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대변자로 초대된 언론사 국장들의 표정은 비장하기도 하고, 상기되어 있기도 했다. 이들의 직종은 기자이기에 지금부터는 직책인 '국장'이 아닌 직종 '기자'로 지칭하겠다.
'여당이 1당을 내어준 참패 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첫 소통 행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오찬 간담회인 터라, 기자들은 총선 참패의 원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을 끈질기게 물었다.
"총선 결과를 지난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시는가?", "새누리당을 찍던 사람도 상당 부분 새누리당 외면했는데, 그 이유를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으로 들고 있다", "메르스, 세월호, 다 실망했는데 공천도 실망했다고 한다", "다시 여쭙는데 선거 민심이 단순히 국회 심판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박 대통령은 기자들의 추궁에 가까운 질문에도 '정권 심판론'을 인정하는 답변은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왜 '정권 심판론'을 인정할 수 없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했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인데,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을 맘껏 펼치고 싶어도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해주지 않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여당과 정부도 수레의 두 바퀴로, 같이 굴러가야 국정 운영이 원활하게 되는데 그것도 안 맞아 삐걱거렸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정책들을 야당이 여당이 확 하게 해주고, 결과를 비난한다면 차라리 여한이라도 없겠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번 오찬 간담회가 변화의 시작까지는 아니어도 소통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더 국민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을 많이 하겠다", "민생을 살리는 부분에서 더욱 국회와 협력을 해 나가겠다", "어떻게든지 서로 만나서 대화하면서 타협하고 협의하면서 국정을 해 나가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빠른 시일 내에 3당 대표와 만나고, 3당 대표와 회동을 정례화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참모들은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 3당 대표들만 동의한다면 회동 정례화는 앞으로 국회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는 기본 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사안별로 여야정 협의체를 꾸리는 것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자리에 그치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야권에서 언급하는 '연정'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내부에서 시끄러우면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이 와 가지고 같이 잘해 보자 하는 걸로 국정이 잘 될 수는 없다. 그게 제 경험이다. 실제 그렇다"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잘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성공의 경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총선 참패 이후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가 소통을 강화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첫 반응으로 나온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오찬 간담회'를 통해 박 대통령은 많은 말을 풀어냈다.
'시작'에 대한 옛말은 스펙트럼이 참 넓다. '시작이 반이다'라며 시작의 의미를 극대화한 말이 있는가 하면, '첫술에 배부르랴' 처럼 시작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기다림의 메시지를 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은 앞으로 줄줄이 따라 오게 될 무엇인가에 대한 희망을 주기도 하고, 차분하게 지켜봐야겠다는 기대 섞인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박 대통령이 보여준 첫 소통의 말과 행동도 그 모든 시작과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