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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특혜가 계속되면 권리로 생각한다"

[취재파일] "특혜가 계속되면 권리로 생각한다"
"특혜가 계속되면 권리로 생각한다."

관가와 그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경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흔히 접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특별히 배려해서, 성의 표시로 마땅히 해야할 일 이상을 도와주면 처음에는 감사해 합니다. 하지만 여러차례 반복되거나 시간이 쌓이면 감사는 사라지고 '당연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 남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특혜를 중단하면 상대는 분노합니다. 권리를 빼앗긴 것 마냥.

따라서 이런 말이 주로 관가 주변에 떠도는 것은 경계하라는 뜻이겠죠. 공직자들은 이런 저런 배려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관 우위의 역사적 연원 때문에도 그렇고,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니 도와줘야 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특혜 받기를 삼가해야 하고, 특히 나서서 요구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해당 경구에 있다고 해석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불거진 미래창조과학부 한 공무원의 행태는 그냥 흘려보내기 어렵습니다.

이달 초 미래부의 산하 기관인 K-ICT본투글로벌센터는 프랑스 파리에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문제의 미래부 공무원 A씨는 이를 돕기 위해 해당 센터 직원들과 함께 파리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런데 출장 첫 날 A씨는 센터 직원들에게 사적인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자녀가 영어로 에세이를 써내야 하는데 이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글로 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하도록 요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에세이는 제주도 수학여행 수기로 환경보호 활동, 자원봉사 활동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A씨는 여러 차례 영어 번역을 독촉했고, 결국 센터 직원 가운데 한 명이 A씨 자녀의 과제를 대신 해줬습니다.

이와 함께 출장 경비 대납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A씨가 파리에 머물렀던 숙박비를 센터가 대신 냈습니다. 아울러 출장 마지막 날 파리 관광을 하면서 쓴 가이드비와 차량 대여 비용 역시 센터측이 결제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는 공식 보도자료에서 "감사를 통해 자초지종을 파악하고 있으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A씨의 행태는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르다고 해명했습니다.

우선 A씨가 자녀의 숙제를 먼저 부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센터 직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자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자신의 자녀가 영어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도와줄 수 없어 큰 일"이라고 걱정하자 센터측이 먼저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입니다.

대납 의혹도 일단 센터측에서 일괄적으로 비용을 지불했지만 귀국해 정산을 한 뒤 자신의 비용은 돌려주려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모두 말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입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상급 기관 공무원이 내놓고 자녀 숙제를 걱정할 때 산하 기관 소속 직원들이 전혀 모른 체 할 수 있을까요? 의례적으로라도 도와주겠다고 말하겠죠. 하지만 자녀 숙제는 공무와는 눈꼽 만큼의 연관성도 없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용무입니다. 이를 산하기관 직원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납득되지 않습니다. 설사 도움을 제안 받았더라도 거절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녀의 숙제를 부모나 전문가가 대신 해주는 일 자체가 부정행위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논외로 하더라도요.)

특히 해당 센터는 큰 행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 판국에 지원해주겠다며 온 상급 기관 공무원의 자녀 숙제를 대신 해야 한다면 걸리는 시간이 얼마든 분통 터질 일 아니겠습니까? 결국 뒷말이 나오고 제보가 접수됐다는 점이 그 명백한 증거입니다.

대납 의혹 역시 정산할 생각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애초에 출장비를 산하 기관에 선지출 시키는 제도부터 이상합니다. 아울러 귀국한 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직 금전적으로 뒷마무리를 하지 않은 점도 부적절합니다. 깐깐하게 따지자면 출장을 가서 남는 시간 동안 현지 관광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비용은 자신이 내야 합니다. 관공서의 출장비, 즉 세금으로 개인적 관광을 하는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혹시 공무원 A씨는 자신이 받는 특혜를 권리라고 착각하는 단계가 아닌지 말입니다. 세금으로 출장을 보내주고 숙식과 여정, 활동에 산하 기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히 누릴 권리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용무도 거리낌 없이 부탁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출장비를 먼저 내도록 하고 나중에 천천히 정산하면 된다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런 착각이 공무원 A씨만의 문제일지, 아니면 미래창조과학부, 나아가 정부 전체 공무원들의 뇌리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제 걱정이 기우일 뿐이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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