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플러스] 아이티에 콜레라 퍼트린 'UN 평화유지군'

의료기술의 발달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늘어난 것도 맞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에 없던 전염병이 새로 생겨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중미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는 지난 6년간 75만 명이 콜레라에 감염돼 현재 국민 14명 중 1명이 콜레라 감염자라는데요, 이 엄청난 수치와 함께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이름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습니다. 남주현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지난달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의학 저널 Lancet에 Dear Mr. Ban Ki Moon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의학 매체가 세계 보건 기구 WHO의 사무총장이 아닌 UN 사무총장에게 건의하는 내용을 실은 겁니다.

사설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9년여 재임 기간 동안 모자 보건과 기후 변화 같은 글로벌 보건 이슈와 관련해 공적을 세웠다고 치켜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UN 평화유지군 때문에 아이티에 창궐한 콜레라와 관련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이티 하면 지난 2010년 1월 발생한 대지진이 떠오르죠. 당시 사망자만 10만 명이 넘었고 50만 동이 넘는 건물이 무너져내렸을 정도로 피해는 크고 심각했습니다.

수도 포르토 프랭스의 기반 시설도 상당수 무너져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구조 인력과 의료진을 파견해 구호 작업을 도왔는데요, 지진 전인 2004년부터 아이티에 주둔하고 있던 UN 평화 유지군도 힘을 보탰습니다.

그런데 지진으로 인한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가 싶던 그해 10월 아이티에 전에 없던 콜레라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역학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네팔에서 온 UN 평화유지군이 콜레라균을 퍼트렸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콜레라에 걸린 병사들의 배설물을 위생시설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강에 방류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이티에서 첫 번째 콜레라 감염자가 확인되기 3주 전에 UN 평화유지군 내에 콜레라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진으로 고통받던 가난한 아이티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는데요, 9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행히 살아남았다고 해도 적지 않은 병원비 때문에, 또 장례비 때문에 자녀 학비를 포기하거나 저금을 터는 이들이 속출했습니다.

재작년 아이티를 방문한 반기문 총장은 콜레라 확산 방지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심지어 분노한 아이티인들은 지난해 한글로 "우리 인권을 보호해주세요"라는 팻말까지 만들어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와 정당한 보상으로 UN을 상대로 소송까지 진행 중이지만, UN은 모든 법적인 절차로부터 면제된다는 일종의 면책 특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UN이 먼저 나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이티 내 콜레라의 기원을 밝혀낸 이런 지난한 과정은 미국에서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는데요, UN 측은 평화유지군에 의해 콜레라균이 유입됐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금전적 보상에 관한 언급은 없을뿐더러, 아이티의 상하수도 시설 같은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면 이렇게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거라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할 정도로 아이티가 거대한 상대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데요, UN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해온 반 총장이 임기를 끝내기 전 아이티의 콜레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세계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이목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 [취재파일] 콜레라 대유행…그 누구의 책임인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