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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람 냄새 나는, 인간적인 탐사보도

- AP의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퓰리처상 수상기

[취재파일] 사람 냄새 나는, 인간적인 탐사보도
“노예 노동에 착취당하고 있던 취재원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기사를 1년 넘게 취재했던 우리 취재 기자들도 특종 욕심보다는 그들의 안전이 우선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모두 구출될 때까지 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 마리 라즈쿠마, AP 국제기획 에디터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발표자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올해 IRE(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 컨퍼런스에서 이례적인 기립 박수였는데요. 노예 노동에 시달리던 동남아시아 인신 매매 피해자 2천 명을 구해내 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AP 탐사 보도팀은 탐사 보도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사람’, ‘인간적인 탐사 보도’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전미탐사보도협회(IRE: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는 매년 IRE 연례 컨퍼런스를 개최해 탐사보도의 최신 기법과 보도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올해 컨퍼런스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지난 6월 15일부터 닷새간 열렸고, 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하는 ‘KPF 디플로마 탐사 보도 과정’의 일환으로 올해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AP 통신 탐사보팀은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연속보도로 지난 4월 퓰리처상 공공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 보도는 동남아시아산 해산물이 어떤 노동과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미국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과정을 폭로했는데요. 이 보도로 동남아시아에서 노예노동에 착취당하던 노예 노동자 2천명이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철창에 갇혀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는 어부들의 사진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번  IRE 연례 컨퍼런스에는 AP 탐사보도팀을 이끌었던 마리 라즈쿠마 국제기획 에디터가 발표자로 나섰는데요. 1년이 넘는 취재를 끝내고 특종보도를 눈 앞에 둔 상황에서, 기사 송고를 미루고 취재원들을 안전하게 구출해내기로 했다는 대목에서는 발표장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의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종 업계 경쟁자이기도 한 참석 기자들에게 받은 기립박수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달랐겠지요.

마리 라즈쿠마 에디터는 1시간 강연을 모두 사진으로만 진행을 했는데요.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도 뒷이야기를 마리 라즈쿠마의 강연 형식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산물, 특히 새우가 우리 수퍼마켓까지 오게 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인도네시아의 벤지나 섬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벤지나 섬은 굉장히 외딴 섬이에요. 동남 아시아보다는 오히려 호주나 파푸아 뉴기니에 더 가깝죠. 이 지도 사진을 보여드리는 이유는 이 섬이 얼마나 외딴 곳인지, 그리고 우기가 되면 몇 개월간 섬 근처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곳이라는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 사진은 이주 노종자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섬에서 우리 기자들이 발견한 것은 수백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요. 그들은 무리를 지어 숲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노예 노동자들, 특히 미안마 사람들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서류가 위조되어 이곳에서 일하게 된 걸 증명하는 거죠. 이들은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꼬임에 빠져 이곳에 갇히게 된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20 년이 넘게 이곳에 있었어요. 이 사진 속 노동자는 우리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언젠간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철창에 갇혀 도망치지 못했고, 만약 도망친다 해도 붙잡히면 고문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AP 취재진은 사진과 영상을 이분들에게 받았는데, 우리 기자들이 카메라를 주고 부탁했죠. 보시다시피 그는 들킬까봐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고 그래서 사진과 동영상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
“동남아시아 지도인데요. 우리가 어떻게 노예 어부들을 태운 배를 추적했는지 보여주는 사진이에요. 우린 인공위성을 이용해 배들이 보내는 신호를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배가 벤지나 섬에서 출발해서 태국의 항구에 도착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배가 도착하면 트럭으로 물건을 옮겨 실었어요. 기자들은 그 트럭을 추적했어요. 트럭에 실린 해산물은 여러 개의 중소기업을 통해 거래되었고 이 중 여러 회사들은 정식 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회사들이었어요. 이렇게 여러 회사를 거쳐 옮겨진 다음은 미국 수입 세관신고서가 미국까지 수입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태국산 해산물과 새우가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들입니다. 노예 노동의 비극이 감춰진 채 수입된 해산물은 미국내 거대 유통 기업인 월마트, 레스토랑 체인 레드롭스터, 친환경 유기농 브랜드인 홀푸즈, 애완동물 사료 업체인 웰니스 등에 공급되고 있었어요. 특히 여기 보이는 애완 동물용 먹이 보이시나요?  이게 정말 슬픈 부분이었어요. 노예 노동자들이 겨우 죽 한 그릇 먹으면서 정작 본인들은 먹지도 못하는 해산물들은 이런 식으로 애완 동물용 사료로 판매되고 있다는 게, 여러분 상상이 되나요?”
AP의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퓰리처상 수상기
“여기 이 사진 얘기는 아주 멋져요. 여기 사진 속에 노동자들이 뛰어가죠? 우리가 인도네시아 정부에 연락을 해서 정부에서 이 섬으로 사람들을 보냈어요.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즉시 거기 있던 사람들을 구출해 왔죠. 처음에 일부 노동자들은 무서워서 정부 공무원들을 피해 도망가는 게 보이시나요? 이 사진 속 사람들이 모두 구출됐어요.”
“여기 사진 속 사람들도 모두 구출됐어요. 이 사진 속 사람들은 위조 서류에 적힌 가짜 이름 말고 자기의 진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어요. 이렇게 자기 이름을 보이면서 사진 찍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뒀어요.”
“우린 취재 과정에서 만난 노동자들 중 몇 명을 따라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상봉하는 것을 취재하기로 했어요. 여러 명을 동행했는데 이 사진 속 남자는 그 중 한 명이에요. 이 사진에서 그는 20 여 년 전 헤어졌던 가족과 만나고 있는 장면이죠. 떠날 당시 그녀가 10살이었답니다. 이 사진은 어머니와 만나는 장면이고, 이 사진은 이 지역의 전통으로 씻어내는 의식이라고 들었습니다.”

