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1년 반 뒤부터는 존엄사법이 시행에 들어갑니다. 이런 가운데 극장가에서는 존엄사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화 <미 비포 유>가 상영 중인데요, 영화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질문입니다. 김영아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당신 때문에 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어요.]
[그거 알아요? 당신이 내가 아침에 눈을 뜨는 거의 유일한 이유라는 거.]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어깨 아래 전신이 마비돼 존엄사를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시한부 환자도 아니고, 몸은 다쳤지만, 지적 능력엔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게다가 부모는 성 하나를 통째로 소유하고 있을 만큼 부자여서 원한다면 최고 수준의 치료와 보살핌을 평생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통을 견디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 그리고 이전에 느꼈던 기쁨을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결코 느낄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데요, 이런 주인공의 판단에 관객들은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같은 아픔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대응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젊은 여성이었던 브리타니 메이나드와 로렌 힐은 둘 다 똑같이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한 명은 캠페인 차원에서 날짜를 예고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해 미국 여러 주에서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 제정에 기여한 반면, 다른 한 명은 마지막까지 병마와 싸우면서도 농구 경기에 출전해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누가 맞았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명 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고, 스스로가 중시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뒤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역시 본인은 존엄사를 맞이하면서도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게 삶에 대한 의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열심히란 그저 쉬지 않고 바쁘게 부지런 떨며 살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식의 삶이 자신에게 중요한지를 찾아내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존엄사를 둘러싼 찬반 대립은 여전합니다. 반대하는 이들은 존엄사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존엄사법의 근간은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포기하는 것도 열심히 사는 것의 일환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게으름처럼 사소한 포기일 수도 있고 존엄사를 택하는 것처럼 더 적극적인 포기일 수도 있겠죠.
결국, 삶이 우리에게 던진 의무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냥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 지를 찾는 거라고 김 기자는 전했습니다.
▶ [이 영화, 이 대사] '미 비포 유'…"최대한 열심히 사는 게 삶에 대한 의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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