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 데커-졸라 버드(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1984년 LA 올림픽에서 최고의 관심 경기 가운데 하나는 육상 여자 3000m였습니다. 지금은 올림픽에서 여자 3000m 종목이 없어졌지만 LA 올림픽에서는 가장 뜨거운 종목이었습니다. 개최국 미국의 메리 데커와 영국의 졸라 버드가 펼친 라이벌전 때문이었죠.
메리 데커는 1983년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에서 1500m와 3000m를 석권하며 여자 육상 장거리의 최강자로 군림했고, 미국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LA 올림픽 당시 18살이었던 졸라 버드는 데커가 갖고 있던 5000m 세계 기록을 갈아 치우며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버드는 남아공 출신인데요, 당시 남아공이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적을 할아버지 나라인 영국으로 바꿔 LA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무엇보다 맨발의 마라톤 영웅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처럼 맨발로 뛰어서 ‘맨발의 소녀’라는 별명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데커가 “누구든지 내 발뒤꿈치를 건드리기만 하면 가만히 안 둘 거야.”라고 하자 버드는 “난 항상 앞서 달리니까 네 발뒤꿈치 같은 건 건드릴 틈도 없을 걸.”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둘은 트랙에서도 접전을 이어갔습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시작부터 데커가 선두, 버드가 그 뒤를 바짝 뒤쫓았습니다.
1600m 지점에서 버드가 데커를 추월해 선두로 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1700m 지점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앞서 가던 버드의 왼발에 추격하던 데커가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만 겁니다. 트랙 밖으로 나뒹군 데커는 엉덩이를 크게 다쳐 더 이상 레이스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18세 소녀였던 버드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버드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고,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결국 7위로 골인했습니다. 돌발 상황으로 한 선수는 완주하지 못했고, 한 선수는 사실상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버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야유하는 상황에서 메달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며 경기를 포기했음을 실토했습니다.
언론들 사이에서도 논조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온통 버드의 진로 방해라고 비난했고, 영국 언론에서는 버드는 정당하게 자신의 주로를 달렸고, 뒤에 있던 데커가 주의했어야 했다며 팽팽히 맞섰습니다.
버드는 처음에는 진로 방해로 실격 판정을 받았지만, 나중에 국제육상연맹 배심원단들의 비디오 판독 결과 충돌에 책임이 없다고 판정이 번복돼 순위와 기록을 인정받았습니다. 격분하며 버드를 비난하고 나섰던 데커도 훗날 인터뷰에서 “버드가 고의로 나를 넘어뜨린 것은 아니다”라며 “주의하지 않은 나의 책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이후로 두 선수는 나란히 ‘비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데커는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미국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출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며 38살의 나이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하며 끝내 올림픽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선수 생활 말년에 약물 복용 논란에 휩싸이며 1999년 은퇴했습니다. 버드 역시 불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버드는 LA올림픽 이후 당시 인종차별 정책을 펼쳤던 남아공에서 열린 육상 대회에 참가했다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아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남아공이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해 IOC 회원국으로 복귀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남아공 대표로 출전했지만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장래가 촉망됐던 육상 장거리 유망주였던 버드 역시 올림픽 메달을 한 개도 목에 걸지 못하고 쓸쓸히 트랙을 떠났습니다.
한 때 ‘세기의 라이벌’로 불렸던 두 선수가 32년 전의 악연과 악몽을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손을 맞잡고 서로 위로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