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5·18항쟁① 전염병처럼 번진 왜곡의 실체 '극우인사-일베'의 분업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6.05.16 16:10 수정 2016.05.18 17: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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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전두환 등 신군부는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시위가 자신들의 정국 장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공수부대를 증파하고, 조속한 진압을 요구한다.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는 과정에서 20일 자정 쯤 공수부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 이에 따라 사망자가 속출하자 시위대는 경찰서와 파출소 등에서 총기를 확보해 무장 저항을 시작한다.>

"내란 목적 살인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 한다” <1997. 4. 17. 대법원>

5.18은 민주화운동이다. 사법부는 당연한 이 명제를 확인하며,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시민을 살해한 살인범에게 단죄를 내렸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 순간에도 5·18항쟁에 대한 왜곡은 암세포처럼 퍼져나갔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왜곡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이 기억하고픈 ‘5.18’은 정당한 국가 권력에 시민이 폭력으로 대항한 ‘폭동’이다. 이들은 ‘보수’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극우세력으로, 5.18에 북한이 개입됐다고도 주장한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맥락(context)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사실(fact) 중 몇 개만 취사 선택해 자신들의 이념틀로 재구성한 뒤 , 다른 사실은 무시하는 전략을 취한다.

시민군의 사진을 보고, 총을 들고 있으니 무장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최근엔 5·18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등 왜곡의 수준도 심해지고 있다. 1997년과 2002년 5·18 항쟁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5·18 항쟁은 항구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으니 이런 왜곡 시도는 일부 극우세력의 일탈로 규정하고 무시하면 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5·18 기념재단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5·18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5·18이 북한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0대 이상은 그 비율이 16.3%로 평균의 2배에 달했다. 5·18이 불순 세력이 주도한 폭력 사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14.2%로 집계됐는데, 특히 50대와 60대 이상에선 그 수치가 17.5%, 26%로 집계됐다.

5.18항쟁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믿는 사이, 그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오염됐고,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더 이상 진실이 오염되는 걸 막기 위해선 5.18에 대한 왜곡 근원부터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왜곡 주체, 방식, 과정을 정밀 분석했다.

● 왜곡 근원은 전두환 등 신군부의 ‘불순 세력 주도설’

5·18 불순분자 주도설, 북한 개입설은 새롭게 제기된 건 아니다. 5·18 항쟁 당시 폭력 진압을 자행한 전두환 씨 등 신군부는 항쟁 당시부터 불순분자 주도설을 퍼뜨려왔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은 담화문에서 “5·18은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거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첩(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고 있다고 발표해 사실을 호도했다.
하지만, 호응은 없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의 5·18 항쟁과 관련된 키워드 사용량을 시기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1987년을 기점으로 시위대의 폭력성에 방점을 찍은 ‘광주사태’라는 표현은 ‘광주항쟁’으로 대체되고,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1987년 국회 5·18 특위(광주 청문회), 김영삼의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 실시된 역사바로세우기와 5.18특별법 제정 등 5·18에 대한 평가가 제도화되면서 ‘광주사태’라는 표현의 거의 사라졌다. 언론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5·18 항쟁에 대한 평가는 끝난 듯 했다.

하지만, 2000년 대 이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2002년을 기점으로 5·18 항쟁을 ‘광주사태’로 규정하거나 이런 주장을 인용한 언론 기사가 증가하기 시작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13년 5·18 항쟁을 ‘광주 폭동’으로 규정한 기사나 그런 주장을 인용한 기사가 대폭 증가한다.

언론은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볼 때, 2016년 현재 5·18 항쟁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결과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2002년과 2013년이 분기점이 된 것일까?

