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일반 시민들에게 지난 1일 전격 공개됐습니다. 낙향한 지 8년 만입니다. 노무현 재단은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앞두고 고인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시범 개방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개방 시간은 5월 한 달간 토, 일요일에 한해 오전 11시,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등 3차례 개방됩니다. 각각 한 번에 백 명 씩 인원도 제한됩니다.
일명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리는 사저는 대지 면적 1,290평에 건축 면적 182평 규모로 고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겁니다. 채광과 통풍이 좋고 주위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단아한 한옥 구조지만, 지붕은 기와를 올리지 않고 평면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이라고 노 전 대통령이 불렀다고 합니다.
● 노 전 대통령 사저는 아방궁?…“소박 검소했다”
8년 전 노 전 대통령이 고향인 봉하 마을로 내려와 입주할 당시 일부 언론은 사저를 ‘아방궁’이라며 ‘호화 사치스럽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사저를 둘러 본 대부분 시민들은 “호화롭기는커녕 너무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에 대통령 집 같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사저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차고지가 나옵니다. 이곳에는 노 전 대통령이 당선 뒤에 청와대로 가기 전 3개월 동안 타던 승용차가 보관돼 있습니다. 지금은 폐차돼 기록 말소된 차량이라고 합니다. 그 옆으로 소형 농사용 경운기와 손녀를 태우고 돌아 다녔던 4발 자전거도 있습니다.
차고지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면 집 입구 대문이 보입니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 ‘중정’이란 마당이 보이고 그 왼쪽이 경호동, 중앙엔 서재, 오른쪽엔 사저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경호하기 번거롭다며 경호동과 사저를 조그마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연결 시켰다고 합니다. 배려심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대문 밖에서 오솔길을 따라 10여 M 걷다보면 산딸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 나무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제주 4,3 유족회에서 2008년 11월16일 기증해 심은 나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 뒤 제주 4.3 항쟁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하고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낸 준 것이라고 합니다.
● 사랑채,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곳…채광과 풍광 좋은 소담한 공간
산딸나무를 지나 사저 안쪽 마당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와 거실이 보입니다. 사랑채를 먼저 가보죠 사랑채를 들어가면 한 눈에 밝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남향으로 지어져 인공조명 없이도 밝습니다. 유리를 많이 사용해 자연 채광으로 겨울철에도 충분한 난방효과가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가족이나 보좌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채 동쪽에는 네 쪽 병풍 느낌을 갖게 디자인된 창 너머로 사자바위 등 봉화산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 창을 통해 봉하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손님에게 내어 주기도 하는 등 노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랑채 남쪽으로는 저 멀리 뱀산이 보입니다. 뱀산에는 노 전 대통령이 움막을 짓고 고시공부를 하던 곳이 있습니다.
남쪽 벽면에는 고 신영복 선생의 ‘사람사는 세상’이란 글씨가 걸려 있습니다. 평소 고인이 가장 좋아했던 글귀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쪽 벽면에는 대통령 취임식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한 해외동포가 취임식장에 초대 받지 못해 입장할 수 없게 되자 근처 높은 빌딩에서 촬영해 보관해 오다 대통령 퇴임 후 보내온 것입니다.
● 서재 : 민주주의 발전과 진보의 미래에 대한 집필 활동 및 토론의 산실
노 전 대통령이 사랑채와 함께 가장 좋아했던 공간은 서재입니다. 이곳은 고인이 주로 독서와 집필을 하거나 보좌진들과 민주주의의 미래 등을 토론하고 회의했던 회의실이기도 했습니다. 친환경 생태농업 시행을 위한 보고나 회의도 이곳에서 이뤄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봉하마을을 방문한 많은 시민들의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갔던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한 두 차례 시작해서 점차 그 횟수가 늘어나 많을 때는 하루에 13차례나 나가며 시민들과 소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서재엔 노 대통령의 유품 전시, 책과 안경, 필기도구, 밀짚모자...
