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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폭스바겐의 '꼼수'…그런 '꼼수'라도 부러운 우리나라 소비자

[취재파일] 폭스바겐의 '꼼수'…그런 '꼼수'라도 부러운 우리나라 소비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연방지법은 폭스바겐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배상계획을 마련했고, 미국 환경보호청과 잠정 합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폭스바겐이 내놓은 배상계획은 배출가스 조작 장치가 장착된 모델의 소유주에게 차를 되사주고, 보상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소유주는 차를 폭스바겐에 팔고 보상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보상액은 1인당 1천7백 달러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보상금액과 차량 매입가격 등은 법원이 최종 합의 기한으로 제시한 6월 21일이 지나야 정확히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구체적인 보상의 범위는 미정이지만, 미국 소비자들에 대한 배상의 큰 윤곽은 나왔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 내놓은 배상계획의 시점이 참 공교롭습니다.

지난 1월, 미국 법무부는 미국 환경보호청을 대신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 법무부는 폭스바겐이 경유 차량 60만 대에 배출가스 조작 장치를 장착해(임의설정, 차량조작) 과다한 배출가스를 발생시키고(배출가스인증 위반) 관련규칙 보고를 소홀히 해(보고의무 위반) 청정공기 관련법 (Clean Air Act)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자동차 한 대당 3만 7천5백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싶으니 법원에서 벌금을 확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상 차종이 60만 대이고, 법규 위반이 4건이니 이론적으로 미국 정부가 폭스바겐에게 청구한 벌금은 약 9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07조 원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폭스바겐이 미국 정부와 소비자들에게 '사기'를 저지른 혐의도 조사하고 있다며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제시하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게 바로 이번 배상계획입니다. 이미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을 시인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재판은 벌금의 규모가 핵심 쟁점입니다. 그리고 형사처벌까지 이어질지도 관심입니다. 보통 이런 민사소송 형식의 재판에서는 피해보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중요한 감형 요소입니다. 결국, 폭스바겐이 피해보상을 하면 벌금액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형사처벌도 피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미국에서는 도요타 승용차의 급발진 사고가 문제가 됐습니다. 급발진 사고에서 완성 차 업체들이 항상 주장하듯이 도요타도 자동차 결함보다는 운전자의 과실이 급발진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배심원들이 사고의 원인을 제작사의 결함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자 도요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도요타는 급발진 사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주며 합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상금만 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도요타는 급발진 문제를 은폐한 것과 관련해 미 법무부에 벌금 1조 2천억 원을 내고 기소유예, 즉 형사처벌을 피했습니다. 폭스바겐의 이번 소비자 배상계획도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약 107조 원에 달하는 벌금을 최대한 줄이고,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왜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처럼 폭스바겐이 이런식의 꼼수라도 부리게 하지 못했을까요. 아쉬운 부분입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일단 두 나라의 법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일단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행정기관이 관련법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하고 부과된 과징금에 이의가 있으면 부과 대상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행정기관이 과징금을 부과하기에 앞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과징금의 최종 액수를 결정합니다.

이런 차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과징금 산출액이 낮은 수준으로 제한돼 있지만, 미국은 과징금 산출액의 범위가 넓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우리나라의 과징금은 매출액의 0.1%, 혹은 차종 당 최대 10억 원입니다. (과징금 상한액을 차종당 1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올리는 법안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폭스바겐 사태에 소급적용은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불법적인 이익의 최대 3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기'와 같이 형사적으로도 위법행위가 있는지도 법원에 판단을 요구하할 수 있고, 형사적 위법행위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는 실제 손해액을 넘는 액수를 '벌금'으로 청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까지 있습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며 압박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사태 발생 2개월이나 지나서 리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리콜에 중점을 두겠다는 정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두 줄짜리 리콜계획서를 받고 나서야 폭스바겐코리아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현행법상으로 물릴 수 있는 최대 과징금이지만, 리콜계획서도 접수하지 않은 시점에 141억 원이라는 과징금을 성급히 부과했습니다.

폭스바겐은 얼른 과징금을 납부했습니다.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한 비난이 나오는 이유들입니다.

때문에 폭스바겐의 미국 배상계획이 설사 꼼수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화가 납니다. 어쨌든 미국 소비자들은 정부 덕에 배상을 받게 됐으니까요. 언제 받을지, 얼마나 받을지, 아니 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인 우리나라 소비자들과 극명히 대비됩니다.

환경부는 배상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폭스바겐에 배상계획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배상시점은 리콜이 마무리된 이후가 되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환경부는 다음 달 중으로 폭스바겐이 리콜계획서를 다시 제출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폭스바겐 코리아도 비슷한 시기에 리콜계획서를 다시 제출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배상문제도 내부적으로 본사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에 제출되는 리콜계획서가 승인되면 6월 정도부터는 본격적인 리콜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리콜이 마무리되면 남은 건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배상문제입니다.
배상은 단순히 돈을 받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의의 문제입니다. 성의는 우리나라 소비자,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폭스바겐의 인식이기도 합니다. 그 인식은 비단 폭스바겐 사태만으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비슷한 사태에 영향을 줄 겁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 정부가 우리나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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