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좋은 동네를 따질 때 무조건 효율적인 최단거리 동선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는데요, 개발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시대를 지나 점점 삶의 질과 건강, 환경을 중시하는 시대를 살게 됨에 따라 걷기, 보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걸어서 많은 것을 편하게 할 수 있고 그렇다 보니 더 많이 걷고 싶은 동네란 어떤 동네일까요? 남주현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걷기 좋은 동네에 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제로 우리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박소현 교수가 속 시원히 풀어냈습니다.
GPS 같은 장비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토대로 실증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해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펴냈는데요, 먼저, 서울과 미국 시애틀에 사는 주부들의 하루 평균 보행량을 비교했더니 흥미로운 통계가 나왔습니다.
둘 다 똑같이 30대와 40대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측정했는데, 서울 북촌과 상계 지역 주부들은 하루에 대략 39분을 걸은 데 반해 시애틀에 거주하는 한국계 주부들은 걷는 양이 6분에 불과해 7배 가까이 차이가 난 겁니다.
특히,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줄 때, 서울의 주부들은 86%가 함께 걸어서 갔는데 시애틀의 경우 21%만이 걸어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반찬거리 같은 소소한 물건을 사러 갈 때에도 서울 주부들은 75%가 걸어간 반면, 시애틀 주부들은 17%만 걸어갔습니다. 물리적인 생활 환경에 따라 주부들의 보행 행태가 결정된 겁니다.
국내에서 서울대 의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도 이와 비슷했는데요, 경사가 심한 서울 도심의 행당 지역 주부들과 평지에 자리 잡은 서울 외곽의 신도시 일산의 주부들을 비교했더니 길의 경사도에 따라 보행량은 물론 장기적으로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도도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연구진은 향후 아이들을 대상으로 정서적인 측면에도 차이가 생기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 교수는 경사진 골목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오래된 동네라 하더라도 주변에 상점 등 볼거리를 많이 조성하거나 하나의 길이 다양한 목적지로 연결되게끔 보행로를 개방형으로 설계하는 게 도시 계획의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야 걷겠다는 엄청나게 강한 의지가 없이도 자연스레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소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 동네에서 편하게 의식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을 했는데, 알고 보니 하루에 WHO에서 권장하는 30분 이상의 중강도 이상의 걷기를 결국은 하더라, 그런 동네가 좋은 것 같아요.]
꾸준히 걷다 보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꾸 보다 보면 애착도 생기겠죠. 동네는 잠깐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진부하지만, 중요한 일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즐겁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은 놀라운 선순환을 낳을 수 있습니다.
▶ [취재파일] "걷기 좋은 동네, 걸으니 좋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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