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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대, 왜 LP를 사시나요?

[취재파일] 그대, 왜 LP를 사시나요?
지난달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올해로 6번째를 맞은 페어엔 역대 가장 많은 100여 개의 판매 부스가 자리를 잡았고, 10종류가 넘는 다양한 페어 한정반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디밴드 중심이던 한정반 목록에 걸그룹 원더걸스의 신곡이 포함된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서울레코드페어가 있기 며칠 전에는 취재 차 서울 이태원에 새로 문을 연 대형 음반 매장에도 다녀왔습니다.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앨범 구매는 물론 청음도 할 수 있었는데, LP와 CD, 심지어 카세트테이프까지 구비돼 있었습니다.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오래 전인데, 대형 음반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뉴스는 10여 년 만에 듣는 소식 같았습니다.    

물론 LP나 CD가 다시 음반 시장의 주류가 되는 건 여전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사 직전까지 갔던 LP시장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선 건 분명한 흐름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흐름 속에 복고 혹은 추억팔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최근 LP 시장 성장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젊은 세대의 LP 구매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그 이전 세대와 달리, 직접 LP를 구매해 음악을 들었던 추억이 없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가운데에는 턴테이블에 LP를 처음 올려놓아 본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왜 LP를 사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혹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이들을 LP시장으로 이끌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런 욕구를 반영하듯 요즘 나오는 앨범의 패키지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풍성해졌고, LP 자체도 검은색 일변도에서 벗어나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LP를 사서 모은다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턴테이블이 있어도, 음악은 주로 음원으로 듣고 LP는 보관용으로 구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LP를 구매하는 20대를 취재하면서, ‘턴테이블이 없는데 왜 LP를 사는 걸까?‘란 과거의 궁금증은 이제 더 이상 갖지 않게 됐습니다.

턴테이블에 LP를 올리고 그 위에 바늘을 가져다 놓는 행위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고 이야기하는 20대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재밌다’는 거죠. 아무데서나 이동하며 음악을 들을 수도 없고, 보관도 감상도 번거롭던 LP. LP의 이런 특징은 이 매체가 10~20년 전 음반 시장에서 도태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엔 부활의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이상할 건 없습니다. 출장 때문에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한다면 그건 피하고 싶은 노동이겠지만 바람 쐬러 드라이브 나갈 때는 운전이 즐거움이 되듯, 생존을 위한 요리는 노동이겠지만 맛과 나눔을 위한 요리는 즐거움이 되듯. 그 과정 자체를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면 즐거움은 의외의 곳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 밖에도 많은 다양하고 사적인 이유들이 모여 LP 시장의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만들어오고 있으니, LP의 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부활의 요인을 찾겠다는 건 어쩌면 그다지 실효성 있는 시도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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