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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6·25 전우에게 보내는 노병의 편지

[영상토크] 6·25 전우에게 보내는 노병의 편지

한국전쟁 참전용사 김성렬 선생의 이야기

하륭 기자 ryung@sbs.co.kr

작성 2016.06.14 19:03 수정 2016.06.15 08: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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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직 전쟁 중이야. 잠깐 쉬고 있는 거야.”
 
초여름 태양은 기어코 비좁은 골목 사이사이까지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소금기가 가득한 옷 틈 사이로는 순간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하굣길, 동네 형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초등학생인 저에게 분단 상황을 설명해줬습니다. 매년 6월이면 학교에서 흑백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던 6.25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에 형에게 다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형은 당장이라도 전쟁이 시작될듯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뒷산에 우리만의 비밀 장소를 만들자!”

“땡땡땡땡땡! 오분대기조 비상!”
 
전방에서의 5분대기조 출동 명령. 실탄을 받아 장전하고 명령 지역으로 긴급히 이동합니다. 거동수상자가 군사작전지역에 출현했다는 정보가 들어온 겁니다. 제가 군 복무를 했던 지역은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 등 현대사에 굵직한 간첩사건들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긴장하지 말고 훈련받은 대로 움직여라!” 늘 무섭게만 느껴지던 선임의 입술 끝에서도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이젠 비밀 장소를 만들어 숨을 수도 없는 신분이었지만, 공포감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6.25전쟁과 분단은 뉴스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생활 속에서부터 정서적인 측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65년이나 지난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짧은 영상뉴스로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고등학생이었던 김성렬 씨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은 폐허나 다름없었습니다. 광화문엔 ‘중앙청(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로 사용되던 건물)’, 종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의 뼈대와 문만 남아있었습니다. 김성렬 씨의 양가 할아버지 자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건물들은 흔적도 안 보였어요. 대부분 부서진 벽돌들로 가득했습니다. 목조건물은 잔해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거리엔 시체들만 보였고요.”

서울을 헤매던 고등학생은 지금의 태평로 자리에 붙은 ‘북진! 북진! 북진! 통일! 나라를 위해 참여하라!’라는 내용의 벽보를 발견했습니다. 근처에 있던 헌병의 도움을 받은 김성렬 씨는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겨우, 만 17세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사이인 1950년 9월 중순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어린 나이에 두렵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두렵지 않았어요. 요새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린 나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마음의 준비가 돼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면서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서 비로소 전쟁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실감했습니다. ‘내 가족들이 죽거나 실종되고 내 삶의 터전이 무너진 상태에서 혼자 살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이 칼 같은 물리적인 공포보다는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는 겁니다.

김성렬 씨는 군 입대를 한 뒤에 정작 가족 생각을 못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옆에서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전우들을 돌봐야 했고 늘 적에게 노출되지 않은 채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함께 나라를 위해 싸우는 전우들이 가족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전투가 한창이던 1951년 2월, 그는 가장 친했던 변승호 이등중사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게 됩니다. 전투로 인하여 부상자가 많이 발생한 곳으로 함께 이동하던 도중 북한군이 쏜 직격탄의 파편이 전우의 이마를 관통해 즉사했습니다.

"애통했습니다. 너무 너무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전우들이 있었고, 그렇게 인사도 못한 채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울어서 군복이 다 젖을 정도였습니다."

올해 85세인 김성렬 씨는 여전히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변승호 전우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 가서 그의 부모,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의 가족들에게 변승호 전우가 어떻게 군에서 생활하였고 이런 이유로 순직하였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고 살아남은 노병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통일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2015년 학교통일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일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63%입니다. 특히, 고등학생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50%가 못됩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신 분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는 건 아닙니다. 중국 고사성어에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 일을 잊지 말고 훗날에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윈스턴 처칠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와 일맥상통합니다. 후손들이 눈앞의 이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배제하는 순간, 역사의 시간은 또다시 과거를 가리킬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취재 : 하 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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