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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상 공개와 신상 털기, 그 종이 한 장 차이

[취재파일] 신상 공개와 신상 털기, 그 종이 한 장 차이
“형벌의 본질적인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교화? 범죄 재발 방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지난 주 토요일,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조성호의 얼굴이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된 직후 나눈 선배와의 대화입니다.

살인 등의 혐의로 경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신청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그에게선, 흔히 경찰서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던 마스크나 모자가 없었습니다. 

법원으로 조성호를 호송한 경찰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시작된 지 1시간 반 만에 영장이 발부되자 그의 실명과 나이도 공개했습니다. 조 모 씨는 그렇게 조성호로 바뀌었고,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그의 얼굴과 이름, 나이와 음성이 모자이크나 음성변조 없이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 긴급체포 뒤 압송 때부터 ‘사실상’ 공개된 얼굴

지난 1일 안산 대부도 불도 방조제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의 하반신이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하반신 발견 지점에서 11km 떨어진 곳에서 곧이어 상반신이 발견됐고, 이를 토대로 경찰은 남성의 신원을 특정했습니다.

그리고 남성과 함께 살던 조성호를 그 함께 살던 집에서 긴급체포했습니다. 경찰이 4일 만에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한 덕에, 하루하루 진전된 수사 상황을 쫓아가며 중계하듯 보도하는 상황은 크게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보도는 조성호에 대한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더 집중됐습니다. 인천에서 긴급체포된 뒤 수사본부가 꾸려진 안산 단원경찰서로 압송되는 과정에서부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다른 피의자들과 달랐습니다. 차에서 내려 경찰서로 들어가는 조성호는 자신의 두 손으로만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습니다.

마스크나 모자, 혹은 점퍼 등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어떤 것도 그에겐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긴급체포 직후 안산 단원경찰서에서 열렸던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 지침에 따라 조성호의 얼굴을 특별히 가리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얼굴은 공개, 이름은 비공개… 애매한 원칙

조성호와 같은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얼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기초합니다. 특강법 제8조의 2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4가지 요건을 갖췄을 경우 피의자의 얼굴과 성명,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습니다.

①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②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③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것, ④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등과 같은 4가지 요건입니다.

경찰은 검거 당일 열린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조성호 사건이 이 4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된다고 보고,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그의 실명과 나이를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앞서 언급했듯 조성호의 얼굴은 구속영장 발부 이후라는 기준과도 무관하게 그 이전부터 간접적으로 공개됐습니다).

사실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피의자의 실명과 나이를 공개할 수 있다는 기준이 특강법 등에 명문화돼 있지는 않습니다. 경찰도 법 규정이 아니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 기준을 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때문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원으로 향하는 조성호의 얼굴이 그대로 방송에 노출됐는데도, 아직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 조금은 어색한 순간도 존재했습니다.

경찰이 얼굴은 사실상 공개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실명과 나이 같은 신상정보는 공개하지 않았으니 그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등으로 다시 가려줘야 하는지, 혹은 얼굴은 이미 공개가 되었으니 그대로 방송하되 이름은 ‘조 모 씨’ 혹은 ‘C씨’처럼 익명 처리해야 하는지, 만에 하나(이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에서 이와 같은 원칙을 같이 적용했을 때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을 때 혼란이 없지 않았습니다.

● SNS를 통한 ‘신상 털기’의 시작

그런 고민이 있은 지 1시간 반이 지날 무렵 조성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즉각 조성호의 실명과 나이를 공개했습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 하루 전날, 일부 언론에서는 조성호가 자신의 SNS에 올린 게시글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서 알려진 내용과, 공개된 신상 정보가 결합되면서 ‘신상털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성호는 범행을 저지른 뒤에도 태연하게 자신의 인생 계획을 언급하는 게시글을 자신의 SNS에 여러 번 올렸는데, 공개된 신상 정보를 통해 조성호의 SNS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겁니다.

기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긴급체포 이후 경찰서 압송 과정에서나 법원으로 향하는 길에 공개된 조성호의 얼굴뿐 아니라, 그의 SNS에 그 자신이 과거에 업로드했던 개인적인 사진들도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SNS 계정의 프로필 란에 기재돼 있던 조성호가 다녔던 학교와 운영했던 업체, 블로그가 낱낱이 알려졌고, 여자친구와 갈등이 있었다는 개인사나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의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가족과 여자친구, 지인들을 향한 비난도 이어졌습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조성호의 SNS 계정은 폐쇄됐습니다. 신상 정보 공개 이틀 뒤인 어제(9일), 경찰은 이미 공개된 개인신상 정보 외 가족이나 주변인 등에 대한 신상공개 및 모욕적인 글을 게시할 경우 명예훼손 및 모욕죄 등 혐의로 신속히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피의자 조성호와 그의 SNS
● 왜 조성호만?” 신상정보 공개를 둘러싼 찬반

조성호의 신상 공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흉악범에 대한 신상 정보 공개는 피의자 스스로의 재범 방지를 위해, 또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보호를 위해 국민의 알권리로서 필요하다는 주장이 첫 번째입니다.

“왜 조성호만?”이라는 질문도 많습니다. 비교대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최근 경기도 평택에서 벌어졌던 ‘원영이 사건’의 가해자, 원영이의 부모입니다. “왜 조성호는 신상정보를 공개하면서 원영이 부모는 공개하지 않느냐”는 건데, 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데에 있어서 형평성이 없다, 혹은 법률에 규정한 신상정보 공개 대상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한편 신상정보 공개가 사회에서 범죄 피의자가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박탈하고, 피의자 본인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어 지나친 인권 침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상 공개 대상과 시점 등 기준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경찰은 이번 사건에 있어서 조성호의 신상정보 공개는 특강법 취지에 맞게 적용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특강법이 규정한 4가지 요건을 충족했고, ‘원영이 사건’은 또 다른 법인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 비밀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5조에 따르면 아동학대 범죄를 수사한 사람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되며,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사들도 아동학대 행위자나 피해아동, 고발·고소인 등을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사항이나 사진 등을 보도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법이 그러하고, 또 거기에 맞게 했다는 말입니다.

● 매뉴얼 만들겠다”…무엇을 위한 신상 공개인가 고민해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인 조성호를 두고 특강법에서 신상정보 공개를 위해 요구하고 있는 요건을 충족하는지 따져봤고, 그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돼 신상정보를 공개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매번 그때그때마다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나 시점, 공개의 정도 등을 두고 논의를 거쳐 사안을 결정지어서는 곤란합니다. 형평성 논란과 함께, ‘신상 털기’ 문제를 또다시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어제(9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의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데에 있어서 공개 대상이 되는 범죄, 공개 시점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곧 어느 경우에 어느 시점에 신상 정보를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지를 두고 현행 법 조문에 맞게 매뉴얼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매뉴얼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신상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해 볼 때입니다.

형벌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똑같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인과응보’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이 죗값을 치르고 재사회화되어야하기에 형벌이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뉠 수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건 다시는 이런 범죄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엄정한 수사와 재판으로 피의자에 대한 처벌은 분명히 이뤄져야겠지만, ‘신상 공개’와 ‘신상 털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관계 당국과 시민 모두가 명심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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