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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겉과 속' 다른 체육회, 마지막 선택은 어떻게 할까?

박태환-체육회, 운명의 하루

[취재파일] '겉과 속' 다른 체육회, 마지막 선택은 어떻게 할까?
● 체육회, 끝까지 오리발
대한 체육회 반박 보도자료
대한체육회가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 CAS에 박태환 사건과 관련한 잠정처분 결정을 기각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가자, 체육회가 반박 보도 자료를 냈습니다. 체육회는 CAS에 “박태환의 출전 자격 결정 연기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가처분(잠정 처분) 결정을 늦추거나 내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체육회 잠정 처분 기각 요청 공문
위의 사진은 대한 체육회의 변호사가 지난 1일 CAS에 보낸 공문입니다. 전체 15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박태환 측의 잠정 처분 신청을 기각해야 하는 이유로 도배 되어 있습니다.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 권한은 수영 연맹에 있지, 체육회에 있는 것이 아니다”, “2014년에 제정된 대표 선발 규정에 대해 너무 늦게 항소했다”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이어진 뒤 아래와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체육회 잠정 처분 기각 요청 공문
1.박태환(항소인)의 잠정 처분 신청을 기각해 달라.
(DISMISS the Appellant's Application for Provisional Measures)
2.잠정 처분 신청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박태환(항소인)에게 청구하라.
(ORDER the Appellant to pay all of the costs and expenses of the provisional measures application.)

그렇다면 이 문서는 체육회가 보낸 것이 아니라는 건가요? 아니면 체육회는 CAS에 ‘잠정 처분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잠정 처분 신청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보도돼 그게 억울했던 건가요?

잠정 처분은 본 판결 이전에 내리는 ‘가결정’으로 말 그대로 시간이 촉박하고 사안이 명백한 경우 빨리 내리는 임시 결정입니다. 리우올림픽 대표 명단 제출 마감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잠정 처분 신청을 기각해달라는 요청이 판결을 늦추거나 내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체육회의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체육회는 여기에  “잠정 처분 신청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박태환(항소인)에게 청구하라”며 당당하게 요구를 덧붙였습니다. 쉽게 말해 ‘나는 빨리 결정하는 것이 싫으니 빨리 결정을 내려 달라고 한 박태환에게 모든 돈을 청구하라’는 것입니다.

● 의도적 시간 끌기?

체육회는 시간을 끌 의도는 전혀 없다고 수차례에 걸쳐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체육회의 행태를 보면 이를 100% 믿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체육회는 지난 4월 6일 스포츠 공정 위원회를 시작으로 경기력 향상 위원회와 각종 기자회견을 통해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5월에 발표한 리우올림픽 예비 엔트리 명단에서도 제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CAS가 중재 재판 절차에 돌입하려고 하자,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며 6월 16일 이사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이사회에서는 마치 미리 결론을 정해 놓은 것처럼 일사천리로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은 불가하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박태환 건 이외에도 통합 체육회장 선거 일정 결정 등 굵직한 안건을 20개 가량 처리했는데, 2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체육회가 이미 박태환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놓고도, CAS의 중재 시작을 6월 중순 이후로 늦추기 위해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오해(?)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제소 절차가 재개된 이후에도 체육회는 일관적(?)인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법률 대리인 선정 신청을 비롯한 CAS의 요청이나 제안에 대해서는 마감 시한에 맞춰 최대한 늦게 답변을 보냈고, CAS에서 신속 절차 진행을 제시하자 무응답으로 대응해 거절했습니다.

물론 체육회는 자신의 권리를 모두 이용한 것이고, 신속 절차에 대한 합의도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보이면서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체육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CAS에 잠정 처분 신청을 기각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뒤통수를 쳤습니다. 앞에서는 CAS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결정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들은 이중플레이를 한 적 없다고 보도 자료까지 돌렸습니다.
● 체육회, 무엇이 승리일까요?

체육회가 시간 끌기 전략을 짠 것이라면 지금까지는 대성공입니다. 체육회의 잠정 처분 기각 요청 공문 때문에 CAS가 박태환 측의 의견을 다시 한 번 묻고 답변을 받으면서 이틀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국제 수영 연맹 FINA에 리우올림픽 대표 명단을 제출해야 할 마감일(7월 8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CAS가 오늘 밤 잠정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 잠정 처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이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CAS에서 잠정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체육회의 대표 선발 규정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정 처분을 내리지 않는 것은 빠르게 결론 내기 힘들다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잠정 처분을 못 내리더라도 당연히 본 판정은 합니다.)

그리고 이전의 판례로 봤을 때 체육회의 대표 선발 규정은 CAS 본 판정으로 가면 99% 잘못됐다는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태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기준 Global Standard에 맞추고 국제 올림픽 위원회 IOC 헌장과 세계 반도핑 기구 WADA 규약을 준수하기 위해 대한체육회의 대표 선발 규정은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CAS의 잠정 처분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태환을 리우에 보내지 않는다면, 대한체육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IOC 헌장과 WADA 규약에 위배해 만든 선발 규정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이 있는 선수의 발을 묶는 협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억지논리와 시간 끌기로 한 선수의 명예 회복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비판도 피하기 힘들 겁니다.

또 CAS의 판결과 무관하게 국내 법원은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대표 선수 지위를 인정하고 대표 명단에 포함시키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를 어기면 위법이라고 분명히 경고도 했습니다. 설마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 대한체육회가 대놓고 위법 행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비상식적으로 박태환이 올림픽에 못 나갈 경우 박태환 이상으로 체육회도 잃을 것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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