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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비 30년 만에 반토막…재고↑·가격↓ '악순환' 갈수록 심해

밥 먹기·막걸리 제조·수출…정부·지자체·농협 소비촉진 '안간힘'<br>쌀이 비만 원인?…전문가들 "오해하지 말아야, 밥은 '좋은 탄수화물'"

쌀 소비 30년 만에 반토막…재고↑·가격↓ '악순환' 갈수록 심해
남아도는 쌀 문제가 심각하다.

쌀 소비가 급격히 줄며 양곡 창고마다 쌀은 넘쳐나고 쌀값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6년 만의 대풍을 이룬 데다 쌀 시장 개방을 미루며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들여오는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은 2014년 20년 만에 8배가량 늘어 재고 쌀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쌀 수확기와 수매철이 다가와 재고 쌀 처리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농협, 농민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쌀 자체 매입 농협과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적자 증가로 줄도산을 걱정하는 처지다.

정부가 쌀 수급 안정과 재고관리 대책을 추진하고 지방자치단체 등도 각종 소비촉진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한계에 직면했다.

식량 주권 확보 차원의 쌀 소비촉진 방안과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농협 등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쌀 가공식품 등을 포함해 내수 판매나 수출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쌀 재고 소진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 양곡 창고 쌀 재고↑, 소비↓…가격 하락 '악순환' 심화

농림수산식품부가 밝힌 5월 말 현재 쌀 재고량은 175만t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43만t보다 많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권장 적정 재고량(80만t)의 2배에 달한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432만7천t으로 2009년(492만t)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다.

쌀 재고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아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들여오는 TRQ 물량은 1995년 5만1천t에서 2014년 40만9천t으로 8배가량 늘었다.

올해 들어 추가 격리한 쌀도 정부 보관으로 이어져 재고량 증가는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재고량은 느는 데 소비량은 계속 줄어 문제다.

지난해 국민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4g이다.

1년 전인 2014년보다 3.3% 줄었다.

밥 한 공기 쌀은 100∼120g으로, 국민 1명이 하루에 공깃밥 두 그릇도 채 먹지 않는 셈이다.

1985년 국민 1인당 연간 128.1㎏의 쌀을 소비했지만 30년 만인 지난해 62.9㎏으로 반 토막 났다.

이러다 보니 양곡 창고마다 남는 쌀로 넘쳐나고,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20㎏ 기준 3만6천156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4만84원보다 9.9%(3천928원)나 떨어졌다.

정부가 지난해 말 쌀 20만t을 격리한 데 이어 올해 3월 15만7천t을 추가로 시장 격리했음에도 쌀값은 지속 하락세다.

쌀 소비 감소, 재고 누적, 가격 하락은 농협과 민간 RPC 운영난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농협 RPC 149곳, 민간 RPC 74곳 등 224곳 가운데 농협 57%, 민간 5.4%가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했다.

부산 가락농협 관계자는 30일 "지난해 재고는 4천950t이었으나 올해는 6천625t이다. 재고 쌀은 크게 늘고 있는데, 판매처가 없다. 올해 적자만 2억원으로 예상한다"며 "10월 수매 때까지 재고를 해결하지 못하면 수매 차질 우려가 크다"고 토로했다.

쌀 가격이 지속해 하락하면 다가오는 수확기 쌀값에도 영향을 미쳐 농가, RPC, 정부 모두에게 재정 압박으로 다가온다.

실제 쌀 재고 누적으로 정부의 관리 부담도 커지고 있다.

재고 쌀 10만t을 1년간 관리하는 직·간접적인 비용은 보관비, 가치 하락분 등을 포함해 약 30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쌀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어서 안정적인 생산도 중요하지만, 먹지 않는 쌀을 생산·보관하는데 과도한 예산이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 정부, 쌀 수급안정대책 효과 '글쎄'…농민 "농가 소득 보장해야"

정부는 쌀값 불안정, 재고 과다 등을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중장기 쌀 수급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적정 생산과 수요 확대를 통해 쌀 수급균형을 달성하고 유지하는 게 목표다.

2018년까지 쌀 재고를 80만t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자연감소분을 포함해 벼 재배면적 3만㏊를 올해부터 3년간 지속해 줄이고 논에 다른 작물 재배를 유도하는 등 생산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다른 작물 수매 물량·품목 확대, 수입물량 축소 등으로 쌀 공급을 조정하는 한편 사료용 쌀과 쌀 이용 술 산업 등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쌀 수출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간척지 등에 수출용 벼 재배단지를 200㏊에서 500㏊로 늘리고, 쌀 수출협의회 등을 통한 해외 마케팅도 강화해 내년 8천t, 2020년 2만5천t, 2025년에 5만t을 수출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그러나 정부 대책을 받아들이는 현장의 목소리는 비판적이다.

