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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전명규 ISU 기술위원 추천 안돼…정부 압력 있었나

[취재파일][단독] 전명규 ISU 기술위원 추천 안돼…정부 압력 있었나
역대 동계 올림픽에서 지도자로 수많은 금메달을 일궈내 한국 빙상의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 한국체육대학 교수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기술위원에 추천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한빙상연맹이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은 지난달 정상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를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으로 추천했습니다. 모두 4명이 후보 신청을 했는데 외부인이 포함된 추천위원회 심사에서 전명규 교수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지난 4월 22일에 열린 전체 이사회에서 전 교수의 ISU 기술위원 추천이 최종 승인됐습니다. 이날 이사회에는 대한빙상연맹의 수장인 김재열 회장도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빙상연맹은 후보 추천 마감일인 4월 25일까지 ISU에 추천 공문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한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말하기 곤란한 외부의 압력으로 추천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머리가 너무 아프다. 전명규 교수 본인도 죽을 지경이다. 압력을 가한 당사자를 공개하면 여러 사람이 너무 힘들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빙상연맹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은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2곳 밖에 없습니다. 두 기관 중에 하나가 압력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며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조영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SBS와 전화 통화에서 "전명규 교수 건은 전혀 모르는 얘기이다. 한마디로 금시초문"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체부의 고위 관계자 A씨는 "잘 모르는 얘기"라며 말을 흐렸습니다. A씨의 직속 부하이자 담당 실무자라고 할 수 있는 B씨는 제가 수십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명규 교수의 추천이 무산되자 일부 국내 빙상인들은 의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쇼트트랙 지도자 C씨는 "김재열 회장이 주재한 전체 이사회에서 최종 통과된 안건을 며칠 만에 '없던 일'로 만드는 힘을 가진 권력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밖에 없다. 쉽게 말해 정부 권력이 대한빙상연맹을 굴복시킨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C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빙상인들도 문체부가 개입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출범한 지 한 달밖에 안된 대한체육회는 이런 문제에 간여할 시간도,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전명규 교수의 추천은 왜 거부됐을까요? 대한민국 헌법부터 각종 규정까지 아무리 살펴봐도 전 교수의 ISU 기술위원 출마를 저지할 법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전 교수는 끝내 낙마했습니다. 결국 힘을 가진 기관이 이른바 '정무적 판단'으로 대한빙상연맹을 찍어 누르는 '갑질'을 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가 3관왕에 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전명규 교수는 모든 비난을 혼자 감수해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안현수의 귀화를 언급하며 "안현수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한국 선수단 임원이었던 그는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조용히 귀국해야 했고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에서 물러나는 등 일선에서 후퇴했습니다. 그 뒤에도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전명규 교수는 지난달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을 감안해 내가 모두 안고 가기로 했다. 윗분(박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으면 한국적 현실상 따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4월 15일 취재파일 '안현수 사태로 물러난 빙상대부 복귀' 참조)

국내 빙상계는 이번 사태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아랫사람들의 '과잉 충성'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국가원수로부터 국무회의에서 사실상 파벌주의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당사자가 다시 슬그머니 복귀하는 장면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는 것입니다.

복귀가 무산된 전명규 교수는 속으로는 무척 억울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항변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체대 교수이고 한국체대는 국립대학입니다. 한국체대 총장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반항을 했다가는 어떤 불이익이 닥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대한빙상연맹도 1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0여억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거부할 힘이 현실적으로 없습니다.

ISU 기술위원회 기술위원(Technical Committee Member)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월드컵을 비롯해 ISU가 주관하는 각종 국제대회의 경기 규정을 만들고 아울러 규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요직입니다. 그런데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대한민국 빙상은 자체 심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를 끝내 추천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다른 인사 1명이 리투아니아 연맹 추천으로 후보 등록을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자 법치국가입니다. 아무런 법적 권한도 갖지 않은 권력 기관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유형, 무형의 힘으로 한 개인의 권리를 유린해서는 안 됩니다. 전명규 교수의 추천을 거부한 정당한 사유가 공개적으로 제시되지 못한다면 이는 권력의 횡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비정상을 저지르는 당사자가 정부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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