● 끝나지 않은 5·18 항쟁 진상 규명…왜곡 세력의 잠복기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 네이트의 블로그와 카페 게시글, 해당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이 되는 웹문서, 뉴스 등을 분석했다. 5·18 항쟁에 대한 왜곡과 폄훼의 기원과 주체, 전개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다. 5·18에 대한 왜곡의 두 축이 ‘5·18은 폭동이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라는 사실에 근거해 검색 키워드로는 ‘광주+폭동’과 ‘5·18+북한군’으로 설정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 기준, 공공의 영역이라고 할 언론지면에 5·18 항쟁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첫 기사는 1980년 5월 31일이었다. 당시 신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계엄사령부가 5·18에 대한 경위와 사후처리방침에 대한 발표문을 실은 것이었다. 이후 1980년에 몇 차례 더 5·18를 폭동으로 규정하는 기사가 등장하지만, 이 또한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인용하거나, 해당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인용한 것으로서 결국 5·18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주체는 신군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본 5·18 관련 키워드별 사용량 분석 결과와 같이 이후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기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 정권 교체 극우세력의 역습
그런데 16대 대통령 선거를 4개월 여 앞두고 있던 2002년 8월, 한 보수성향 일간지에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는 제목의 광고가 게재된다. 해당 광고는 5·18항쟁을 '광주사태'라고 지칭하며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또, DJ 정권의 사람들이 "소요사태를 일으켜놓고 계엄령을 선포"해, "(대통령)선거도 없고, 우익들이 잡혀가고, 김정일이 무혈로 서울을 장악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광고를 게재한 곳은 극우 칼럼리스트 지만원이 대표로 있는 시스템사회운동본부였다.

광고라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언론이라는 공적 영역에 다시금 5·18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한 건 생경한 일이다. 북한 배후설은 신군부가 5·18 당시에도 유포한 것이었지만, 북한 특수군이 5·18 항쟁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해당 광고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5.18 왜곡을 연구해 온 오승용 전남대 교수는 2002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오 교수는 “1997년 대법원이 전직 대통령 전두환에 대해 내란(12.12 쿠데타) 및 내란목적살인(5·18 항쟁)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후 숨죽이고 있던 보수 세력이 반발했었다”며, 일간지에 해당 광고가 게재된 것은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으로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던 극우세력이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또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 인터넷 보급과 종편 탄생…왜곡의 심화

하지만, '왜 2002년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전에도 전두환 씨 등 신군부 인사를 중심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사회적 자정 작용에 의해 걸러졌고,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 했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5·18 항쟁에 대해 소리 높여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2002년 이후 지만원과 같은 왜곡세력의 주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익명성과 무한 복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의 보급을 이유로 꼽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부터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2002년에 전체 가구의 70.2%에 보급될 정도로 대중화됐다. 이후에도 가구 인터넷 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는데 2012년에는 82.1%에 달한다. 스마트폰도 대중화되면서 현재는 대부분의 국민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인터넷 대중화는 5·18 왜곡 담론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증가, 그리고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의 심화를 가능케 했다. 이런 경향을 특정한 이벤트를 기점으로 더욱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다.
위 그래프는 ‘광주 폭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이다. 인터넷 상에 간혹 등장하던 ‘광주 폭동’이라는 용어가 의미있는 수준으로 관찰된 것은 2007년 8월이다. 2007년 7월, 5·18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된 것이 계기였다.

인터넷 상에선 ‘화려한 휴가’가 5·18을 미화한 것으로 실상은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왔는데, 한 언론사는 ‘화려한 휴가’를 본 누리꾼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이른바 전사모 회원 간에 댓글 전쟁이 붙었다며, "(전사모)회원들은 5·18을 공산폭동으로 규정지으며 전 전 대통령을 비호했다"고 댓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2009년 3월과 5월, 2011년 5월, 2013년 5월 시기별 최고점을 기록했다. 2009년 3월은 용산 참사와 이후 전개된 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던 시기이다. 당시의 게시물들은 ‘촛불 집회가 소수 불순세력이 주도했고, 과거 5·18도 불순세력이 주도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2009년 촛불 집회를 비판하면서 29년 전인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환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가 5·18 민주화운동 행사에서 5·18 항쟁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하면서, 5·18항쟁 단체들이 행사 참석을 거부했던 시기이다.