우선 생산조정제는 이미 두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농가소득을 보장해 동참을 끌어내야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2012년부터 추진한 논 다양화 사업은 중도에 중단, 쌀 가공업체들이 혼란만 겪었다고 농민들은 주장한다.

쌀 전업농들은 올해도 풍년을 예상하는 만큼 쌀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일본처럼 쌀 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료용 쌀 전용단지 지속 확충, 밥쌀용 TRQ 쌀 물량의 사료·가공용 활용 검토, 쌀 유통시장 개선, 실질적인 소비촉진 행사 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행권 전남도 양곡 유통담당은 29일 "쌀 생산을 줄이고 소비를 확대하는 '투 트랙 안정화 대책'이 필요하다"며 "민간 주도의 생활 실천형 식생활 교육을 강화해 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건강한 음식문화 정착을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재고 해결은 소비를 늘려야"…소비촉진 운동·수출 등으로 타개

정부는 올해 쌀 소비촉진을 통해 재고량을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식생활 교육을 확대하고, 쌀 가공식품 급식횟수는 연 12회에서 16회로 늘렸다.

쌀·가공식품 공용홈쇼핑 기획판매전, 쌀가루 활용 제과·제빵 개발,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와 연계한 쌀 가공식품 창업 촉진 방안도 추진한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사료용 쌀, 쌀 이용 술 산업 등 신 소비처 발굴, 쌀과 가공식품 수출 확대를 위한 생산기반 조성부터 현지 시장 개척 지원을 비롯해 쌀 가공시장 규모 확대 등으로 수요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농협도 쌀 소비촉진에 나섰다.

지난달 쌀 판매확대 출정식에 이어 9월까지 7천억원어치 판매를 추진한다.

신규 거래처 개발, 고향 쌀 팔아주기 운동, 온라인 쇼핑몰인 농협 a마켓을 통한 판매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쌀 소비촉진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경기도와 시·군, 농협 등은 유통업체와 함께 대대적인 판촉전을 하고 있다.

대규모 쌀 소비 사업장과 농민을 직접 연결, 계약재배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막걸리와 떡 생산업체에 소비 증대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인천도 대기업 구내식당 등 집단급식소에 판촉활동을 강화하고 농협 등과 함께 각급 학교 등을 돌면서 김밥 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경북도 중·고생 아침밥 먹기 캠페인과 올바른 식생활 교육을 하면서 농수특산물 전문쇼핑몰 '사이소'를 통해 마케팅을 강화했다.

충북 음성군과 농협 등 지역 13개 주요 기관은 최근 '다올찬 쌀 6만포 소비촉진 운동 발대식'을 하고 소비촉진에 나섰다.

반채운 농협중앙회 음성군지부장은 "쌀 소비량이 급격히 줄고 재고량은 늘면서 가격이 계속 내려가는 등 쌀 산업 침체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며 "쌀 소비를 늘려 건강도 챙기고 농가도 살리자"고 호소했다.

수출로 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강원도는 2월 중국에 41t을 시작으로 올해 수출을 100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경기도 평택시는 지난달 싱가포르에 '슈퍼오닝 쌀' 10t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연간 200t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천시도 같은 달 '임금님표 이천쌀' 중국 100t을 수출하고 연말까지 400t을 수출할 예정이다.

쌀을 이용해 막걸리를 제조하는 곳도 늘고 있다.

부산과 전남 광양에서는 양조업체와 농민이 '양조용 벼 계약재배 협약'을 하고 막걸리 생산에 나서는 등 전국 곳곳에서 쌀을 이용한 막걸리 제조가 이어지고 있다.

◇ 쌀이 비만 원인?…소비 기피에 전문가 "오해하지 말아야"

쌀 소비 감소 원인 가운데는 쌀에 있는 탄수화물이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탓이 크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정호 충북대 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과다한 탄수화물 섭취가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필수 영양소인 탄수화물 등이 부족하면 대사 불균형을 일으켜 반드시 적당량을 섭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명순 영동대 호텔 외식조리학과 교수도 "과당, 밀가루 등 인공 정제된 탄수화물은 섬유질이나 필수지방산이 모두 제거된 채 칼로리만 높아 비만을 부를 수 있다"며 "그러나 밥으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소화 시간이 길고 포만감을 줘 체중조절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밥은 '좋은 탄수화물'로 건강과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정부도 국민을 상대로 밥을 더 먹자는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비만을 유발하는 설탕이나 밀가루 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자 쌀의 영양학적 가치 홍보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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