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잠이 들까말까 하던 중 스마트폰의 뉴스 속보를 알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프랑스 방송사 BFM TV에서 오래 간만에 속보를 보내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 센강 수위 6미터 육박”, “1982년 이후 처음”.
파리에서 특파원 생활 3년을 보냈지만 여름에 센강이 넘칠 정도로 비가 많이 온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센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강물이 다리에 닿을듯해 며칠 전부터 유람선 운행이 불가능하고,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역사에 남는 홍수가 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백 년 전 서유럽을 휩쓴 홍수로 센강 위에 와인을 담은 오크통이 둥둥 떠다녔던 사진 속 장면도 떠올랐다.
센강은 한강과 비교하면 강도 아니고 '도랑'이라고 말할 정도로 폭도 좁고 유량도 적다. 우리나라는 장마철마다 한강 둔치 주차장이 잠길 때가 있지만 파리에서 3년 사는 동안 센강 근처 강둑이 물에 잠기는 것을 본적이 없다. 여름에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 온난 습윤한 지중해성 기후라 여름에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오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백 여 년만의 기상 이변 앞에서 파리 시장이 바빠졌다.
지난 2014년, 스페인 이민자 출신으로 첫 여성시장이 돼 주목을 끌었던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언론 인터뷰마다 나오고 있었다. 이달고 시장은 우선, 파리의 상황을 자연재해라고 규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인프라 덕분에 다른 도시에 비해 피해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4명이 숨져 인명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유람선 운행 불가능 등으로 인해 경제적 피해는 클 것이고, 보험회사의 손실도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화자찬 같기도 한 말들은 여느 도시 시장의 말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뒤 “파리는 gruyere(구멍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 같다”면서 파리의 배수시설에 대해 비판을 시작했다. 지하철역 두 군데와 국철역 한군데가 폐쇄된 것을 지적하면서 지하철, 하수구를 비롯한 파리의 배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리의 하수구로 말하자면 그 유래가 깊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1832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Les Miserables>에서 장발장이 자베르 경감을 피해 상처입은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도망쳤던 어둡고 냄새나는 공간이 바로 파리의 하수구이다. 그 파리의 하수구는 150년 이상 보수에 보수를 거듭하면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하수구의 모델로 꼽히고 있다.
파리시가 이 가운데 470미터 공간을 지하 박물관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관람시키고 있을 정도로 파리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총길이 2,600킬로미터에 이르는 배수관을 통해 빗물은 물론 가정에서 쓴 물, 공장의 폐수가 따로따로 흘러가도록 해서 결코 센강이 오염되거나 범람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의 요지이다.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파리의 하수 시스템이 이번 자연 재해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던 거다.
이달고 시장은 특히 이번 재해가 여름에 닥쳤기 때문에 피해가 덜했다면서 비가 많이 오는 가을, 겨울을 대비해 준비를 단단히 하겠다고 밝혔다. 천재도 아닌 인재임이 명백한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고가 1년도 채 안 돼 재발하는 것을 보면서, 1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자연 재해를 겪은 파리시가 이번 가을, 겨울을 앞두고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장기적으로는 어떤 프로젝트에 들어갈 지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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