20011년 5월은 5·18 항쟁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극우단체들이 반대운동을 전개한 시기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등을 찾아가 “광주시민 학살은 북한 특수부대 소행”이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한 이들 단체들은 “5·18는 북한군이 개입된 폭동이었다”며  “잘못 알려진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 폭동’이라는 키워드로 가장 많은 게시물이나 뉴스가 검색된 시기는 2013년 5월이다. 2011년 12월 개국한 종편 <채널A>와 <TV조선>은 2013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즈음하여 탈북자 인터뷰를 마련했다. <채널A>는 5·18당시 북한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다고 주장하는 탈북자 인터뷰를 검증 없이 방송했다. 뒷모습으로 목소리만 나온 한 탈북자는 “광주 폭동 때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장, 부조장들은 (북으로 돌아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며, “전라도 사람들은 광주 폭동이 그렇게 들통 나면 유공자 대우 못 받는다”고 말했다.

<TV조선>은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는 임천용이라는 인물을 출연시켜,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다”며,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였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해당 방송으로 두 종편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적·사회적으로 공고화된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의미와 희생자와 참가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우려가 크다”며 중징계를 받았고 해당 종편은 사과 방송까지 했다. 하지만, 왜곡 발언이 담긴 방송 내용은 사진 또는 게시물 형태로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진 뒤였다.

● 지속적 왜곡…의혹을 넘어 '담론·논란'이 된 왜곡
위 그래프는 ‘5.18+북한군’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이다. 5·18 항쟁은 폭동이었다는 주장은 신군부에서부터 제기되었지만, ‘북한특수군 개입설’의 출발점은 추적 결과, 앞서 소개한 2002년 신문 광고였다. 물론 그 이전에 준비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외부로 공개돼 인터넷으로 추적 가능한 출발 시기는 2002년이다. 다만, 당시에는 큰 반향이 없었다. 그랬던 것이 2009년 10월에는 인터넷 상에 의미 있는 수준으로 관찰됐다.

계기는 탈북자들의 주장, 특히 북한특수군 출신 탈북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언’이었다. 2009년 6월, ‘자유북한군인연합’이라는 단체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5·18에 북한 특수군이 투입되었다는 내용의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책이 발간했는데, 이 책이 5·18에 북한군 투입된 증거라는 글이 블로그와 게시판 등에 광범위하게 게재됐다. 저자인 자유북한군인연합의 대표는 앞서 종편에 출연해 5·18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한 임천용이다.

하지만,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의 증언자로 등장한 탈북자 중에 실제로 1980년 5월, 북한 특수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사람은 없다. 김희송 전남대 교수의 "5·18 역사 왜곡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증언은 친구나 직장 동료 등에게 들었던 소문이거나 심지어 ‘군당비서에게 들었다는 아버지의 전언’ 등 전언의 전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북한이라는 특수성,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북한을 실제로 경험한 탈북자의 이야기라는 접근의 제한성을 바탕으로 이들의 ‘전언’은 사실로 포장돼 필요에 따라 소비됐다.

왜곡 과정을 분석해보면, 탈북자의 전언에 바탕한 ‘북한 특수군 개입설’이 대표적으로 소비된 시기가 2011년 5월이었다. 이 시기는 앞서 언급했듯 극우단체들이 탈북자들의 전언을 근거로 5·18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며 5·18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 유산 등재 반대운동을 펼쳤던 때다. 그리고 2013년 5월, 종편이 ‘북한 특수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방송하며 대량 유통됐다.

이런 결과를 종합하면, "5·18은 폭동"이라거나 "5·18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식의 주장은 보수 정권이 촛불 집회 등과 같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고 5·18 항쟁의 제도화가 진전되는 이벤트가 있을 때, 그리고 종편 출범 이후에 증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5·18 왜곡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실체는 뭘까?

