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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영장은 안전하지 않다

[취재파일] 수영장은 안전하지 않다
"아빠 나 수영장 갔다 올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수영 강습을 받으러 갔던 7살 김모 군이 별안간 물에서 허우적대다 끝내 숨졌습니다. 지난 13일 낮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익수 사건에 이어 나흘 만에 이런 일이 또 생긴 겁니다. 전날부터 미처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었던 김 군의 아버지는 빈소에서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땅바닥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교대 근무 끝나면 우리 OO랑 같이 자유수영하기도 했어요. 그날은 우리 OO 컨디션이 아주 좋았거든요. 컨디션이…."

비슷한 또래의 어린이가 비슷한 상황에서 며칠 사이에 연거푸 숨졌다면 결코 우연한 비극이라 넘어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산 실외수영장에서 수영하던 A군 역시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고 당시 5m 정도 떨어진 곳에 수영을 가르쳐주던 강사가 있었습니다. 함께 수영을 배우던 수강생 3명도 함께 있었습니다. 정규 수업을 끝내고 실외 수영장에서 놀이를 하던 중 이런 사고가 난 겁니다. 경찰은 강사의 주의태만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습니다.

● 필요할 때 없는 안전요원, 안전 담보할 수 있나

두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공통점은 사고 당시 현장에 강습 강사가 있었지만, 별도의 안전요원들이 없다는 점입니다. 김 군이 사고를 당한 곳은 지자체 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수영장입니다. 수영장 전체 길이가 25m이고 레인은 6개 입니다. 전용 면적은 다 합해봐야 400제곱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수영장 한편에 마련된 80cm 깊이 유아용 풀장을 빼고는 6개 레인 전체가 모두 수심이 1.2m에서 최대 1.4m 정도입니다. 키가 1.2m인 김 군보다 10~20cm 정도 수심이 더 깊었습니다. 키 작은 김 군이라도 깨금발을 들면 얼마든지 숨을 쉬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 속 상황은 얼마든지 가변적입니다. 인하대 체육교육과 조미혜 교수는 "교육 현장으로서 수영장이라도 가르치는 사람을 제외하고 높은 곳에서 아이들의 상황을 늘 지켜볼 수 있는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갑자기 발에 쥐가 날 수도, 장난치다 물을 많이 먹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 화면을 보면 김 군은 부력재 역할을 하는 키패드를 몸에 찬 채 레인을 한 바퀴 돕니다. 두 바퀴째 반을 돌고 레인 끝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르는데, 나머지 반 바퀴를 돌기 위해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허우적대기 시작합니다.

당시 주변엔 김 군과 함께 강습을 수강하고 있던 다른 학생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김 군이 허우적대는 걸 본 수강생이 옆 레인 지지대를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지만 김 군은 잡지 못하고 이윽고 의식을 잃습니다. 당시 22명 정원의 김 군 반의 수강생들은 바로 옆 레인에서도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사는 옆 레인에서 다른 학생들을 지도해주다가 허우적대던 김 군을 뒤늦게 구조합니다. 가장 바깥쪽 레인에서 수영하고 있던 김 군이 허우적대던 곳은 안전요원의 감시탑에서 직선거리로 1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시탑은 비어있었습니다. 
▲ 해당 사진은 아래 기사와 무관합니다.

● '배치' 수칙은 있어도 '근무' 수칙은 없다

현행 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수영장 사업자는 감시탑에 수상안전에 관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을 2명 이상 배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시행규칙의 근거가 되는 법령은 수상레저안전법 시행령 제37조제1항입니다. 여기엔 바닥면적 65제곱미터 이상의 강의실, 길이 25미터 이상, 최저수심 1미터 이상, 5개 이상 레인을 가지고 있는 수영장에선 인명구조요원 또는 래프팅가이드 자격을 갖춘 교육 강사를 5명 이상 둬야 한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수영장 측은 당시 안전요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강사 6명이 수영장에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그 시간 안전요원으로 지정된 2명 중 누구도 수영장을 돌아다니면서 순찰하지 않았습니다. 1명은 아예 수영장 외부에 있었고 1명은 수영장 내부 의무실 안에 있었습니다.

폐쇄회로 화면엔 김 군을 구조한 강사가 김 군을 물 밖으로 끌어낸 뒤 원래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던 안전요원을 부르기 위해 의무실로 달려가는 장면이 찍혀 있습니다. 결국 불려온 안전요원이 김 군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유족들은 병원으로 옮겨질 때부터 응급구조대는 "김 군의 동공이 풀려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왜 안전요원이 당시 안전탑을 지키지 않았냐는 질문에 수영장 측은 "의무실은 수영장 안에 있으니 안전요원이 수영장에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안전요원이라도 계속 앉아 있으면 졸리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보다는 돌아다니곤 한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법에도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한다'고만 나와 있지 안전요원의 세세한 근무 수칙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이마저도 김 군이 사고를 당한 수영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영리성 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 수영장 관계자들의 행동이 영리 사업장을 전제로 한 해당 법률에 법리상으로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경찰이 업무상 과실치사 여부를 판단할 때 해당 법률이 그 근거가 되기는 조금 미약할 수도 있단 얘깁니다. 경찰은 김 군의 시신을 부검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한편 관련자들의 안전 수칙 준수 여부 등을 따져 수사할 방침입니다.

● 강사 1명이 수강생 20여 명 지도… 안전요원은 '필수'

유족들은 수영장 측이 신규 회원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김 군을 승급했다고도 주장합니다. 김 군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난 3월부터 수영 강습을 받기 시작했는데 석 달 만에 기초에서 초급1, 초급2, 최근엔 중급으로까지 승급했습니다. 며칠 전엔 '상급' 승급 제의도 받았습니다. 김 군의 아버지는 우연히 만난 강사에게 "아이가 미숙하니 승급을 늦추면 안 되겠냐"고 했지만 "잘 보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김 군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진도를 빼야 하는 문제가 있고요. 학생들 일일이 실력에 따라 조정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영장 측은 반 전체가 매달 승급하는 것은 관행이라고 말합니다.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김 군 반에는 전체 22명 중 김 군 또래 학생이 9명 정도 있었습니다. 김 군은 반에서 가장 어렸습니다. 그러나 22명이나 되는 수강생들을 강사 1명이 모두 세심하게 챙기기엔 무리였습니다.

옆 레인에서 다른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던 강사가 김 군을 발견하기까지는 30초가 걸렸습니다. 수영장 측은 "구조가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30초가 10초였다면, 5초였다면 하는 아쉬움은 당연히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 군은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모든 자격을 갖춘 강사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요원의 역할이 줄어들진 않습니다. 안전요원은 비상, 응급 상황을 대비해 항상 아이들을 지켜봐야 합니다. 비상, 응급 상황은 예고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요원 배치가 요식일 때 안전 역시 요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요원 배치 실태에 대한 재점검과 더불어 근무 수칙 및 가이드라인의 법제화를 검토해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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