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거장이 된 악동' 장 폴 고티에

[취재파일] '거장이 된 악동' 장 폴 고티에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패션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에서 막을 열었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 미술관에서 처음 기획돼 그동안 8개국을 돌며 11개 미술관에서 관객들과 만나온 ‘장 폴 고티에 展’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 상륙한 겁니다.

‘장 폴 고티에‘는 패션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이름입니다. 18살에 패션계에 입문한 그는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무서운 아이)'로 불리며 1980년대부터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상투성과 편견을 깨는 기발함’으로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디자이너입니다.
1990년 팝 음악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마돈나의 원추형 브라 패션이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여성의 코르셋을 겉옷으로 만들고, 남성에게는 치마를 입혔습니다. “남성도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남성복을 여성복 못지않게 화려하게 꾸몄고, “여성도 남성처럼 돈을 편하게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복에도 안주머니를 달았습니다.

소재 면에서도 파격적이어서 재활용 소재를 고급의상 제작에 사용하는가 하면, 고양이밥 통조림을 변형해 팔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형적인 금발 미녀들의 무대였던 당시 패션쇼 런웨이에 뚱뚱한 일반인과 백발의 노인을 모델로 세운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영화와 발레, 오페라 등 공연 제작에도 참여해 전위적인 의상들을 선보였는데, 우리나라에선 1997년 개봉한 영화 ‘제5원소’와 1989년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 예순을 넘긴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패션계 거장의 활동상을 소개하다 보니 설명이 길어졌네요. 이렇게 패션계의 ‘악동’에서 이제는 ‘거장’으로 불리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개막 행사를 하루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분주하던 그의 전시 공간에서 진행됐습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준 활기차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자유분방한 태도는 그의 패션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소개하려 하는데, 이는 그의 답변은 전혀 악동답지 않지만 악동다운 패션을 선보여온 이유는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션계에서 그가 남긴 파격적인 족적들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시도들을 했는지 말이죠. 그의 대답은 간명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으며,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깨고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겁니다.

“두 눈을 뜨고 보기만 한다면 어디에서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아름다움만 인정하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걸 못 볼 뿐인데, 유감스러운 일이에요. 어떤 이들은 ‘이것은 패션이고 저것은 아니다. 이 패션은 뜨는 것이고 저 패션은 끝났다’고 말하는데,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상투적이지 않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는 패션에서의 ‘파격’이 삶의 다른 부분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격’이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놀라움을 좋아합니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당신이 그 안에서 균형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놀라움과 약간의 불안정함을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 것들이 발전을 가져다주고 우리의 시각을 넓혀 다른 새로운 것을 보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샤넬(Gabrielle Chanel)이 여성복에 주머니를 부착하고 핸드백에 끈을 달아 여성의 손을 자유롭게 했고,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처음으로 정장 바지를 선보여 여성에게 자유를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 걸 떠올리면, 그의 말은 더 잘 이해가 됩니다.

“패션의 변화란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와 같은 점진적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지’를 반영하는 것이죠.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게 될 지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그래서 패션은 사회와 함께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성공은 그가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를 성공적으로 간파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고티에는 우리시대를 한발 앞서가는 예술가일까요, 아니면 영리한 사업가일까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자신은 ‘패션을 사랑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사람’일 뿐이라며 개인적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9살 때 학교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성을 스케치했어요. 시키는 걸 안 하고 딴 짓을 한 걸 벌주기 위해 선생님은 제게 그 그림을 등에 붙이고 학교를 한 바퀴 돌게 했죠. 당시 나는 운동도 못하고 남자 애들에게 인기도 없었는데, 아이들이 그 그림을 보더니 ‘나도 그런 그림을 갖고 싶다’며 좋아해줬어요. 그 순간 전 이걸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계속 그림을 그리며 이 일을 사랑하게 된 겁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뿐 예술가도 사업가도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예술가인 동시에 사업가이기도 한 게 아닐까요? 패션은 인간의 허영을 이용한 산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사람들의 그런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completely right)'며 호탕하게 웃는 남자…분명한 건, 그의 파격과 도발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패션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