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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구판 '퀵후크'와 특임검사의 닮은꼴

[취재파일] 야구판 '퀵후크'와 특임검사의 닮은꼴
▲ 김수남 검찰총장

하야동농(夏野冬籠). 여름엔 야구, 겨울엔 농구를 좋아합니다. 여름철이니 야구 얘기를 해보려합니다.

야구 용어 중에 퀵후크(quick hook)란 말이 있습니다. 선발 투수를 6이닝 이전에 내리는 것, 야구판 흔한 용어로는 '조기 강판'이란 말로 더 친숙합니다. 요즘 한국 프로야구처럼 타격 우세 현상이 심한 경우엔 이런 퀵후크가 전반적인 추세인 것 같고, 특히 선발 투수가 약한 팀에선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에 대량 실점을 하며 무너지는 경우야 어쩔 수 없겠지만, 나름 버티는데도 퀵후크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기 초반인데, 상대팀과 점수 차이도 얼마 안되는데, 감독이 과감하게 결단한 겁니다.

감독은 왜 퀵후크를 할까요? (실제 감독이 아니라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합니다) 퀵후크의 목적은 당연히 경기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섭니다. 초반 경기 흐름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선발 투수를 내려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는 거죠. 설사 많은 실점을 내주지 않더라도 자칫 한 순간에 대량 실점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퀵후크를 감행합니다. 초반부터 주도권을 뺏기면 그 게임의 결과는 보나마나일테니까요.

감독의 분위기 반전용 카드인 퀵후크는 그만큼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합니다. 선발 투수 다음에 등장하는 불펜 투수들의 부담이 매우 커집니다. 현대 야구처럼 투수마다 역할 분담이 철저한 시스템이라면 부담이 더 하겠죠. 보통 선발 투수가 5-6이닝을 막아주면 불펜 투수들이 1이닝씩 짧게 끊어가주는 게 이른바 필승조 운용입니다. 하지만 불펜 투수가 예고에도 없는 롱릴리프를 하다보면 전형적인 필승 방식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꼭 잡아야 할 한 두 게임은 모르겠지만, 이런 투수 운용이 계속된다면 그 팀의 투수진들은 전체적으로 체력 부담이 누적될 것이고, 그 누적 피로는 결국 그 팀의 전체 시즌 성적을 망쳐버릴 수 있습니다.

퀵후크를 당한 선발 투수의 심경은 어떨까요? 자신은 최소 5이닝 이상을 목표로 나름 체력 조절하면서 잘 던지고 있는데, 감독이 난데없이 자신을 교체해버렸다면???  겉으로야 감독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겠지만, 속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 선수의 의욕과 사기는 상당히 처질 수 밖에 없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퀵후크는 감독의 특단의 조치지만, 여러 부담 요소를 안고 내리는 결정이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진경준 검사장
야구 얘기를 한참 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야구 얘기를 한 건 대검찰청에서 난데없는 '퀵후크'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검찰청에서 벌어진 야구 경기에서 감독은 김수남 검찰총장, 선발 투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팀이 진행하는 경기는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의혹 사건' 수사겠고요.

김수남 감독의 퀵후크 결단은 이 경기에 대한 외부 관전평이 우호적이지 않은 게 발단이었습니다. "검찰팀이 애초부터 이길 의지가 없다", "어차피 질 경기다", "상대 팀 선수와 친한 선수들이 너무 많다"라는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는 김수남 감독은 심기가 편할 리가 없습니다. 김 감독에겐 이 경기는 꼭 이겨야 하는 경기니까요.

어쩌면 한해 성적표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경기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경기에서 진다면…. 심지어 일부러 져줬다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면…. 일 년 시즌 농사 망치는 겁니다.

