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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인 배상 후 한국인 징용 日 기업에 전화해보니…

지난 1일 일본 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2차 대전 당시 중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0만 위안(우리 돈 1820여만 원)씩을 배상해주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 日 미쓰비시, 中 징용자에 배상…한국은 무시) 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 광업은 1942년부터 중국인 3만 9천 여 명을 일본으로 강제 징용해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중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지난해 이미 한 차례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과 배상에 합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합의안에서 자신들은 일본 정부가 모아준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용자'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강제 징용에 직접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배상금에 대해서도 '중일 우호에 공헌하기 위해 준다.'고 표현했습니다. 피해자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합의가 틀어졌습니다. 어제 합의는 이 두 부분에 대한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은 합의 발표와 함께 관련 내용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주요 부분을 옮겨봅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오늘 중국 베이징에서 2차 대전 중 중국인 전 노동자가 당사의 전신인 구 미쓰비시 광업의 사업소에서 노동을 강요당한 것에 대해 3명의 전 노동자 분들과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당사는 오늘 화해에 관련한 조인식에서 역사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한 사죄의 뜻을 표명하고, 3명의 전 노동자 분들에게 이것을 받아들여주신 것과 사죄의 증명으로서 1인당 10만 위안을 지급하는 합의했습니다."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표현과 함께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썼습니다. 배상금이라는 단어는 안 썼지만, '사죄의 증명으로서의 돈'이라고 명기했습니다. 합의 대상자는 3명이지만, 중국 집단소송제에 따라 일단 기금을 조성해 강제 징용이 이뤄진 사업장에 근무했던 피해자들이 추가로 신청하면 모두 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급 대상자 전체 규모를 아래 자료에 근거해 3,765명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본 외무성이 1946년 조사한 '중국인 노무자 사업장별 취로조사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중국 측 자료보다는 일본 정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중국인 강제징용 사업장 가운데 밑에서 세 번째 '다카시마 탄광-205명'이 적혀 있는데요, 바로 조선인 강제징용자 12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탄광섬 일명 '군함도'입니다. 같은 곳에서 일했던 중국인 징용자들은 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인은 못 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위 대상자 3,765명 가운데 실제 몇 명이 배상 신청을 해 10만 위안을 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 합의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1972년 중일공동성명 내 '전쟁배상 청구를 포기하는 것을 선언한다'는 문구를 근거로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입장과 달리 민간 기업이 스스로 배상 결정을 한 겁니다. 물론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고려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한국인 징용 피해자 수십 분들이 현재 국내 법원에서 11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상은 미쓰비시 중공업, 신일철주금, 후지코시 주식회사 등 세 곳입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없는 것 같더군요. 어제 일단 세 곳의 회사에 모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미씨비스 머티리얼의 합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인 징용자와의 소송에 영향은 없을지 등을 문의했습니다.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
"지금 부산과 서울 등에서 2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데, 재판의 대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화해가 저희 입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신일철주금>
"한국과 중국은 별개의 나라인만큼 별개의 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한일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후지코시>
"저희의 입장 변화에 대해선 별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건은 타사의 상황이라서 저희가 코멘트할 내용이 없습니다."


세 곳 모두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는 배상해줄 의사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결국 우리 징용 피해자 분들은 앞으로도 기나긴 법정 투쟁을 이어가야 합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사례처럼 법적인 판결이 아닌, 합의를 통해 실질적인 배상과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한국인 피해자 분들이 국내 법원에 제기한 배상금 규모는 1인당 1억원 정도인데, 이번 중국인 피해자 배상금액이 상당히 적어 걱정도 됩니다. 또, 배상금만큼이나 제대로 된 사실 인정과 사죄를 받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위에 적힌 중국인 징용 피해 사업장에는 분명히 함께 끌려온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현재 강제 징용자는 7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 60만 명입니다. 서독 탄광 근로자와 간호사 분들 만큼이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분들입니다. 우리 정부도 지금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단소송제 적용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 중국인 배상 합의처럼 대규모 배상을 받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또, 일본 외무성 자료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확보한 징용 피해자 명부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있어야 합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은 "배상 합의 전에 일본 정부에 관련 내용을 사전 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외교 당국과의 조율이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역사를 바로 잡는 일, 나이 드신 피해자분들에게만 맡겨 놓을 일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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