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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부모가정 자녀 청약 거절'…상처주는 '행복주택'

[취재파일] '한부모가정 자녀 청약 거절'…상처주는 '행복주택'
● "어머니가 없다는 이유로, 한부모 가정 자녀라는 이유로 행복주택 청약을 거절당했어요."

19살 여대생, 16학번 새내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김 모 양에게 2016년은 모든 게 새롭고 흥미롭고 기대가 되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행복주택에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기 전까지는….

김 양은 한부모 가정 자녑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김 양이 4살 때 이혼을 해서 15년 넘게 아버지와 단 둘이 단촐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얼마 동안은 왕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땐 너무 어린 나이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사시는 지 연락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김 양의 학교는 서울 노원구에 있습니다. 집이 인천인 김양은 학교까지 가는 데 2시간, 학교에서 다시 집으로 오는 데 2시간이 소요됩니다. 수업을 들으려면 왕복 4시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들보다는 훨씬 더 걸리지만 그래도 학교생활과 공부가 재미있어 별 불편없이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가 있는 노원구에 '행복주택'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행복주택'이란 서민과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해 소득계층별로 다양한 맞춤형 주거를 지원해 주는 정부 정책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대학생과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해 주는 공공임대주택입니다. 

김 양은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고 다니는 학교가 행복주택이랑 같은 구에 위치해 있으며 부모님 거주지가 서울 이외의 지역이어서 청약 1순위에 해당되는 조건이었습니다. 학교까지 가까워 통학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를 하며 청약신청을 했습니다.

● "어머니 사인 없으면 청약 못 해"…결국 서류접수조차 못 해 

그런데 서류 접수 마지막 날 시행사인 SH공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제출한 서류에 어머니 사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산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부모님의 '정보공개 동의서'에 사인이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 사인만 있고 어머니 사인이 없어 서류접수가 현재로선 불가능 하니 내일까지 팩스로 어머니 사인을 받아서 제출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김 양은 부모가 이혼한 지 15년이 됐고, 4살 이후로 어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아 사인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시행사 측은 무조건 어머니 사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혼을 했다고 해도 법에 따라 부모, 즉 아버지 어머니 사인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어머니 사인을 받을 수 없다면 서류접수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SH 공사 측에 어떤 규정에 의거해 어머니 사인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건지 물었더니 이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  부모님 사이는 남남이 되지만 '엄마, 딸' 이런 관계가 변하지는 안잖아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이혼을 하신거지 자녀분과의 관계가 단절이 된 건 아니잖아요, 가족관계상으로는…그러니까 이혼을 하셨다고 해서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개개인의 사정을 다 봐줄 수는 없어요."

김 양은 SH 측의 설명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납득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현재 아버지하고만 살고 있고 주민등록등본 상에 어머니는 기재돼 있지도 않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들어갈 때 까지 아버지 사인만 있으면 모든 게 문제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자금대출이나 국가장학금을 받을 때도 어머니 없이도 잘 처리해 왔는데 왜 행복주택 청약에만 어머니 사인이 필요한 지 말이죠. 결국 김 양은 행복주택 신청 서류를 접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 양을 더 어이없게 만든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경우가 몇몇 있어서 다음 청약 때부터는 그런 사정이 될 것 같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정확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다음 번엔 가능할 수 있으니 그 때 신청하라는 거였습니다.

김 양으로선 당혹스러웠습니다. 다음에 어느 곳에 행복주택이 들어설 지 모르지만, 노원구가 아닌 다른 지역의 행복주택일 것이고, 그 지역 행복주택엔 청약신청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 봐도 한부모 가정 자녀가 드문 경우가 아닌데 그런 것 조차 생각하지 않고 정부 정책을 만들고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19살의 젊은 여대생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부모 가정 자녀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 채 모든 대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계시다는 전제 하에 만든 정책이었으니까요.

김 양은 이번 일을 겪고 나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한부모 가정 자녀라는 이유 만으로, 어머니가 없다는 이유 만으로 행복주택 청약을 거절당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 했던 일이라 충격은 더 컸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는 것도 큰 상처인데 그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실망과 심적 동요를 느끼는 듯 했습니다.

● '한 명이라도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고 꼼꼼하지 못한 정부 정책 아쉬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행복주택을 총괄하는 국토부가 현재의 잘못된 규정을 인식하고 피해보는 사람이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한부모 가정 자녀인 경우 지금처럼 아버지, 어머니의 서명을 반드시 모두 제출해야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 또는 어머니 한쪽의 서명만으로도 입주자격 요건을 판단할 수 있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적용될 지는 미지수이긴 합니다.

누군가에게 행복주택은 행복을 주는 주택이 아닌 상처를 주는 주택으로 다가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정부와 지자체는 명확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좀 더 세심하고 꼼꼼하게 예상해 한 명의 국민이라도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따뜻한 정책이 아쉬울 뿐입니다.

김 양은 앞으로도 4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통학시간에 할애해야겠지만, 자신처럼 상처받는 청춘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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