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가격으로 배를 수주했던 국내 조선사들의 관행이 결국 회사 경영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채권단 관리를 받으며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았던 STX조선해양이 저가 수주로 손해가 뻔한 선박 계약을 취소하느라 발주사에 물어준 배상비용만 6천억원이 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성 위기를 겪던 STX조선해양은 2013년 4월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성동조선해양 역시 선박을 저가에 수주해 엄청난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29일 산업은행과 STX조선해양 등에 따르면 채권단 관리하에서 STX조선해양은 2007년~2015년 사이 맺은 선박 수주계약 53건을 해지했다.
이 가운데 선주사가 계약 취소를 요구한 것은 4건 뿐이다.
나머지 49건은 STX조선해양 자체 요구로 수주계약을 취소했다.
채권단 관리 이전인 2007~2013년 사이 배를 헐값에 수주한 탓에 계약금액보다 건조비용이 더들어 배를 만들면 이익이 남기는 커녕 손해가 예상돼 차라리 거액의 배상금을 물고서라도 계약 취소를 한 것이다.
STX조선해양은 2012년 6월 유럽선주로부터 LNG운반선 1척을 1억9천200만 달러에 수주했다.
그러나 STX조선해양은 2014년 해당 선박게약을 취소하면서 3천250만 달러를 물어줬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당시 LNG운반선 1척의 시장가격이 2억달러 이상이었다며 STX조선해양이 수주를 목적으로 싼 가격에 계약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STX조선해양이 이런 방식으로 계약을 취소하면서 물어준 배상금을 원화로 환산하면 6천300억원에 달했다.
직접 배상금 외에 선박건조 도중 계약을 취소했을 경우, 그동안 투입했던 자재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채권단 관리하에서 STX조선해양은 4조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지원 받았다.
STX조선해양을 살리겠다며 쏟아부은 공적자금 15% 가량이 배상금으로만 빠져 나간 것이다.
한때 수주잔량이 100척 이상에 달했던 STX조선해양은 현재 수주잔량은 50여척에 불과하다.
현재 선주사에 인도를 앞둔 선박 일부도 건조 과정에서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 사용내역 공개를 요구해 온 STX조선해양 노조는 "회사가 한때 저가 수주를 했던 적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채권단은 계약취소를 한 정확한 이유를 포함해 공적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STX조선해양이 건조계약을 파기한 선박은 대부분 2009~2014년 사이 계약을 한 것들이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인 해운업 침체로 선박 발주가 그 이전보다 뜸해 조선사들이 과도하게 수주경쟁에 뛰어들던 때였다.
STX조선해양 역시 저가 수주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인 성동조선해양 역시 저가수주 덫에 빠졌다.
감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를 보면 2010년 3월부터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성동조선해양은 건조원가 승인 기준에 못 미치는 선박 12척을 수주해 1억4천300만 달러(1천68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감사원은 성동조선해양이 건조원가를 과도하게 낮게 산정해 선박수주를 했고 수출입은행은 이를 통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저가수주 유혹에서 벗어나긴 힘든 이유는 제조업과 다른 조선산업 특성때문이다.
통상 선박계약을 하면 계약금으로 배값의 10% 정도가 조선소에 들어온다.
이후 공정단계에 따라 건조대금을 나눠 조선소에 지급한다.
한 조선소 관계자는 저가로 배를 수주했더라도 계약금 형태로 현금이 계속 들어오면 공장을 돌리는데 일단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일정기간 수주가 끊기면 돈이 들어오지 않아 현금 흐름에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원가에 못미치는 가격으로 수주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