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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르만스크에 울려 퍼진 아리랑

2016년 6월16일. 러시아 북서쪽 끝 도시 무르만스크. 콜라반도 북서부에 깊이 만입한 피오르드 안쪽 천혜의 부동항이다. 북극항로의 출발점이자 러시아 연방의 북방함대, 원자력 잠수함의 기지로 북극권에서는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무르만스크 위치 (사진=네이버 지도 캡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9시간 거리의 모스크바공항에서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도 2시간 반을 더 날아야 닿는 곳. 한국에서는 멀고 먼 곳이다. 북위 69도에 걸쳐 있어 연중 3/4이 혹한의 겨울이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한 지난주(6월15일 - 17일)는 이 도시로서는 한 여름. 특히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기간이었다. 온종일 단 1분도 어둠은 커녕 노을도 없이 낮이 이어진다. 일몰시각 자정, 일출시각 자정. 이방인으로서는 신기하기 짝이 없다.
 
이날 오후 7시 무르만스크 도심의 키로프 문화회관.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북극권의 개방과 북극 평화지역 설립을 제안한 '무르만스크 선언문'이 발표된 이곳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한국의 가야금과 대금으로 아리랑 등 우리의 민요가 연주됐고, 부채춤 등 한국무용이 공연됐다. 한러간 상호이해와 교류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문화공연이 펼쳐진 것이다. 한국에서 온 이성애씨 등 3명의 가야금, 대금 연주는 객석을 가득 메운 7백여 현지 관객의 심금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특히 한국악기로 그들의 음악인 '백만송이 장미', '카츄사' 등을 연주할 때는 모두가 기립해 '브라보!'를 외치며 열광했다. 모스크바에서 온 한국무용단 역시 마치 묘기를 보이듯 우리의 전통 춤사위를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박진감 넘치게 펼쳐 보였다. 이들은 '소리새'라는 이름의 모스크바 한국춤예술단으로 한국무용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의 아마추어 모임이라하니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 도시가 생겨난 이후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이 이날 밤 펼쳐진 셈이다.
38년전인 1978년 4월 20일. 대한항공 여객기 902편이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승객 97명과 승무원 13명 등 11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한국과 소련간에 수교는 물론 항공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여객기는 미국 알래스카를 경유하는 북극항로로 운항됐다. 그러나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 급유를 받을 시간이 됐는데도 항공기는 도착하지 않았고 교신조차 끊겼다.

여객기의 행방을 알려준 것은 외신이었다. AP통신은 당시 백악관 대변인인 조지 파웰의 말을 인용해 "마지막 교신 지점과 레이더 추적결과 등으로 미뤄볼 때 여객기는 소련 영토에 강제착륙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주한 미대사관측이 "대한항공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음이 레이더에 포착됐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왔다.
 
국교도 없는 적성국가 소련으로 들어간 항공기의 행방과 탑승객의 안전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항공기는 21일 오전 소련 영내로 들어가 2시간30분간 공중을 선회한 뒤 무르만스크 남쪽의 한 얼어붙은 호수에 강제착륙 당했다는 것이었다.

착륙과정에서 비행기 동체가 크게 부서지고 2명이 숨졌으나, 기적처럼 대부분의 탑승자들은 무사했다. 사망자는 한국인 1명과 일본인 1명으로, 이들은 소련 전투기의 열추적 미사일 공격으로 객실에 날아든 파편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련 측과 탑승자 송환 협상을 벌였다. 훗날 조사결과 항공기 조종사와 항법사의 실수로 인해 여객기가 항로를 이탈, 소련 영내에 들어갔다가 소련 전투기 SU-15의 미사일 2발을 맞고 강제착륙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련 전투기는 여객기가 저지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비행하자 미국 정찰기 RC-135로 오인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소련과의 협상 끝에 미국은 팬암기를 현지로 급파했고, 승객과 승무원, 화물의 인수인계 절차가 결정됐다. 그러나 여객기는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냉전이 빚은 이 사건은 자칫 엄청난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지만, 다행히도 기장의 침착한 대응 속에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대형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킨 조종실력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다시 시간은 36년을 거슬러 올라 2016년 6월. 그 사이 한국과 소련은 정식 수교를 맺었고(1990년 9월30일), 여객기의 영공통과는 물론 모스크바 공항과 인천 간의 직통 노선도 개통돼 하루에도 수차례 항공기가 오가고 있다. 수교 26주년 동안 양국 정상들이 상대국 방문을 포함해 수차례 정상회담을 갖으며 '우호 협력'을 약속했다. 특히 2008년 9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두 나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지난 한 주만 해도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한러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두나라 장관들은 한러간 실질협력 증진방안과 북핵문제 관련 공조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다음날인 6월14일에는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러 대화 정경 컨퍼런스'가 열렸다. 양국의 석학들이 마주앉아 동북아시아 안보문제와 한러 경제 협력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16일에는 무르만스크에서 열린 '한러 북극해 항로 협력 세미나'에 우리 측에서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를 기념해 우리의 국악과 춤 공연이 펼쳐졌고, 우리 영화 '건축학개론'이 러시아어 자막으로 상영됐다. 민항기임에도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미사일로 공격했던 38년 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두 나라의 관계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겉모습과는 달리 늘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적의 친구'였던 한국전쟁의 악연일 수도 있고, 이념의 벽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두 나라의 관계는 1대1의 직접 관계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라는 변수가 늘 따라 다니는 묘한 관계를 이어올 수 밖에 없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전략적' 관계인 한러 두나라는 '전략적' 입장차이를 드러냈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이 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전문 34개항의 서울공동선언문을 발표했지만 후속조처는 별로 이뤄진 것이 없다. 그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의 제재동참 요청에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이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은 채 어정쩡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우리 외교부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두 나라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징후가 감도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나라 장관회담에서 우리가 요구했던 북한 핵문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단호한 입장이 천명됐고, 반대로 우리가 우려했던 사드문제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도 뒤따를 조짐이라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한러 관계가 전략적 관계에서 전면적 협력관계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를 위해서는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소련'이라는 우리 내부의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한국과 러시아 정부는 각각 북한과 미국 요인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러시아는 남북분단에서 오는 기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역시 한러관계를 한미관계의 종속변수로 보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미동맹과 한러의 전략적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창조적 실용외교가 절실하다. 이것은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선 것으로 한국외교의 새로운 혁신과 도전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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