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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37개, 징계 시점 제각각

현재 수영스타 박태환 선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최소한 37개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7개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1개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36개 종목 경기단체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모두 합친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단체 가운데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포함되지 않는 종목이 많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에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37개보다 훨씬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정작 큰 문제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 즉 결격사유를 명시한 조항을 언제부터 적용할 것인지가 경기 단체마다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박태환이 소속된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보면 아래 사진처럼 돼 있습니다.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
2015년 2월6일에 대한수영연맹 이사회를 통과한 선발규정에 따르면 “제5조(결격사유)의 개정규정은 이 규정 시행 후 발생한 행위로 형벌 또는 징계를 받은 자부터 적용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박태환이 도핑테스트를 받은 날은 2014년 9월3일입니다. 2015년 2월6일 이전에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2014년 7월15일에 제정됐습니다. 박태환이 도핑테스트를 받은 날보다 앞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리우올림픽에 나갈 수 없게 됩니다. 쉽게 말해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과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결격사유를 적용하는 시점이 달라 혼동이 생긴 것입니다.

박태환 측 법률 대리인도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대한체육회 규정이 실제로 발효된 시점이 2015년 2월6일이기 때문에 박태환에게 <제5조6항>을 적용해 ‘이중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에 대해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만든 뒤 각 경기단체에 공문을 보내 6개월 안에 각 단체의 특성에 맞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대부분 대의원총회가 1월에 있다 보니 2015년 1월에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만든 단체가 많이 있다. 대한체육회와 각 경기단체의 규정이 다를 경우 대한체육회가 상위 기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체육회 규정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박태환에게 결격사유 조항(제5조6항)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제정된 지 10일 만인 2014년 7월25일에 자체 선발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체육회 말과 달리 6개월이 지난 뒤에 선발규정을 만든 경기단체들도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농구협회는 2015년 1월20일에, 대한수영연맹은 2015년 2월6일에 자체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제정했습니다.    

단순히 6개월을 넘겼다는 것보다 더 큰 논란은 경기단체마다 결격사유 적용 시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탁구협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2015년 1월19일에 제정됐습니다. 부칙 <제2조1항>을 보면 “제5조(결격사유)의 개정규정은 이 규정 시행 후 발생한 행위로 형벌 또는 징계를 받은 자부터 적용한다”고 돼 있습니다.
대한탁구협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그러니까 똑같이 금지약물을 복용해도 탁구 선수는 2015년 1월19일 이후부터 발각된 사실로 징계를 받게 되지만 수영 선수는 2015년 2월6일 이후에 발각돼야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2015년 1월30일에 도핑 테스트를 실시해 탁구 선수와 수영 선수 모두 양성 반응이 나왔다 해도 수영 선수는 빠져나갈 구멍이 마련돼 있는 것입니다.

각 종목마다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즉 결격사유를 적용하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입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각 경기단체 규정은 효력이 없고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한체육회의 주장이 맞는다면 최소한 36개 경기단체가 왜 이런 규정을 부칙에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체육회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각 경기단체는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한 점은 대한체육회가 1년이 넘도록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시정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를 관리 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도 취재 결과 이런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체육단체 통합에는 ‘감 놔라 배 놔라’하며 일일이 참견하고 간섭했던 문체부가 정작 규정 불일치에는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종합 5위를 차지한 스포츠강국입니다. 경기력에서는 선진국이지만 체육행정에서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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