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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주차 차량 들이받아도 무죄?…이상한 법

백화점에서 주부 A씨가 4만 원 상당의 분유를 훔쳤을 경우와 도로에서 운전기사 B씨가 길가에 세워진 비어 있는 차량의 뒷문을 들이받아 40만 원 상당의 손해를 입히고 달아났을 경우 이들은 각각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

주부 A 씨는 절도죄로 최대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위 빨간 줄이 그어지겠죠.

그런데 운전기사 B 씨는 무죄, 즉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우리 도로교통법이 그렇습니다.

빵을 한 개만 훔쳐도 남의 재산에 손실을 가하면 처벌을 받는 시대에 남의 차에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물질적 손해를 끼쳐도 아무런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겁니다. 조기호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54조를 보면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즉시 정차하여 피해자 보호와 2차 사고 예방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상자가 있으면 구조하고, 바닥에 유리조각 같은 게 떨어져 있으면 누가 밟고 지나가지 않도록 깨끗하게 치우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도 벌칙에 적혀 있습니다.

제법 무거운 법규로 들리는데요, 하지만 바꿔 말하면 사상자가 없거나 떨어져나온 파편이 없을 경우에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잠깐 주차해 둔 내 소중한 차의 문이나 범퍼를 누군가 찌그러뜨리고는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도망가 버려도 머리끝까지 나는 화를 속으로 삭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을 잡겠다며 블랙박스와 주변 CCTV를 간신히 구해 몇 시간 치 녹화분을 눈 빠지게 돌려보고 겨우 용의자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처벌은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상대 측 보험으로 손해를 만회하는 것만이 최선이니, 만약 상대가 잡아떼면 그만이라는 심산으로 버틴다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물질적 피해에 더해 정신적 시간적 피해만 더 늘어나는 결과가 초래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고 시 운전자의 의무에 물적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문철/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 도로교통법은 "교통상에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았으면 아무리 차를 크게 망가뜨렸더라도 그것은 처벌하지 않겠다", 아주 이상하죠. 따라서 2차 사고예방, 거기에 더해 피해 보상까지 집어넣을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법이 쓸데없이 늘어나 범법자를 양산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의 권리마저 외면해서는 올바른 법이라고 할 수 없겠죠.

자동차 등록 대수 2천만 대가 넘는 우리나라의 책임 있는 운전 문화를 위해서라도 이 같은 도로교통법의 맹점은 수정이 시급해 보입니다.

▶ [취재파일]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도 당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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