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극적으로 원 구성이 정상화됐던 같은 날, 편하게 차나 한 잔 마시기로 했던 약속은 불발됐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뉴욕 회동 이야기인데요, 무엇이 이들을 서로 감정만 상한 채 인사조차 나누기 힘들게 만들었는지 한정원 기자가 취재파일에 남겼습니다.
원래 현지 시각으로 지난 수요일 이들은 유엔 본부에서 잠시 접견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미 일정을 접하고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라는 게 노무현 재단의 설명입니다.
당시 유엔의 한 관계자도 둘의 만남을 주선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고, 이 같은 만남은 9년 만에 처음이라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며 뉴스거리가 됐는데요, 특히, 반기문 총장이 여권 대선 후보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그가 방한을 마치고 돌아간 뒤 잡은 첫 한국 관련 일정이 지난 9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참여정부 인사와의 만남이란 점은 여러 해석을 낳았습니다.
반 총장이 대선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인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그동안 자신에게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아 온 친노 세력과의 관계 복원을 꾀하려는 행보로 읽힌 겁니다.
참여정부 측은 반 총장을 청와대 외교 보좌관으로, 그리고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고, 유엔 사무총장으로 당선시키고자 외교적 총력을 기울인 것도 노 전 대통령이라며, 그럼에도 정작 반 총장이 참여정부와는 거리를 둬 온 점에 일종의 배신감을 표출해왔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 측에 따르면, 2004년 김선일 씨 피랍사건에 이어, 2006년 동원호 선원 피랍사건이 터졌을 때 장관 경질론이 일었었지만, 그때도 노 전 대통령은 장관을 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욕은 자신이 먹겠다면서 한국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한다는 게 멋지지 않겠느냐며 막아섰다고 합니다.
또 노 전 대통령이나 이 전 총리나 모두 없는 순방까지 잡아가며 가는 나라마다 정상들에게 반 총장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반 총장이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방한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의 묘소는 참배하지 않다가 비판 여론에 못 이겨 2011년 12월에야 처음으로 비공개로 묘소를 찾자 불만을 드러냈던 겁니다.
반 총장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신의 없는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희석하고 친노의 반감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기대했을 법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언론의 주목이 집중된 이때 반 총장의 대망론에 거칠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외교관은 성격상 정치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친노의 수장으로서 오랜만에 존재감을 과시한 겁니다. 반 총장에게 야권과 손잡을 기회를 열어주게 될 것을 꺼려한 친노 진영 내부의 반대 의견도 한몫했을 겁니다.
이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에 반 총장이 불쾌감을 느낀 건 당연했을 텐데, 이어서 결정적으로 유엔 대변인으로부터 공식적인 멘트가 나왔습니다. 둘의 면담은 한국 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한 겁니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안 그래도 반 총장의 대권 행보에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고 싶지 않았던 이해찬 측에서는 실제와 다른 왜곡이라며 면담을 취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유엔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보시면 여기서 한국 측이라는 게 유엔 주재 한국 대표부를 뜻한 것이지, 노무현재단 측을 뜻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걸 일부 언론에서 한국 측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양쪽은 신경전만 벌이다가 관계 회복의 기회를 잃었는데요, 누가 먼저 보자고 했는지가 중요할 정도로 불편하기만 한 이들의 관계가 언제쯤 개선 가능할지는 기약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 [취재파일] 반기문-이해찬, 그들은 왜 만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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