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힐러리 클린턴 대 도널드 트럼프의 맞대결로 압축됐습니다. 그 많던 잠룡들은 하나둘 차례로 중도 하차했는데요, 경선에서의 승부는 사실상 끝났는데도, 아직 포기 선언을 하지 않은 주자가 있습니다. 바로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의원입니다.
그는 자신의 선거 캠페인 자체가 정치 혁명의 과정이라며 버티고 있는데요, 단순히 고집 센 70대 노인의 몽니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샌더스 바람이 음으로 양으로 미국 사회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워싱턴 정하석 특파원의 취재파일입니다.
[버니 샌더스/美 민주당 상원의원 : 민주당은 중산층과 노동자의 편에 서며, 월스트리트와 거대 자본 세력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최근 민주당이 당의 정강·정책을 수정했습니다. 민주당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강령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최저임금입니다.
현행 7.25달러 최저임금은 '기아 임금' 수준이라면서 미국인들이 시간당 최소 15달러는 받아야 하고 노조를 결성해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명기한 겁니다.
그런데 이 최저임금 15달러는 사실 샌더스의 공약입니다. 클린턴은 12달러를 고수했습니다. 그러니까 패배한 샌더스의 약속이 승리한 클린턴의 약속을 밀어낸 겁니다.
민주당은 또 인권 침해 논란이 있던 사형제도와 사설 이민자 수용 시설의 폐지도 선언하고 사회보장 제도의 확대와 소수 인종 차별법의 시정도 정강·정책에 집어넣었는데요, 이 또한 샌더스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게다가 월스트리트 금융권에 대한 견제 장치도 들어갔는데, 이 역시 월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샌더스의 공약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금융기관 중역들의 지역 연준 은행 이사직 겸직과 고액의 퇴직금을 금지하고, 월가와 워싱턴 정치권의 회전문 인사를 막아야 한다고 규정했는가 하면, 역외 조세회피 기업의 탈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 겁니다.
물론, 200년 미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거대 정당의 방향이 입당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비주류 정치인 한 명 때문에 단숨에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 중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TPP에 대해서는 결론을 유보했고, 샌더스의 전 국민 의료보험과 공립대학 학비 무료 같은 제안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강정착이 한 발 왼쪽으로 이동했고, 이는 샌더스의 힘이라는 데에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샌더스 스스로도 정강정책이 공개되자 트위터를 통해 만족감을 표시했습니다.
민주당은 정강 정책을 만드는 위원회의 구성까지 바꿔가며 이렇게 좌로 1보 방향을 틀었는데요, 당의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샌더스에 열광한 젊은 유권자들과 소외 계층, 그리고 샌더스가 후보로 선출되지 않을 경우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는 이들을 껴안지 않고서는 11월 본선에서의 승리를 보장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샌더스는 정치권의 아웃사이더로서 미국 사회의 내재적 모순을 공론의 장으로 들고나와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런 샌더스 현상은 정치 참여의 가장 쉬운 방법이 투표라는 점, 그리고 특정 인물이든 철학이든 어떠한 계기를 통해 뭉친 집단이 표 결집의 가능성이 있을 때 정치권은 반드시 그것에 반응한다는 진리를 분명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 [취재파일] 美 민주 '좌로 1보'…'패장' 샌더스의 승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