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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묘한 시기, 그리고 지극히 선택적인 브리핑

[취재파일] 오묘한 시기, 그리고 지극히 선택적인 브리핑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4월 8일 금요일, 오후 다섯시쯤 이었습니다. SBS를 비롯해 지상파TV의 주요 뉴스 시간이 8시입니다. 뉴스의 제작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5시라는 시점은 참 오묘합니다.

5시는 8시 메인 뉴스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7시나, 7시 반 처럼 뉴스에 아주 임박한 시간이라면 아무리 중요한 뉴스라도 짧게 전할 수밖에 없지만, 5시라는 시간은 급히 타전된 뉴스를 정신없이 제작한다면 분량을 늘릴 수 있는 시간대입니다. 

어제 일요일 오후 2시. 통일부와 외교부 당국자가 동시에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브리핑 제목은 똑같습니다. 대북 제재 '효과' 관련 브리핑입니다. 일요일은 보통 휴일이어서 기사량이 평일보다 적은 편입니다.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에는 신문이 나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한때 일요일에 기자회견을 자주 열어 '일요일의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죠. 그만큼 일요일에 발표나 브리핑을 하면 다음날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시간이나 시점을 떠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일단 첫날 통일부가 발표한 내용부터가 이례적입니다. 탈북자 정보는 당사자의 신변 안전 등을 고려해 비공개로 하는 것이 원칙으로 통합니다. 탈북자 기사가 많이 나오던 과거에도 특정 언론이 취재해 기사를 터뜨리면 마지못해 공개하는 식이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정부가 보도 유예나 자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먼저 공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이례적입니다.

공개 시점도 탈북자들이 입국한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탈북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마치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질문을 하면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달리 말하면, 본격적인 조사도 시작하기않은 시점에 서둘러 공개한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요.

정부는 이번 집단 탈북이 대북 제재효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 사실이 공개되기 직전 통일부 대변인은 대북 제재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4월 4일, 불과 나흘 전 공식 브리핑에서였습니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집단 탈북 사실과 함께 탈북자들의 사진을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정보들은 깜깜이에, 혼선 투성이였습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종업원들의 탈북 경로는 물론이고, 심지어 근무했던 식당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이 나온 이후에도 함구한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혼선이 빚어지는 것이 외교적으로는 부담이 덜하단 점을 인정했습니다. 지금의 혼선은 결국 의도적 방치라는 것입니다.

총선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에서 비공개 브리핑까지 한 것이 굉장히 오묘하긴 했지만, 일단 상황이 벌어졌으니 기사를 쓰는 것이 맞겠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부분도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통일부와 외교부, 두 부처의 대북 제재 '광내기'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진행된 두 부처의 브리핑에선 정확히 고르고 골라진,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들만이 공개됐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에 대해서만 너무 친절했다는 것입니다.

정작 혼선을 빚고 있는 정보들에 대해선, 외교부는 통일부가, 통일부는 외교부가 발표할 것이라면서 서로 미루는 모양새였습니다. '광내기'에는 뒤쳐질세라 경쟁적으로 나서고, 어짜피 답하지 못할 정보, '부담'은 상대 부처에게로 지우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탈북 종업원들의 증언 내용은 자세히 공개됐습니다. 모두 13명 가운데 7명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자단과의 대화는 내용 자체가 민감하다며 서면 자료 제공 없이 구두로만 진행됐지만, 이 부분에 한해서만 7 단락으로 구성된 진술들을 공개한 겁니다. 이날 제공된 자료는 이것이 유일합니다.

 o “최근 대북제재가 심화되면서 북한 체제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보고 희망이 있는 서울로 탈출하게 되었음.”

 o "해외에 나온 후 자유로운 모습을 동경하게 되면서 북한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생활을 모방하게 되면서 이탈을 결심함."

 o "해외 체류시 한국 TV 및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점차 인지하게 되면서 한국 국민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음.

 o “한국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처럼 친절하고 친부모 친형 같아서 오는 노정에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상당한 보람을 느낌.”

 o “한국 영화를 통해 한국의 현 실태와 문화수준을 알게 되었고 같은 민족끼리 빨리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탈을 결심함.”

 o “한국인들의 친절함에 다시 한 번 놀랐고, 노력해 대한민국의 딸로서 살고 싶음.”

정리하면 기사의 분량과 대국민 메시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 속에서, 원칙도 바꿔가며 정부가 공개하고 싶은 정보들만 공개한 셈입니다.

정부는 이번 탈북 사례를 공개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접촉이 가능한 해외 식당 문제여서 해외 언론이나 국내 언론을 통해 곧 공개될 것이고, 북한이 사실 관계를 왜곡해 먼저 발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른 정부 관계자들도 바보는 아니니, 미심쩍어하는 시선을 모르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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