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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이러스로 암 정복…"꿈은 이루어진다"

항암치료 패러다임의 대변혁

올해 84살인 정옥주 할머니는 지난 2004년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2009년까지 두 번의 시술과 항암치료에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수의까지 준비하고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그런 정 할머니에게 당시 암 치료를 맡았던 부산대 의대 허정 교수가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새로운 암 치료 임상 실험에 응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정 할머니는 2009년 임상 실험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7년 동안 잘 살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 5cm 크기였던 간암 덩어리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순의 할아버지도 7년 전 말기간암으로 시한부 삶 3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윤 할아버지도 같은 임상실험에 지원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크기가 10센티미터가 넘었던 암세포를 없앴습니다.
항암 바이러스 치료 전-후의 간암세포
두 말기 암 환자를 암에서 해방시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바이러스'였습니다.
허정 부산대 의대 교수

허정교수의 말입니다.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가 의과대학에서 배우기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근절해야 한다는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바이러스를 이용해 암을 치료한다는 것에 대해, 실제 임상을 해서 경험을 해 보니까, 아...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확실히 있구나…."

그럼 바이러스가 어떤 식으로 암세포를 이겨내는 걸까요.

일단 암세포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암세포는 증식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지금까지의 화학적 항암제는 증식이 빠른 세포를 찾아가게 설계돼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분열이 빨리 이뤄지는 머리나 피부 등의 정상세포까지도 항암제의 피해를 함께 보게 됐던 겁니다.

이 점에 착안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합니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기생해 번식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해 증식이 아주 빠른 세포, 특히 암세포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겁니다. 일단 바이러스가 암세포에 정착해 기생을 시작하면 빠르게 증식을 합니다.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암세포가 '빵' 하고 폭발하게 되는 기전입니다.
항암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파괴
임상 실험에 사용된 항암 바이러스는 여기에 또 하나의 효과가 있습니다. 폭발한 암세포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암의 항원이 노출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 안의 면역세포가 이 암세포 항원을 잡아먹게 됩니다. 외부 화학물질이 아닌 자기 몸 안의 면역력이 암을 이겨내는 겁니다. 당연히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반응(약간의 발열 등 감기몸살 증상)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런 항암 바이러스로 사용되는 바이러스는 천연두 백신으로 100년 넘게 사용돼 온 우두 바이러스입니다. 안전성이 입증돼 있고, 바이러스 크기가 커서 유전자 조작이 쉽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합니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항암 신물질
지금까지 설명한 새로운 항암제는 국내의 한 바이오벤처기업이 사활을 걸고 개발해 왔습니다. 바이러스나 면역력을 이용한 암 치료 개념이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론화 돼 있기 때문에 이 업체의 행보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 FDA에서는 지난해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글로벌 임상 3상을 허가했습니다.

국내 임상 2상에서도 생존자를 배출하면서 식약처가 지난 4월 임상 3상을 허가했습니다. 올해 말부터는 국내 대형병원 12곳에서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간암은 치료 가능성이 30%로 아주 낮습니다. 전이도 쉽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치료제는 ‘넥사바’란 약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이 약은 엄밀히 말하면 암을 없애주는 약이 아닙니다.

김도영 연대 세브란스병원 교수
연대 세브란스 병원 김도영 박사의 말입니다.

"간암 환자 가운데 절반이 생존한 기간이 아무 치료도 받지 않았을 경우 8개월 정도 됩니다. 그런데 넥사바 치료를 받은 환자는 10.7 개월을 살았습니다. 3개월 정도 생명이 연장된 겁니다. 그 정도입니다. 이 약물이 입증했다는 효과 자체는 치료 개념이 아니라 3개월 정도의 생명 연장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에 비해 국내 업체가 개발한 항암 바이러스는 완치가 가능한 ‘치료제‘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면역력을 다시 활성화시키면서, 똑같은 항원의 암에 대한 면역까지 만들어주는 게 확인됐다고 업체는 자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이나 재발을 막는다는 겁니다.
'항암 바이러스' 개발회사 연구소
이 업체 이남희 리서치팀장의 말입니다.

"혈액 내에 돌아다니는 면역세포 자체가 암세포를 인지할 능력을 갖게 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이 전이가 된다거나 재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증식은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볼까요.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넉달 만에 완치됐습니다. 아흔이 넘은 노인을 암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은 ‘키트루나’라는 면역 항암제였습니다. 이 물질은 최근 폐암과 신장암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시판 승인을 받았습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어떤 방식으로 암이 치료됐을까요. 암세포는 몸 안에 자리 잡을 때, 면역세포의 암 감지능력을 가진 물질을 무력화시키는 단백질을 뿜어댑니다. 쉽게 말해 면역세포의 안테나를 막아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면역 함암제는 면역세포의 안테나를 감싸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암 세포의 '면역 무력화 단백질'을 차단합니다. 그러면 암세포를 인지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하게 되고 결국 암이 낫게 되는 거죠.

현재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이런 면역 항암제와 앞서 설명한 항암 바이러스를 병용해 치료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암 바이러스의 치료 성공률이 11%였는데, 면역 항암제를 함께 쓰니까 완치율이 33%까지 올라갔다는 한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국내 사망원인 1위는 암입니다. 한해 7만6천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해마다 국내에서만 20만 명이 새로 암 진단을 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항암제 시장규모는 5년 내 180조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앞으로의 산업적 측면에서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될 분야입니다.

정부도 지난해부터 바이오산업 육성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업계는 늘 아쉬움이 많습니다. 특히 정부 규제를 어느 정도 통과한 뒤, 제일 중요한 임상실험을 앞두고는 더 높은 벽에 부딪힌다는 말을 합니다.

한 바이오벤처 기업 팀장의 말입니다. 

"유전자나 세포치료제 분야가 최근 생겨난 개념이기 때문에 국가차원, 규제기관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효과를 평가해야 하는지, 또 안전성을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조금 부족한 상태입니다. 저희가 환자에게 임상 투여를 하려 할 때도 결국은 규제기관이 승인을 해줘야 하는데, 규제기관 자체에 이런 새로운 개념의 약물이 처음이기 때문에 어렵게 진행되죠. 정보가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의학계는 바이러스와 면역요법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암 정복’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연대 세브란스 병원 김도영 박사입니다.

"옛날에는 천연두가 사라질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죠. 그런데 실제론 사라지게 했잖아요, 인류가. 암도 지금 인류의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암으로 죽어갑니다. 현재로선 우리가 과연 암을 정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학이나 생명공학, 그리고 IT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굉장한 발전이 이뤄지고 있고, 그것들이 접목됨으로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암의 정복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 이 내용은 6월 18일(토) 오전 07:40분부터 SBS 뉴스토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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