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복서이자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으로 평가받는 무하마드 알리, 그의 장례식이 오는 금요일 고향인 미국 켄터키주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스포츠계는 물론,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그리고 반기문 UN 사무총장까지 각계 인사들의 애도와 추모가 잇따르고 있는데요, 그가 왜 진정한 월드 스타였는지, 권종오 기자가 취재파일에 남겼습니다.
복싱 테크닉으로만 보면 무하마드 알리는 천재 복서 슈거레이 레너드에 미치지 못합니다. 펀치의 강도로 따지면 조지 포먼이나 마이크 타이슨보다도 뒤집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전성기 시절에 가졌던 압도적 1인자란 이미지도 알리는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이런 슈퍼스타들을 능가하는 남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링 안에서는 물론 링 밖에서도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은 3가지 싸움의 연속이었는데요, 첫 번째는 상대와의 싸움으로 그는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켄 노턴 등 당대의 명 복서들과 숱한 명승부를 펼치며 세계 복싱 역사의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특히, 1974년 '킨샤샤의 기적'이나 이듬해 '스릴러인 마닐라'는 지금도 전설의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모든 차별과 불평등과의 일전을 불사했습니다. 흑인으로 인종 차별에 맞서고 이슬람 신자로 종교 차별에 대항했던 겁니다.
그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갱들의 공격을 받자 로마 올림픽에서 따낸 소중한 금메달을 미련없이 강에 던져버린 일화는 유명하죠.
그는 또 원래 이름이 캐시어스 클레이 인데, 노예의 이름이라 생각해 주저 없이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전 참전 거부로 백인 주류 사회와 맞서다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한 채 3년 이상 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위해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던 겁니다.
정말 거침없는 언변과 민권 운동으로 미국 비주류 사회의 대표를 자임한 알리는 자선사업까지 활발히 펼쳐 흑인들의 진정한 우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싸움은 파킨슨병과의 싸움이었습니다. 1980년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친 뒤 불행히도 4년 만에 진단을 받고 이후 무려 32년이나 병마와 싸웠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손을 떨면서까지 성화대에 불을 붙여 진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알리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그는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70년대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에서 조깅을 하기도 했고 미국의 적국인 쿠바와 이라크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류로와 사담 후세인과 친한 친구처럼 포옹하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메신저로서 그는 미국인을 떠나 진짜 세계 시민이었던 셈입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운동선수로서 타고난 기량 외에도 빼어난 말재주로 스포츠계의 개관 시인으로 불렸고 쇼맨십에 유머까지 겸비해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기도 했습니다.
"불가능,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수많은 주옥같은 명언들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이미 생전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 알리는 그의 트렁크에 새겨져 있던 everlast 라는 단어처럼 영원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겁니다.
▶ [취재파일] 'The Greatest' 알리, 신화가 된 천재 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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