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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이 한 장의 힘…'포스트잇 추모' 물결의 이유

작은 종이 한 장의 힘…'포스트잇 추모' 물결의 이유

임태우 기자

작성 2016.06.02 08:24 수정 2016.06.02 10:4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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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를 기리며 생각하는 ‘추모(追慕)’. 어떤 사연과 배경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추모의 방식과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이와 미선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많은 시민은 ‘촛불’을 들고 추모했습니다. 촛불 집회는 비폭력 평화 시위를 상징합니다.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에 대해 촛불을 켬으로써 시선을 모을 수 있고, 밤에 진행하다 보니 하루 일과를 끝낸 시민의 자발적 참여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1년 뒤 벌어진 대구지하철 참사에선 다 타버린 역사의 검게 그을린 벽면에 애도하는 글귀를 써 넣는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기렸습니다. 사건의 참혹함이 고스란히 남은 장소를 직접 보고 느끼며,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현재 추모벽은 ‘새김과 스며 듦’이라는 의미를 담아 보존되고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란다는 뜻을 담은 '노란 리본 캠페인’이 전국으로 확산했습니다. 미국에서 전쟁에 참가하는 남성의 아내나 가족들이 무사귀환을 바라며 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고 기다린 것에서 유래된 추모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대한민국에서 또다시 추모 물결이 일었습니다.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사건’과 ‘구의역 스크린도어 인명사고’. 두 사건 모두 비슷한 시기에 23세, 19세의 어린 친구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었죠. 많은 시민이 추모를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9-4 승강장을 찾았습니다.
국화꽃, 인형, 촛불, 햇반, 미역국, 케이크, 책(전태일 평전) 그리고 포스트잇. 그들을 추모하는 방식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나은 세상을 만들게요.’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컵라면 말고 따뜻한 밥 챙겨 드세요.’

두 장소에 붙은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익명으로 적은 문구들이 화제가 되면서 문구를 찍은 사진은 인터넷이나 SNS를 돌고 돌았습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문구들은 살아있는 이들과 애도, 슬픔, 아픔, 안타까움, 분노 등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한 두 줄 문장만으로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포스트잇 종이 한 장은 SNS와 같은 소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포스트잇으로 추모하는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쉽게 붙였다 뗄 수 있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행위가 마치 SNS 상에서 ‘댓글’을 다는 것과 유사하다는 특징에 주목합니다. 젊은 세대가 SNS에서 감정을 공유하고자 할 때 댓글을 남기듯 현실 세계에서는 포스트잇을, 감정의 공유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죠.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SNS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기에 포스트잇 추모 문화에 쉽게 참여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한 전문가도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사회적 약자였고,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메모지는 꽃이나 이런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써서 애도를 표할 수 있고, 사회에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훨씬 큽니다.”
서울 강남역에서 시작한 포스트잇 추모 행렬은 대전·대구·부산까지 곳곳으로 퍼져나가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국적인 추모 물결에도 개선되고 변한 것이 없다면, 추모의 감정은 이내 사회에 대한 냉소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기획·구성 : 임태우 기자, 김미화 작가 / 디자인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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