애초 이 경기 선발 투수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검찰팀 내 건실한 선발 요원입니다. 형사부 수석 부서인데다 민감한 고소 고발 사건을 해결한 경험도 풍부한 베테랑 선수죠. 선발 로테이션도 거르지 않았고, 요령도 부릴 줄 모르는 우직한 선발 투수 스타일입니다. '진경준 사건'에 대해서도 지난 4월 고발 사건 배당을 받은 뒤, 나름 어려운 등판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잘 막아왔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승산이 크지 않다는 외부 전망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있다,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직한 선발 투수에게 김수남 감독은 예상 밖 퀵후크를 강행한 겁니다.
김수남 감독 입장에 서보겠습니다. 외부의 경기 전망은 의심과 우려 투성인데, 우리팀 선발 투수의 볼 배합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김 감독이 여러차례 직구 위주의 정면 승부를 강조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발 투수는 변화구 위주의 투구로 투구수만 늘려가고 있는 듯 보인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볼넷만 남발하고 대량 실점을 하는 건 아닌지..영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직 검사가 친구 회사 돈으로 그 회사 주식을 사고, 그걸로 126억 원을 벌었고, 또 돈의 출처에 대한 해명을 계속 번복해서 의혹이 자꾸만 커져 가는데...수사팀은 사건 핵심 인물인 넥슨 김정주 창업주가 귀국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소환 조사할 준비도 못하고 있으니, 검찰총장 입장에선 매우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발 투수를 빨리 내리고 싶어도 롱릴리프로 마땅한 투수가 보이지 않으면 퀵후크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마침 불펜에 눈에 띄는 베테랑이 한 명 보입니다. 상대팀 베테랑 강타자 못지 않은 노련미를 갖춘 데다 사실 야구판 입단 경력은 상대팀 타자보다 한 시즌 더 빠른 선수입니다. 광속구를 구사하는 투수는 아니지만 이것 저것 팔색 변화구를 나름 잘 구사하는 다재다능한 롱릴리프감입니다. 이 정도면 김 감독 입장에선 퀵후크 욕심을 날만한 구원 투수입니다. 결국 진경준 주식 대박 의혹 사건의 수사팀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이금로 인천지검장으로 바로 교체됐습니다.

롱릴리프 특임 검사 입장은 어떨까요? 잘만 하면 김수남 감독호의 에이스가 될 수 있는 기횝니다. 이 참에 아예 붙박이 선발 투수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감독 뿐 아니라 단장도 이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아직 경기 초반인데 자신이 게임을 말아 먹는다면, 패전 투수의 멍에도 써야 합니다. 패전 투수가 안되더라도 게임에서 지면 힘만 쓰고 아무 소득이 없는 패전 처리용 투수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서야 "원래 하던 일이나 잘할 걸" 후회해도 소용 없습니다. 베테랑 경력자 인지라 자칫 은퇴를 강요 당할 수도 있겠죠. 이래저래 본인에겐 기회이자 위기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진작에 이 베테랑 선수는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벌써부터 욕심을 내는 모습도 보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겠다"는 소감부터가 무조건 이기겠다는 의욕이 남달라 보입니다. 그렇게 이금로 특임검사는 부임 첫날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진경준 검사장의 수상한 자동차를 캐보고, 차명으로 의심되는 계좌도 추적해보고...기존 선발 투수보다 빠른 승부 타이밍을 가져가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진행하려는 베테랑의 모습이 보입니다.
야구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현실로 돌아와야죠. 전격적인 수사팀 교체 카드는 김수남 검찰총장이 진경준  검사장 주식 대박 의혹 사건을 얼마만큼 엄중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처리되길 바라는지 그 의지를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도의 검찰총장의 의지를 갖고 있으니 수사 결과에 대한 진정성을 믿어 달라는 취지겠죠.

하지만 이런 총장의 강한 의지가 자칫 이금로 특임검사팀의 과욕으로 이어져선 안 될 일입니다. 총장이 수사 의지를 무조건 때려잡으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단 말이겠죠. 지금 꾸려진 수사팀의 규모를 봐도 피의자 한 명을 대상으로 한 수사팀치곤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인데, 여기에 또다른 리그 홈런왕 출신 용병급 부장검사도 추가로 합류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워낙 국민적 관심도가 높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은 사건임을 감안하더라도 과잉 수사처럼 비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 만큼이나 목표 달성에만 경도되지 않은 적정한 수사 절차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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