● 퓰리처상 100년 역사상 AP의 첫 ‘공공부문’ 수상

1846년 설립된 AP는 1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통신사입니다. 1917년 퓰리처상(Pulitzer Prize)이 시작된 이후로 AP는 이번 ‘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시리즈까지 모두 52번의 퓰리처 상을 수상했었는데요. AP가 퓰리처상 100년 역사상 언론분야 중 최고 영예인 ‘공공부문(Public Service)’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공공부문’은 기자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가 받는 상으로, 퓰리처상 여러 분야 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수상입니다.  그만큼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탐사보도의 미국내 반향이 컸다는 뜻입니다.
이번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은 마리 라즈쿠마 에디터를 팀장으로 마사 멘도자, 로빈 맥도웰, 에스더 투산, 마지 메이슨 등 5명의 베테랑 여기자들이 팀을 이뤄 작업했습니다.
▲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탐사보도로 올해 퓰리처상 공공부문을 수상한 AP 취재진. 위 사진은 이번 IRE 컨퍼런스에서 강의하고 있는 마리 라즈쿠마 에디터. 아래 사진 속 왼쪽부터 마사 멘도자, 로빈 맥도웰, 에스더 투산, 마지 메이슨 기자. 마사 멘도자 기자는 지난 200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주민 학살 기사로 이미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들 모두는 미국과 아시아 각각 다른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온라인 등으로 소통하며 1년이 넘는 탐사보도를 진행했다.
여성 기자들로만 이루어진 팀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한국 언론 상황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라고 말을 건내 봤습니다. 마리 라즈쿠마 에디터는 “처음부터 여성 기자들로만 팀을 구성한 건 아니었지만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자들이 하나둘 합류한 결과가 우리 팀”이라고 답했습니다. “미국 언론 환경에서도 여전히 흔한 일은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는데요.

마리 에디터는 “취재 과정이 길어지고 어려움이나 위험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팀워크가 정말 중요했는데, 베테랑 여기자들의 역할과 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 취재였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AP탐사보도팀의 올해 퓰리처상 공공부문 수상은 AP가 '탐사보도 강화 방침'을 밝힌 지난 2014년 이후 2년 만의 쾌거입니다. 이번 KPF 디플로마 연수 과정에서 만났던 AP의 미국 뉴스 부국장인 브라이언 카로비아노 기자는 “AP만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뉴스를 만들 최고의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게 탐사보도라고 생각했고, 탐사보도야말로 앞으로 최고의 승부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촉각을 다투는 속보 경쟁 속에 혹시 언론의 본질적인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 기자 입장에서 많은 걸 느끼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AP통신 탐사보도 홈페이지
http://www.ap.org/explore/seafood-from-slaves/

◆ '노예노동에서 온 해산물' 인터랙티브 홈페이지
http://interactives.ap.org/2015/seafood-from-sl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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