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는 소위 문화통치를 내세운 총독으로 알려졌는데 서울역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같은 해 9월 2일 총독직에 부임하기 위해 경성으로 온 사이토가 서울역 앞에서 폭탄 투척을 당합니다. 민족지사 강우규 의사의 의거였습니다.
반면 사이토가 남긴 글씨는 지금도 여전히 서울역 역사 한 켠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문제의 머릿돌이 있는 곳이 지난 2011년 세워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과 불과 50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마포 아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도 '선통물(善通物)'이라는 일제때 총독 글씨가 남아있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역시 내력을 알고 나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이 표지석은 원래 일제때이던 1932년 배수터널 완공시 함께 제작됐는데 당시 총독이었던 우가키의 글씨를 새겨 넣었습니다.
이후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배수터널은 지하에 묻혔습니다. 그러자 원본 표지석과 똑같은 표지석을 만들어 아파트 단지 앞에 세워놓은 겁니다. 선통물 표지석의 경우에는 그 옆에 표지판을 하나 세워서 그 유래에 대해 적어놨는데 어찌된 일인지 조선총독의 글씨라는 점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우선 사이토 총독의 글씨가 3곳 더 있습니다. 1920년 설립된 조선총독부 신청사 머릿돌(현재 독립기념관 소재), 1926년 세워진 원잠종제조소(씨누에 보급기관)에 있는 잠령공양탑(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 있음), 1927년 설립된 경성법원청사(현 서울시립미술관) 머릿돌에 사이토의 글씨가 남아있습니다. 이밖에도 인왕산 병풍바위와 연세대 내 흥아유신기념탑에 미나미 총독의 글씨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제의 잔재가 드러날 때마다 철거냐 보존이냐 논란이 벌어졌는데요. 이번 조선총독 글씨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러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대부분 철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눈앞에 안 보이도록 철거해 버리는 게 손쉬운 해법인 것 같지만 감정적 대응에 그친다는 겁니다. 더욱 중요한 건 과거 치욕의 역사로부터 어떻게 교훈을 얻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보존하되 지금과 같은 방치가 되어선 곤란하겠죠. 교훈을 얻기 위해선 망각의 세월로 흘려보낼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후관계를 밝혀 기억해야 하고 또 기록으로 남겨야겠죠. 그런 점에서 총독 글씨 현장에 아무런 표지판 하나 남지 않은 사실은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총독 글씨 현장을 탐방 코스로 만든다면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 서울 곳곳 일제 총독 글씨…철거? 보존?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