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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식불명' 이주노동자, 그는 왜 건물 외벽을 올랐을까

[취재파일] '의식불명' 이주노동자, 그는 왜 건물 외벽을 올랐을까
12년간 한국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두 달 째 의식이 없는 우즈베키스탄 이주 노동자 '아브잘로바 노디르'씨의 사연을 얼마 전 8시 뉴스( ▶ 12년간 일하다 식물인간…사경 헤매는 이주노동자)를 통해 전해드렸습니다. 보도가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이 노동자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응원을 전해주셨습니다.

노디르 씨는 지난 5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여전히 의식은 없는 상태지만 상태가 위중한 응급환자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중환자실에 언제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졸이며 지켜봐야 할 '불안정한 상태'는 넘겼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 상황입니다.

또 일하던 공장에서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임금 1천만 원과 관련해서는, 노동청 진정 결과 사업주가 3백여만 원 체불은 인정해 이번 달 안에 지불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노디르 씨가 의식불명 상태로 정확한 체불 임금 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가족들은 일단 3백만 원이라도 받기로 하고 진정을 취하했습니다.

보도 후 많은 분들이 댓글과 이메일을 통해 노디르 씨의 이야기를 물으셨습니다. 특히 노디르 씨가 어떻게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게 됐는지, 또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인 노디르 씨는 강제추방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묻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취재파일에서는 이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 경찰 "건물 배수관 타고 3층까지 오르다 미끄러져 떨어진 것으로 추정"

노디르 씨는 지난 4월6일 새벽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빌라 건물 앞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엎드려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빌라 3층에는 노디르 씨가 혼자 살고 있던 원룸이 있습니다. 

일단 경찰이 추정하는 노디르 씨의 당일 행적은 이렇습니다. 전날 밤 지인과 술을 마신 후 6일 새벽에 귀가한 노디르 씨는 자신의 집이 있는 빌라 3층까지 올라갔으나 열쇠가 없었습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노디르 씨는 건물 옆 배수관을 타고 건물을 올랐습니다.
집 창문이 열려 있어 창문으로 들어가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이야기입니다. 배수관을 타고 1층, 2층 창문 옆 실외기를 밟고 3층 창문까지 손을 뻗는데 성공했지만 미끄러졌고 결국 바닥으로 추락해 머리를 다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증거는 이렇습니다. 노디르 씨가 전날 지인과 술을 마신 사실은 지인을 통해 확인이 됐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노디르 씨의 가방 안에서 열쇠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3층 집 문은 잠겨있었습니다. 집 앞에는 구토한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근거로, 술에 취한 노디르 씨가 3층까지 올라왔다 구토를 했고 가방에 열쇠가 없어 다시 내려간 걸로 추정했습니다.

노디르 씨가 살던 빌라는 1층은 주차장이고 2층부터 4층까지 거주공간입니다. 1층 주차장 왼쪽 벽에는 굵은 철제 배수관이 이어져 있습니다. 배수관을 타고 오르면 2층 집 창문이 나오는데 창문 앞에 달려있는 실외기를 밟고 올라 손을 뻗으면 3층 집 창문틀을 잡을 수 있습니다. 경찰은 철제 배수관에서 동일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자국을 여러 개 발견했습니다.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디르 씨의 3층 원룸 창문에서 손가락이 스친 듯한 흔적도 발견됐다고 합니다. 창문 바깥쪽에 남은 흔적인데, 경찰은 이 흔적을 노디르 씨가 3층 창문까지 올라왔다 미끄러진 증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과학수사팀까지 현장에 보내 사고 경위를 조사했지만 이런 정황들을 바탕으로 '사건'이 아닌 '사고'로 결론지었습니다. 빌라 1층 주차장에는 두 대의 CCTV가 있지만 당시 고장이 나서 촬영된 영상이 없고, 새벽시간이라 목격자도 없습니다. 또 당사자인 노디르 씨가 의식불명으로 말을 할 수 없다보니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는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노디르 씨의 어머니와, 노디르 씨를 돕고 있는 외국인지원단체에서는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의문이 많습니다. 노디르 씨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상황이지만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다 보니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 법무부 "강제퇴거 대상은 맞지만 치료 끝날 때까지 유예 조치 할 수도"

노디르 씨 어머니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농경학을 전공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집 사기를 당했고 돈을 벌기 위해 2004년 한국에 오게 됐다고 합니다. 노디르 씨는 당시 C-3, 단기방문비자로 입국했습니다.

단기방문비자의 경우 체류 가능 기간이 90일입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오면서 단기방문비자를 받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법체류를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연은 안타깝지만 노디르 씨가 대한민국의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것으로 강제퇴거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노디르 씨는 현재 의식불명 상태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치료를 중단하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노디르 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태가 호전된다 해도 7천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내지 못한 상태라 무작정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법무부 측에 노디르 씨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문의했습니다. 법무부는, 강제퇴거 대상인 것은 맞지만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만큼 퇴거 명령을 내린다 해도 치료가 끝날 때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을 유예하는 조치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피치 못할 사유로 한국에 반드시 체류해야 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입금체납 문제로 분쟁을 겪는 등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G-1비자를 발급해 노디르 씨가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한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체류 자격을 변경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G-1비자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방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아 발급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심사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또 노디르 씨의 상태가 단기간에 호전되기가 어렵고, 앞으로 추가 수술의 가능성도 있어 언제까지 퇴거 조치를 유예해야하는지도 판단하기가 녹록치 않습니다. 
노디르 씨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보도를 망설였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입니다. 불법체류 자체가 명백한 위법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은 점도 고민이 됐습니다. 일부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범죄에 휘말리며 사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식어를 걷어내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람, 그리고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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