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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거철에 등장하는 고향기부제도 도입 주장

표를 위한 표(票)퓰리즘인가? 아이디어인가?

[취재파일] 선거철에 등장하는 고향기부제도 도입 주장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은 고향세 도입을 정책으로 내놓으려다 접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거주 지자체에 내는 주민세의 최대 30%를 5년 이상 거주한 지자체를 선택해서 낼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조세연구원 등에서는 일단 강제성이 있는 조세원칙에 어긋나고 고향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지방재원을 늘리는 효과가 적은 데다, 지자체간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등 반대의견을 내놓았고 한나라당은 결국 손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지자체 중심으로 고향세 도입 주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지난달 시도의회 의장단이 고향기부제도 도입을 중앙정부에 건의했습니다. 이렇게 선거철에 등장하는 고향기부제도, 표를 얻기 위한 표(票)퓰리즘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아이디어인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표(票)퓰리즘 = 인기영합주의인 포퓰리즘과 표를 합성시켜 ‘표를 위한 공약’의 뜻.

● 고향세? 고향기부제도?…세금을 더 내는 것? 기부금 내는 것?

일본에는 지자체에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공제해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고향기부제도’입니다. 세금을 공제해 주기 때문에 ‘고향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향세라고 하면 고향에 세금을 더 내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부금을 내는 겁니다. 그리고 낸 기부금만큼 세금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종교 단체 등에 기부금을 내면 연말정산시 세금을 공제해 주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그럼 왜 ‘고향세’라고 불리는지 설명이 좀 필요해 보입니다. 세금 공제는 정부가 납세자에게 거둔 세금을 다시 납세자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일본은 지자체에 기부한 기부금에 한해 소득세와 주민세의 10% 한도에서 세금을 공제해 줍니다. 소득세는 납세자가 중앙정부에 내는 국세, 주민세는 납세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지방세입니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납세자에게 받은 세금의 일부를 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기부금을 받은 지자체는 기부금을 받았지만, 결국은 사용할 예산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납세자에게 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중앙정부나 기부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자체는 일정 부분 예산이 줄어들게 됩니다. 일본은 이렇게 세금 공제를 통한 세수결손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부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고향기부제도는 지자체 사이에, 지자체와 중앙 정부 사이에 세수가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향세’라고 불리기도 하는 겁니다.
● 기부금이 제대로 쓰일까?

당장 드는 생각입니다. 일본은 이런 기부자들의 의혹을 줄이기 위해 기부금 용도를 기부자가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구체적인 사업 분야까지 기부자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업 분야는 교육, 인재육성, 마을 만들기 및 시민활동, 건강 및 의료, 복지, 스포츠 및 문화진흥, 환경정비, 지역 및 산업진흥, 어린이 육성, 관광, 재해지원 등입니다. 당연히 해당 사업 분야에 접수된 기부금 현황, 그리고 집행 내역, 결과물은 공개됩니다. 이러면 혹시 내가 낸 기부금이 호화청사 따위를 만드는 데 쓰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상당 부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지난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의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인 후쿠시마 현에 2011년에만 약 11억 엔이 넘는 기부금이 몰렸습니다. 그리고 기부금은 매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두섭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기획총괄부장은 바로 기부금이 일회성이 그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지자체에 대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고향기부제도를 통해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 행동이 계속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 고향세, 왜 도입하나?

큰 틀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는 어려운 지자체를 돕자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지자체의 재정난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목적이 더 큽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1.9%입니다. 지자체가 걷어 들이는 예산이 써야할 예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부족한 예산은 일단 중앙정부에서 교부금 형태로 지원받습니다. 그래도 모자라면 빚을 냅니다. 결국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거나 은행 문을 두드리며 운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중앙정부에게 예산 달라고 손을 벌리는 상황이니 지방자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자체별 격차도 심합니다. 서울은 재정자립도가 84% 수준이지만, 강원과 전남 전북은 2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나마 인구도 많고, 경기가 살아 있어 주택거래도 있고 자동차 등록도 많이 하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의 격차도 점점 심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도시집중화 등의 사회현상을 우리보다 먼저 겪은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지자체 위기라는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지난 2014년 총무장관을 지낸 미스다 히로야는 마스다 보고서에서 현재 일본의 인구감소 추세대로라면 2040년에는 일본의 절반이 넘는 896개의 지자체가 소멸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접한 일본 전역은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서 나온 정책 중 하나가 고향기부제도입니다.
● 국내 도입의 관건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세수 결손에 대한 ‘합의’

전문가들은 고향 기부제도는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본은 아이디어를 제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기부금 액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디어가 국내에서 제도로 시행되려면 일단 국내실정에 맞는 연구와 검토, 그리고 합의가 필요합니다. 국내에서는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공식적인 검토나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는 정책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중앙정부가 세수 결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중앙정부는 지난 2010년 지자체의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소득세의 10%를 지방소득세로 넘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정부도 예산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도의 도입의 관건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세금 공제에 따른 세수 결손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 ‘합의’하는 겁니다. 지금 지자체는 우리는 돈이 없으니 소득세, 결국 중앙정부가 걷는 세금에서 세금을 공제해주자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방세에서는 세금 공제를 해주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러니 중앙정부는 당연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겠죠. 그리고 일본처럼 거주지 지자체가 지방세수인 주민세에서 일부 공제를 해 준다면 서울과 같이 거주자가 많은 대도시 지자체도 그리 반기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합의’가 필요한 겁니다. 합의를 위해서는 정확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논의를 이끌어 갈 주체가 필요합니다.

일본 사례를 보겠습니다. 일본은 제도 도입에 대한 의견이 나온 이후 총무성 산하에 고향세연구회를 설치했습니다. 총무성은 우리나라 행정기관으로 따지면 행정자치부입니다. 그리고 연구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지방세법 개정을 통해 2008년 5월부터 시행했습니다. 결국 중앙정부가 중심이 돼서 제도 도입에 대한 검토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정부분 세수감소를 분담해 가며 ‘합의’를 통해 제도를 만든 겁니다.

전문가들은 고향기부제도는 지방재정 측면에서는 효과가 미비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지자체에게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장 기부금이 들어오고, 또 지자체가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특산물을 선물로 주면서 지역 특산물 시장이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도 활성화 되는 2차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입의 취지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실정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도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일부 지자체 연구원에서도 관련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이보다는 중앙정부 주도의 좀 더 심도 있는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음 선거에도 고향기부제도 도입 주장이 또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온다면 지적한 대로 검토와 연구가 꼭 있어야 할 겁니다. 지금처럼 충분한 검토와 연구 없이, 성공적인 일본의 사례만으로, 도입 취지에 대한 공감대만으로, 우리는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취지의 일방적인 주장만 한다면 아마 ‘표를 얻기 위한 공약’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그 제도는 영원히 도입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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