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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폭력 선수 살 길 마련한 대한체육회

[취재파일][단독] 폭력 선수 살 길 마련한 대한체육회
수영 스타 박태환이 리우 올림픽 출전을 둘러싸고 대한체육회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도핑 징계 만료 이후에도 3년이 지나지 않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현 규정이 '이중처벌'이냐 아니냐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논란이 되고 국가대표 선발 규정뿐 아니라 대한체육회의 정관을 비롯한 모든 규정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조사 결과 대한체육회 스스로가 폭력에 대한 징계를 대폭 완화한 것은 물론 규정 곳곳에서 처벌의 형평성을 상실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오늘(16일)부터 4회에 나눠 현 대한체육회 규정의 문제점과 행정의 난맥상을 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이 국가대표 자격 박탈입니다. 이렇게 되면 올림픽은 물론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등 모든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은 선수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지난해 9월 남자 쇼트트랙 에이스 신다운 선수는 훈련 도중 후배 선수를 때려 지난 3월 말까지 6개월 동안 출전 정지를 당했습니다. 이후 신다운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대표로 발탁된 뒤, 어제(15일)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했습니다.

신다운이 6개월만 쉬고 다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격 정지가 아니라 출전 정지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 4항은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폭력행위를 한 선수 또는 지도자 중에서 3년 미만의 자격 정지를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출전 정지는 1년이나 2년을 당해도 징계가 끝나면 국가대표가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자격 정지는 단 1개월만 받아도 징계 만료 이후 3년이 더 경과해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출전 정지 징계는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를 구제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지난 3월 21일 통합 체육회가 출범하면서 선수들의 징계를 다루는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폭력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폭력 선수에 대한 처벌 기준을 이렇게 강화했습니다.

경미한 경우: 자격 정지 1년 이상 3년 미만

중대한 경우: 3년 이상의 자격 정지 또는 영구 제명


즉 경미한 폭행을 한 선수도 최소한 1년 이상의 자격 정지를 받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징계가 끝난 이후에도 3년이 더 지나야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대한체육회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규정이 만들어진 지 고작 한 달 뒤인 지난 4월 28일 대한체육회 이사회는 폭력에 대한 처벌 기준을 대폭 완화한 수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한 달 만에 징계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폭력에 대한 처벌 기준은 아래와 같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경미한 경우: 1년 이상 3년 미만의 출전 정지 또는 1년 이상 3년 미만의 자격 정지

중대한 경우: 3년 이상의 출전 정지, 3년 이상의 자격 정지 또는 영구 제명 


처벌 기준이 이렇게 변경되면서 경미한 경우는 물론이고 중대한 폭력을 행사한 선수에게도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출전 정지를 당하면 징계 만료 이후에 바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도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대한체육회 스스로가 마련해준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다른 종류의 일탈을 저지른 선수와의 형평성입니다. 스포츠공정위원회 처벌 기준에 따르면 극히 경미한 성희롱을 저질렀을 경우에 1년 미만의 자격정지 징계를 내리도록 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A선수는 폭력을 행사해 1년간 출전 정지를 당했고, B선수는 가벼운 성희롱으로 1개월 자격 정지를 당했다고 가정하면 B선수가 실제적으로 훨씬 가혹한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A선수는 1년 뒤에 바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B선수는 규정상 1개월 징계 이후에도 3년이 더 경과해야 태극마크에 다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 규정이 형평성을 상실한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강도죄를 저지르고 실형을 받은 선수보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은 수영스타 박태환이 더 무거운 제재를 받을 수도 있게 돼 있습니다. 내일(17일)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제도상의 허점을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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