● '극우 이론가 + 일베' 왜곡담론 생산과 유통 분업 구조
앞서 살펴본 그래프를 다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검색에 잡힌 게시글 대부분은 포털 내에 개설된 블로그나 카페가 아니라 별도 사이트에 올라온 글, 즉 웹문서다. SBS <마부작침>의 분석 결과, 웹 문서는 다른 사이트의 글을 공유해 게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위 그래프는 게시글 공유 정도에 따른 사이트별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화살표 방향은 사이트 간 글이 공유된 방향을 나타내고, 선의 굵기는 공유 빈도수에 비례한다. 이 결과를 보면 김대령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사이트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이라는 사이트의 글이 집중적으로 공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 사이트인 해당 사이트 글의 대부분은 운영자인 김대령과 지만원이 작성한 것으로, 주된 논지는 5·18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5·18 왜곡 담론이 지만원과 김대령이라는 인물에 의해 생산됐다면, 유통은 극우성향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 소위 ‘일베’를 통해 이뤄졌다. 광주 사람을 ‘홍어’라고 비하하거나 5·18 항쟁 당시 사망자가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사진을 두고 ‘시체놀이’ 등으로 비하해 물의를 일으켰던 ‘일베’다. 일베에서 ‘5·18 북한군 개입’ 게시글이 2012년 11월 30일 처음 등장한 이래, 2016년 5월 13일까지 809건이 게시됐다.

이는 해당 기간 동안 전체 웹문서 게시글의 88.6%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북한군 개입설’이 일베를 통해 대부분 유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베 내에서 5·18을 폭동이라고 규정하는 내용의 게시글도 2012년 5월 처음 등장한 이래 5월 13일 현재까지 1,832건이 게시 됐는데, 이는 해당 기간 전체 웹문서의 18.8%를 차지하는 수치다.

● 집단 극단화로 신념화 된 5·18왜곡

5·18 기념재단과 광주시를 중심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 대책위를 만들어 신고 센터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5·18 왜곡은 끊이지 않고 있다. 5·18 왜곡 담론 생산 및 유통자들은 ‘정부의 5.18 민주항쟁 결과 발표는 사실을 호도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같은 보수인사라고 하더라도 “5·18에 북한군이 개입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거나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으로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베 네티즌 5.18 묘지 참배 (ⓒ연합뉴스)단초는 있다. 지난 2014년 7월 11일, 5·18 항쟁을 폄하한 일베 회원 2명이 국립 5·18 묘지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5·18 역사왜곡대책위가 일베에서 5·18 항쟁 폄하글을 주도적으로 올렸던 이들은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하자, 이들 회원 2명은 일베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사과문을 올리고 5·18 묘지를 찾아 사죄한 것이다. 이렇게 5·18 왜곡 담론을 퍼뜨린 사람들에 대해 적극적인 사법처리 의지를 보이자, 일베 내에서 5·18에 대한 왜곡 게시글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해 오승용 전남대 교수는 “사법 처리가 능사는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로서는 5·18 왜곡 담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적극적 사법처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인터넷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주장을 강화하는 의견만 받아들이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집단 극단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5·18 왜곡담론’과 관련해서도 동일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논리나 사실로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사법처리를 통해 왜곡담론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와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한 5·18 항쟁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데도,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는 것이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대통령 비판 등 정부 정책 왜곡에 대해서 적극적·공격적으로 대응하면서도 5.18 왜곡에 대해선 손을 놓고 방치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2009년 이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하면서 정부가 논란을 부추긴 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서 야당 원내대표들이 올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자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또 불허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5·18이 다시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금까지 분석 결과는 5·18 항쟁이 현안이 될 때마다 5·18 왜곡도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18 항쟁 왜곡에 대해 정부의 대응은 어떠할까. 나치의 선전 장관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 부정되고, 그 다음 의심 받지만, 되풀이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고 했다. 어쩌면 이것이 5·18 왜곡 담론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사람들이 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