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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집트에 대한 정부의 두 가지 시선

산업부 장관 방문에 즈음하여

다음달(5월) 4일 주형환 산업부 장관이 60개 기업에서 140명의 경제사절단을 동반해 이집트를 방문합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이집트 정부 관계자와 회동도 하고 양자간 경제포럼도 열고 한국 기업과 이집트 바이어간 1대1 상담창구도 마련됩니다. 한국, 이집트 간 외교적 관계 뿐 아니라 경제적 협력이 한층 두터워지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방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함께 이란을 방문하는 차에 가까운 이집트도 들러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습니다. 지난 3월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국의 경제사절단이 꼭 한 번 이집트를 찾아주길 요청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산업부는 설명합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요즘 같은 경제 침체기에 기업들에겐 해외 무역의 활로를 하나라도 더 뚫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마련된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더불어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이집트 현지에서 활동하는 기업인. 주재원들과 만납니다. 이집트에서 비즈니스 활동의 어려움과 애환을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저도 무슨 이야기가 나올 지 궁금해서 카이로의 한국 기업인과 주재원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연히 이집트의 해묵은 외환 문제가 화두가 아닐까 했는데 기업인 특히 상사 주재원들이 성토하는 어려움은 의외로 ‘우리 정부’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집트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에 이중성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개인적 판단입니다.
지난 3월 방한한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 '수출 보험' 중단에 거래 반토막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수입업자와 계약을 맺고 물품을 수출할 경우, 물품을 건네고도 대금지불이 너무 지연되거나 물품대금을 아예 받지 못할 경우 수출기업은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은 이런 대금 미납에 대비해 보험을 듭니다. 이걸 수출보험이라고 하는데 정부가 직접 운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무역보험공사’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이 수출보험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물품을 사는 바이어의 신용등급에 따라 보상한도와 가입액이 정해지면 사고 발생시 대금의 최대 90%까지 정부가 지급해줍니다. 이 수출보험을 믿고 한국 기업은 안심하고 물품을 해외에 수출합니다.

이집트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최근 이집트의 경제상황이 악화된 터라 수출 보험의 중요성은 어느나라에 수출할때 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무역보험공사는 돌연 이집트에 대한 수출보험을 아예 중단하거나 보상한도를 대폭 줄였습니다. 이집트와 무역거래는 정부가 보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용이 떨어지고 위험부담이 크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와 거래하던 한국의 수출 기업은 당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됐습니다. 수출보험이 안되니 그동안 거래를 이어 온 이집트의 수입업자와도 새로운 계약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혹시나 모를 위험부담을 한 두 푼도 아니고 많게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거래에 대해 기업이 다 떠안고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집트에서 물건을 사주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물건을 팔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타격이 심각합니다.

한 상사 주재원은 “수출보험 가입이 막히면서 지난해에 비해 수출거래 건수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고 하소연 합니다. 다른 주재원은 “이집트에서 시민혁명과 군부 쿠데타로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외환까지 엉망이 된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데, 수출 보험을 안 받아준다는 건 더 이상 물건 팔지 말라고 하는 거랑 무엇이 다르냐?”며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무역보험공사
● "보험 사고가 너무 많아"

무역보험공사도 기업들의 어려움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집트 정부의 극심한 외환 규제와 이로 인한 대금지급 지연과 미납 사고가 속출하기에 내린 조치라는 겁니다.

이집트의 외환보유액은 2011년 시민 혁명 이전의 절반도 안 되는 160억 달러 정돕니다. 한 해 수입액이 5백억 달러 정도니, 1년 안에 국가 지불유예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이집트 정부는 지난해 2월 달러의 현금 예치를 계좌당 5만 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 수입업자들은 돈이 있어도 수입품 대금을 송금을 하지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됐고, 결국 지난해 무역보험공사가 이집트에서 발생한 대금 미납 사고로 한국 수출기업에 지불한 보험금은 수백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수입업자 개인의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이집트 정부 차원의 조치라서 일괄적으로 보험가입 금지와 보상한도 감액을 단행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의  5만 달러 이상 외환 예치금지 조치는 올해 초 풀렸습니다. 특히 우리기업이 많이 수출하는 원자재의 경우 100만 달러로 예치 한도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수입업자가 이집트 파운드를 은행에 넣어 환전 송금을 할 경우 이집트 중앙은행에 달러가 부족해 송금이 늦어지긴 하지만 예전처럼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무역보험공사는 이집트에 대해 수출보험의 대상 범위를 줄인거지 완전히 금지한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은행이 보증을 서는 신용장( L/C ) 거래에 있어서는 여전히 수출보험이 가능하고 말합니다. 여신거래(D/P 신용거래, 무신용장 거래라고 하는데 은행 보증 없이 서로 믿고 물건과 대금을 주고받는 거래)에 대해 보험한도를 일부 해지나 감액을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집트 바이어의 신용도에 따라 보험한도를 조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 "여신거래 수출보험 사실상 전무"

이집트와 무역에서 여신거래와 신용장 거래의 비율은 8:2 정도로 여신거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입업자 입장에선 여신거래가 훨씬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경우 송금액의 100%를 은행에 예치해야 은행에서 신용장을 발급해줍니다. 은행이 떼어가는 수수료도 대금의 3~5%까지 됩니다.

