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 2명이 같은 날 한 사람은 자파 소속 젊은 의원들의 연구모임을 결성하고 다른 한 사람은 파벌의 수장으로 첫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열어 '포스트 아베'를 겨냥한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한 사람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廣島) 방문 확정으로 기세가 오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장 유력한 당내 포스트 아베 후보의 한 명으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담당상이다.
두 사람 모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임기가 2년 넘게 남은 데다 50%를 넘나드는 높은 인기를 배경으로 일본 정계를 대통령처럼 군림하고 있는 아베의 기세에 눌려 눈에 띄는 행보는 자제하고 있지만 수면아래서는 '포스트 아베'를 염두에 둔 행보를 시작한 형국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외상은 11일 도쿄(東京)에서 소속 파벌인 기시다파의 젊은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파벌의 역사를 공부하는 연구모임 창립 행사를 가졌다.
이날 사회를 맡은 다케이 ?스케(武井俊輔)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廣島)에 간다. 기시다 외교의 큰 존재감은 자랑거리"라며 그를 추켜 올렸다.
연구모임은 기시다파의 원류인 고치카이(宏池會)가 배출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1899∼1965),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스즈키 젠코(鈴木善幸·1911∼2004),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1919∼2007) 등 자파 소속 역대 총리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 자리였다.
차기 총재선거를 염두에 두고 파벌의 결속을 다지려는 생각에서다.
3년 반에 가까운 외상재임 기간은 주요 7개국(G7)의 현직 외교수장 중 최장수다.
작년 말 한국과 위안부합의를 끌어내고 존 케리 국무장관과 오바마 대통령 등 미국 정권 핵심들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키는 등 성과도 두드러진다.
5월 초 황금연휴를 이용한 동남아시아 순방 때는 자파 소속 젊은 현역의원 4명을 동행시켜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파벌 내에서는 "공(功)은 아베 총리가 차지해버려 (기시다 외상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불만도 나왔다고 한다.
유력한 포스트 아베 후보로 꼽히는 이시바 지방창생상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같은 파벌 소속이면서 먼저 자민당 총재선거에 나선 경험이 있는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전 농림수산상과의 후보 단일화도 넘어야 할 과제다.
하야시 전 농수산상도 기이하게도 이날 자신이 주최한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서 "언젠가 씨를 뿌릴 결심을 하겠다"고 말해 포스트 아베의 의욕을 숨기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 후에 내각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파 관계자는 "차기 총재선거 준비를 시작하는 게 좋다"면서 외상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기시다 본인도 주위에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속마음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인기가 높은 아베 총리를 지원해온 게 '포스트 아베'의 유력 후보로 꼽히는 큰 이유중 하나인 만큼 아직 아베 총리와의 관계설정과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전략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지방창생상은 작년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파벌을 출범시킨 후 첫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이날 열었다.
약 750명이 참석한 매머드 행사였다.
자민당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는 전통적으로 저녁 무렵 선 채로 대화를 나누면서 술도 나누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은 자리에 앉아 카레를 먹는 점심식사로 진행됐다.
"진지하게 정책을 생각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겨냥한 차분한 파티였다.
이시바파는 올들어 한달에 2번꼴로 정책연구회를 열고 있다.
'이시바 정권' 출범 때 내놓을 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달 하순에는 이시바씨를 지원하기 위한 초계파 정책연구모임인 '사와라비(고사리 새순)회'도 4개월 만에 다시 열린다.
포스트 아베를 향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는 모습이다.
다만 이시바 지방창생상은 이날도 발언을 매우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연설의 대부분을 지방 활성화에 관한 내용으로 채우면서 "전력을 다해 아베 정권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모두가 선출해 놓고 흔들어대는 짓거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높은 인기를 배경으로 장기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아베 총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속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기시다 외상이 이시바의 파티에 참석해 "자민당의 가장 새로운 정책집단이 이시바파라면 고치카이는 가장 오래된 정책집단"이라면서 "오늘부터 연구모임을 시작한다.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절차탁마하자"고 면전에서 라이벌 의식을 내비친 데 대해서도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이시바파 간부는 "기시다 외상의 발언은 차기 총재선거의 선전포고"라고 지적하고 "(이시바 창생상이) 최소한 차기 총재선거에서 잘 부탁한다"는 말 정도는 해야 했던 거 아니냐며 볼멘 표정이었다.
(연합뉴스)
일본 자민당 '포스트 아베' 물밑 경쟁 시작?
기시다 외무상·이시바 지방창생상 같은 날 계파 모임<br>아베 기세에 눌려 '말도, 행동도' 조심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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