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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단독] 대한체육회, CAS에도 엉터리 주장

[취재파일] [단독] 대한체육회, CAS에도 엉터리 주장
대한체육회가 수영 스타 박태환 선수의 항소와 관련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도 엉터리 주장을 담은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S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또 시간을 결코 끌 생각이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기존 입장이 무색하게 박태환 측이 제기한 잠정 처분을 CAS가 기각해 달라고 요구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리우올림픽 출전 엔트리 마감 시한이 다가오며 시간에 쫓기게 된 박태환은 지난 6월 2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국가대표 선발 규정 결격 사유 부존재 확인가처분 신청과 함께 CAS에는 잠정 처분을 요청했습니다. 잠정 처분은 긴급한 사안이고 승소 가능성이 높을 때 본(本) 판정 이전에 가(假) 결정, 즉 임시 조치(Provisional Measures)를 내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해 빨리 임시 결론이라도 내려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로부터 8일이 지난 1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이 박태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판결문을 통해 “박태환의 국가대표 자격에 결격 사유가 없으며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지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판결이 나오자 대한체육회의 조영호 사무총장은 지난 4일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잠정 처분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신속한 조처를 하겠다. 체육회가 박태환 관련 사안에 대해 시간 끌기를 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영호 사무총장은 또 “CAS의 잠정 처분이 우리 법원과 같은 내용으로 나올 경우 박태환 선수 관련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이라며 “수영연맹관리위원회에서 박태환을 국가대표로 추천하면 체육회는 이사회를 열거나, 시간이 급할 경우 서면으로라도 이를 승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 사무총장은 “일부에서 체육회가 박태환을 리우에 보내지 않기 위해 시간을 끌 것이라는 억측을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박태환에 유리한 CAS 잠정 처분 결과가 나올 경우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신속한 처리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어제(5일) 서울 태릉 선수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SBS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법원이 박태환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바로 당일인 지난 1일 대한체육회가 CAS에 공문을 발송해 “박태환 측이 요청한 잠정 처분을 기각해 달라”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약속과 달리 일종의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행태입니다. 만약 CAS가 대한체육회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좌절됩니다. 대한체육회가 오는 7월 8일까지 리우올림픽 출전 명단을 국제수영연맹(FINA)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4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박태환 측의 잠정 처분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CAS에 요구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2가지는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엉터리 주장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대한체육회가 보낸 공문을 보면 “2016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수영 국가대표 선발 권한은 대한수영연맹에 있지, 대한체육회에는 없다”고 돼 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CAS에 보낸 공문
 대한체육회는 그 근거로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4조를 제시했습니다.

제4조(국가대표 선발 및 승인) ① 체육회 국가대표 강화훈련에 참가하는 선수, 지도자는 해당중앙경기단체에서 선발하되, 해당중앙경기단체장의 추천에 의하여 체육회의 승인을 받아 국가대표의 자격을 갖는다.

대한체육회는 이런 내용을 당연히 영어로 CAS에 보냈습니다. 영문 번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1) The athletes and managers who participate in the KOC national team’s intensified training shall be selected by the relevant sports association, and shall be qualified as members of national team via recommendation of the head of such sports association with confirmation.


한글로 된 원문에는 분명히 “체육회의 승인을 받아 국가대표의 자격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즉 체육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CAS에 보낸 영문 번역본에는 ‘with confirmation’이라고만 돼 있습니다. ‘confirmation’은 확인이라는 뜻입니다. 대한수영연맹이 확인을 하는지, 대한체육회가 확인을 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with the approval of KOC'(대한체육회의 승인을 받아)라는 명확한 표현을 쓰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만의 하나 의도적으로 이렇게 번역하지 않고 단순 실수라 해도 대한체육회의 주장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대한체육회의 주장대로 대한수영연맹이 리우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선발 권한을 갖고 있다면 논리상 당연히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따라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 아래 사진은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입니다.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
2015년 2월 6일에 대한수영연맹 이사회를 통과한 선발규정에 따르면 “제5조(결격사유)의 개정규정은 이 규정 시행 후 발생한 행위로 형벌 또는 징계를 받은 자부터 적용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박태환이 도핑테스트를 받은 날은 2014년 9월3일입니다. 즉 2015년 2월6일 이전에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자신들이 2014년 7월15일에 만든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6항>을 이유로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막고 있습니다. 수영 국가대표 선발 권한이 대한수영연맹에 있다면 왜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근거로 박태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수영뿐만 아니라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모든 종목의 국가대표 명단은 대한체육회 경기력 향상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됩니다. 선발 권한이 대한수영연맹에 있다고 하면서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력 향상위원회에서 출전 명단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대한체육회는 CAS가 박태환 측의 잠정 처분을 기각해야 하는 이유로 너무 늦게 항소했다는 점을 거론했습니다. 대한수영연맹이 지난 5월11일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예비명단을 발표했을 때 대한수영연맹을 대상으로 21일 안에 항소를 해야 했는데 박태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2014년 7월15일에 제정됐고 금지 약물 복용으로 인한 징계가 2015년 3월에 확정됐는데 왜 1년이 지난 뒤에 대한체육회를 대상으로 CAS에 항소를 했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과 관련해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수없이 드러냈습니다. 처음에는 CAS 판결이 나오면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가, 박태환이 가처분 신청을 하자, CAS 판결은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뜻을 나타냈고,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야 CAS 판결에 따르겠다며 오락가락 행태를 몇 달 째 보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이미 명쾌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연간 국민 세금 4천 억 원을 쓰는 대한체육회가 국민을 더 이상 우롱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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