수입업자 입장에선 2개 살 돈으로 1개 밖에 사지 못하는 신용장 거래보다 송금 수수료만 내면 되는 여신거래를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신거래는 요즘의 무역거래의 대세로 선진국에선 대부분 무신용장 여신거래가 이뤄집니다.

이집트에서 근무하는 한국 주재원들은 여신거래에 대한 수출보험이 무역보험공사의 말과 달리 사실상 완전 막혔다고 말합니다. 카이로의 한 종합상사 주재원은 “무역보험공사가 여신거래도 완전히 막은 건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수출보험 제한이 시행된 지난해 12월 이후 한 건도 여신거래에 대해 수출보험을 받아 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수입업자와 여신거래를 맺고 수출보험을 문의하면 새 수입업자에 대한 신용조사를 한다면서 시간만 끌고 감감 무소식이다. 결국 원래 있던 거래처도 날아가고 새로운 거래처도 만들 수 없는 지경”이라고 덧붙입니다.
이집트 항구
● "일괄 조치는 역차별"

또 다른 주재원은 “본사 담당자가 무역보험공사를 직접 찾아가 사정사정을 하면 여신거래도 마지 못해 들어준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뛰는 우리로선 그런 작은 가능성을 믿고 여신거래를 쉽게 추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여신거래를 할 정도의 기업이면 이집트의 재계순위 안에 들 정도의 대기업이나 그 자회사가 대부분인데 그들과 거래가 끊기면서  ‘큰 손’을 잃은 셈이라고 안타까워합니다.

또 다른 불만은 이집트와 거래하는 모든 한국 기업이 왜 일괄적으로 수출보험을 거부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기 회사는 지난해 이집트와 무역거래에서 대금 미납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는 데 이른바 ‘대금사고’를 친 기업과 똑같이 수출 보험 가입이 막히는 건 부당하다고 항의합니다. 대금 납부 실적에 따라 수출보험 가입 자격 기준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무역보험공사의 주장대로 ‘이집트 정부의 규제’로 ‘돈이 있어도 송금을 못한 수입업자’가 뒤늦게라도 청구권을 가진 무역보험공사에 대금을 송금했다면 수입업자의 신용등급을 다시 재조정하거나 복원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요청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무역보험공사도 인정하고 신용등급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현장에서 뛰는 주재원들에게는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 '왼손 따로 오른손 따로?'
주형환 산업부 장관 (가운데)
수출보험 금지 조치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을 돕자고 국가가 손해를 무작정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짚고 넘어 가고자 하는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입니다.

무역보험공사는 이집트에 대한 수출 보험의 일괄 금지와 감액을 단행한 이유가 이집트 수입업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외환 부족에서 비롯된 이집트 정부의 규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국가가 위험을 감수하며 기업의 무역거래를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집트의 지불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라 봅니다. 그만큼 이집트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거겠죠. 이런 상황이면 이집트와 거래를 트고 있던 기업들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거래를 이어가던지 아니면 발을 빼던지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대동하고 이집트를 찾습니다. 60개 기업과 1백 명이 넘는 기업인에게 이집트에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보라고 말합니다.

산업부 장관의 이집트 방문 동안 정부가 마련한 한-이집트간 1대 1 상담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기업들입니다. 남한테 손만 벌릴 줄 알지 정말 먹을 거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상황이 곤두박질 치고 있는 이집트에서라도 수출 길을 뚫어보려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 이번 기회로 이집트와 수출 계약을 맺었는데 막상 ‘수출보험’이 안 되는 사실을 알게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사실 ‘수출보험’은 대금 사고 한 방에 휘청거릴 수 있는 중소기업의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정책이었습니다.

왼손은 이집트를 돈을 안 주는 ‘신용 불량국’이라고 가리키면서 오른손은 그런 이집트가 새 수출활로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하면, 그 중간에선 기업인들은 무척 헷갈려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형환 산업부 장관의 방문 때 우리 정부는 한국에서 온 기업인들은 물론 이집트 현지의 주재원들에게도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방향, 그리고 이집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다른 걸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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