금 6030원. 너부터 이 돈으로 살아봐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이유다. 노동계는 ‘살기 위해 굶어야 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선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당 1만 원으로 하루에 8시간씩 매주 40시간을 일하면 월 209만 원을 벌 수 있다. 그래도 앞서 위원회가 분석한 2014년도 2인 가구 월 생계비(274만 원), 3인 가구 월 생계비(336만 원)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 원이 ‘욕심을 채우려는 금액’이 아니라 ‘경제 현실을 반영한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영계는 “경제 현실을 볼 때 1만 원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하나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두 개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최저임금 영향권'…최소 900만 명

동결 근거로 사용되는 것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에 끼치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근로자가 더 많으니 저소득층을 위해선 지금의 최저임금부터 제대로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4년 기준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는 27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점에서 해당 주장은 거짓말은 아니지만, 현실을 왜곡한 측면이 많다.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최저임금과 무관한 고액 연봉자가 존재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분석한 올해 ‘최저임금 영향률’은 18.2%로, 2003년 6.4%에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기준 전체 근로자 1877만 명 중 342만 명의 근로자가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다는 것으로, 노동계는 이 숫자가 6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위원회 측 기준으로 통계청이 올 초 발표한 국내 평균 가구원수 2.7명을 곱하면 923만 명이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할 수 있다. 노동계가 추산한 600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영향권 내에 가구는 1,500만 명이 넘는다. 보수적 추산이든 적극적 추산이든 최저임금 인상은 다수의 시민들에게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감소와 실업증가?

경영계의 또 다른 반대 논리는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고용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최대 5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이 상승하면 자영업자든, 기업이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고용은 줄어들 수 있다는 건 경제학의 고전적 논리다. 또 주변에서도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역시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확대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의 상관관계가 부족하고, 도리어 긍정적일 수 도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해 왔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지난해 ‘2015년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입장을 바꿔 ‘합리적 수준의 최저임금은 고용 상실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소영세업자 방패막이 삼는 경영계

최저임금 협상 때 경영계가 빠지지 않고 들고 나오는 주장은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소상공인들이 고사한다”는 것이다. 임금이 상승하면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업체 2,671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상승으로 고용 변동이 있었냐는 질문에 72.54%가 ‘변동 없음’이라고 응답했다. 8.27%는 ‘임금 변동과 무관하게 고용 감소’라고 답했다. 80% 이상이 최저임금 상승과 관계없이 고용 관계를 지속 또는 단절했다는 것이다.

영세상공인들은 매출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답했다. 2013년 중소기업청이 6천8백여 개 사업체를 상대로 실시한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자영업자 몰락 원인 1위는 주변 소형업체와의 경쟁(41.8%), 2위 대형업체 출연(13.1%), 3위 인터넷 홈쇼핑 온라인 업체 경쟁(9.85), 상권 약화(2.2%)다. 정작 경영계가 주장한 인건비 상승을 원인으로 꼽은 건 1.7%에 불과하다. 이는 임대료 상승(2.1%)보다 낮은 수치다. 소상공인의 몰락 원인은 과다 경쟁이었고, 이는 대기업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을(乙) 병(丙)의 갈등 조장하는 대기업

2015년 통계청 발표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556만 명에 달한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21.4%다. 2013년 기준 OECD 국가 중 자영업자 비율이 4번째로 높을 만큼,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크다. 경영계가 최저임금 인상 반대의 근거로 삼는 중소상인 등 자영업자가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의 증가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계는 “생활 가능한 임금을 받거나, 고용이 안정되거나, 젊은 나이에 퇴직을 당하지 않았다면 자영업자 과포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계 유지도 힘든 최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자영업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악순환은 대기업과 무관치 않다. 30대 그룹 사내유보금만 750조 원으로, 곳간에 돈을 넘치게 쌓아두면서도 대기업은 비정규직 양산을 주도하며 고용 창출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중소상인의 매출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과다 경쟁이었다. 이런 경쟁의 배경엔 대기업, 즉 갑(대기업)의 횡포가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독점적·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이익착취의 결과로 중소기업 및 중소상인의 상황은 악화됐다.

이같은 상황은 편의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 편의점 수는 2007년 9,061개에서 2014년 2만4665개로 급증했다. GS25, CU, 세븐일레븐,미니스톱 등 대표 4사는 8년 사이 2.17배 매출이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중소상인인 가맹점주의 수입은 1.008배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 관련 기사: 본사만 '나홀로 성장). 물가상승, 임대료 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감소한 셈이다. 가맹비를 받는 본사가 점포수 늘리기에만 몰두한 결과로, 본사 매출은 늘었지만 중소상인들의 삶은 매장 개설 전보다 어려워진 것이다. 본질은 이런데도 경영계는 소상공인을 핑계 삼아 생계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의 주장을 막고 있다. 가장 책임 있는 갑(甲)은 빠진 채 을(乙)과 병(丙)의 갈등 관계만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기울어진 저울’…공익위원 선정 개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여름휴가를 국내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가계 소비 여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내수 진작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대통령의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게 문제다. “지금의 최저임금으로 여행이 가능할까”라고 노동계는 되묻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는 내수 진작이 필요할 때 마다 국민들의 소비 확대를 언급하면서도 정작 최저임금을 결정할 땐 소비자인 근로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근로자의 생활 안정’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결정은 더욱 공정해져야 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 위원 9명, 사용자(경영계) 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원칙상 최저임금은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데, 노-사 위원의 첨예한 대립으로 통상 공익위원들의 제시안으로 결정됐다. 지난 2010년부터 최근까지 2012년(사용자 측 제시안)을 제외하곤 전부 공익위원들이 제시안으로 최저임금이 정해졌다. 그만큼 공익위원의 구성이 중요하다.
공익위원은 노동고용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위촉하는 방식으로 선정된다. 이 때문에 공익위원은 정부의 방침과 이익을 대변할 여지가 크고, 특히 보수정권 이후 친사용자 성향을 띄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10년 이후 노동계는 매년 20% 이상의 두 자릿수 인상을 요구하고, 경영계는 7번 연속 삭감 또는 동결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두 자릿수 인상을 결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위원회가 분석한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점을 알면서도, 같은 결정을 반복한 건 공익위원 스스로 최저임금제도의 입법 목적을 무력화 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위원회의 독립성과 공익성이 반복적으로 의심받으면서, 공익위원 선정방식을 바꿔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 선정이 아닌 노사단체의 협의 또는 추천을 받아 선정하거나, 공익위원의 의결권을 제한시키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노사의 합의로 결정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외에도 정부의 입김을 줄이고 공정성 확보를 위해 최저임금 결정을 국회에서 하는 방식도 제시되고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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