서재엔 노 전 대통령의 살아 생 전 유품이 많이 전시돼 있습니다. 고인은 독서량이 방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한 번에 한 권씩 읽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서재에는 역시 1천 권이 넘는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책상 위에도 읽던 책들이 여러 권 놓여 있었습니다.
평소 독서할 때 쓰던 안경과 필기도구 등도 놓여 있었고, 서재 옆에는 노 전 대통령이 시민들과 만날 때 사용했던 트레이드 마크인 밀짚모자가 옷걸이에 걸려 있습니다.
서재 측면 벽에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취임 선서문이 액자에 걸려 있습니다.
● 거실 및 침실 : 대통령 내외의 유일한 생활공간…시민과 소통하는 개인 작업실
안채는 대통령의 개인적 생활 공간으로 거실과 침실이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로 거실에서 개인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포털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을 직접 만들어 시민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직접 글을 올려 토론하는 등 끊임없이 소통작업을 했던 곳입니다.
●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유서를 썼던 컴퓨터도 보관
거실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컴퓨터 2대가 놓인 책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 새벽에 이곳에서 마지막 유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책상에 컴퓨터 모니터 2대를 설치해 사용했는데, 한 대는 글쓰기용으로 나머지 한 대는 자료 조사 및 찾기 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 침실은 사생활 공간…부분 공개
거실 오른쪽에는 노 전 대통령과 부인 권 양숙 여사의 침실이 있습니다. 너무 사적인 공간이라 이번에는 침대만 조금 보이도록 살짝 문을 열어 놓는 정도로 공개했습니다.
● 사저의 정원은 아담하고 소박…애착 많았던 매실 나무는 시름시름
사저 내 정원에는 기증받은 나무들이 제법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아담한 정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유독 애착을 가졌던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바로 매실나무인데요. 많은 분들이 사저에 나무를 기증하겠다고 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거절했는데, 진주 단성면을 방문 했을 때 유독 이 나무를 맘에 들어 하자 나무 주인이 흔쾌히 기증하여 지금의 이 자리에 이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 나무는 지금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나무 밑 둥에 껍질이 벗겨지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노무현 재단은 현재 치료 중에 있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합니다.
● 시민 반응…“사저 너무 소박 검소”, “노 전 대통령이 새삼 그립다”
사저를 둘러 본 시민들은 한결 같이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이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경남 진해에서 가족과 온 박혜진 주부는 “주위에서 저희가 그냥 볼 수 있는 집, 전혀 한 나라의 대통령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소박하고 소탈한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전에서 왔다는 주충익 씨는 “생각했던 대로 너무 소박하고 서민의 삶이 많이 묻어났던 것 같다“며, ”어차피 돌아 가셨지만 한 번 더 뵙고 싶기도 하고 많이 그립다“고 착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목포에서 왔다는 노은아씨도 ”아들이 영화 변호사를 본 뒤 존경심을 더 갖게 돼 같이 왔는데 여기 들어선 뒤 내내 그립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 “필생의 과업으로 ‘진보의 미래’ 저술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노무현 재단 오상호 사무처장은 노 전 대통령 생전 이 사저를 ‘지붕 낮은 집’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고 회고 했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집’을 철학 기조로 해 전통 한옥 양식이기는 하지만, 지붕도 기왓장을 올리지 않고 평면으로 평평하게 했다고 합니다. 오 처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필생의 사업으로 두 가지를 실천하려 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고향 김해와 가야문화 경남 부산을 아우러는 생태농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아 시민의 삶을 실천해 보려 시도했다는 겁니다. 두 번 째로 좋은 책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 주제는 국민의 더 나은 삶과 민주주의 발전, 진보의 미래에 대한 909가지 질문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꿈은 중도에 멈춰 섰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의 꿈으로 대신 이어져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단은 올해 한 두 차례 시범 공개를 더 한 뒤 내년 모든 사람들에게 정식 공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