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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태환, 높은 분에게 찍혔다"…씁쓸한 체육계 풍토

[취재파일] "박태환, 높은 분에게 찍혔다"…씁쓸한 체육계 풍토
수영스타 박태환 선수와 대한체육회가 리우올림픽 출전을 놓고 결국 벼랑 끝까지 가게 됐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지난 16일 제3차 이사회를 통해 박태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 6항을 개정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국제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오늘(20일)부터 본격적인 심리에 나설 계획입니다.

규정이나 상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한체육회의 최근 행태는 한마디로 막무가내입니다. 금지약물 복용 선수의 '이중 처벌'을 명시하고 있는 현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명백히 <올림픽 헌장>과 세계 반도핑 규약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정관에 "국내 규정과 올림픽 헌장이 다를 경우 올림픽 헌장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체육회는 여전히 '모르쇠'로 버티고 있습니다.

심지어 CAS가 박태환의 손을 들어줄 경우에도 무조건 따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를 보면 어떤 선수가 항소를 할 경우 오로지 분쟁을 명백하게 해결할 수 있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만 항소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CAS는 스포츠 관련 중재 규정에 따라 분쟁을 명백하게 해결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정관은 지키라고 만든 것입니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CAS의 판결을 수용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면 현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즉 아무 의미가 없는 조항을 만든 셈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선수가 억울한 일을 당해 CAS에 항소해서 승소한다 해도 대한체육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 규정에 항소는 오직 CAS에만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A선수는 마땅히 달리 하소연할 곳도 없게 됩니다.

또 CAS는 분쟁을 명백히 해결한다고 돼 있습니다. 명백히 해결한다는 것은 CAS의 결정이 사실상 최종 결정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한체육회는 당연히 CAS의 판결을 수용해야 합니다. CAS의 판단을 수용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궤변이자 자신들이 만든 정관도 지키지 않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연간 국민 세금 4천억 원 이상을 쓰는 공공기관입니다. 공공기관이 이런 식의 행태를 지속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대한체육회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B씨는 그 속사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대한체육회 스스로 만들었다기보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주문생산 성격이 더 강하다. 어찌됐든 대한체육회로서는 자신들이 만든 정관이 국제규정에 어긋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지금 와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는 것은 대한체육회가 선수 1명에게 지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제가 만나본 대한체육회의 어느 누구도 박태환을 리우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위 직원부터 고위급 인사까지 한결 같았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도 강경한 입장에서 변함이 없습니다.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이중 처벌'이고 <올림픽 헌장> 위반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만약 현 규정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인식해 대한체육회에 수정을 요구했다면 사태는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왜 국제 규정과 정관을 어겨가면서까지 유독 박태환에게만 가혹한 것일까요? 박태환의 잘못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동안 대한체육회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러 중징계를 받은 사람도 이른바 <재심 제도>를 통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게 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박태환에 대한 강경 일변도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제가 만난 국내 체육계 원로 인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박태환이 높은 분들에게 '속된 말로 단단히 찍혔기 때문'에 호되게 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2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한 고위 인사가 빨리 오라고 불렀는데 박태환이 다른 이유를 대며 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 고위 인사가 박태환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박태환은 이밖에도 국내 체육계 실세들의 이런저런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실무자들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박태환이 전성기 시절 고분고분하지 않아 일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봐주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박태환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나이가 만 19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런던올림픽 때는 23살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슈퍼스타라 해도 20대 초반의 청년에 불과합니다. 국내 체육계 고위 인사들은 아버지뻘 이상이고 체육회 실무자들도 큰 형뻘입니다.

쉽게 말해 공손하고 겸손한 자세로 '윗분'들을 모시고 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지 않으면 바로 '건방지다'는 낙인과 함께 '미운 털'이 박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 체육계의 풍토이자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박태환이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오는 7월 18일까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 시간이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CAS가 7월 8일 이내에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태환이 승소하든, 아니면 대한체육회가 승소하든 양자는 무조건 CAS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에 담긴 정신입니다. 스포츠에는 법률을 떠나 '스포츠맨십'이라는 게 있습니다. 양측이 모두 '스포츠맨십'이란 말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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