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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0살 소나무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뭄에 강한 소나무가 왜?

[취재파일] 200살 소나무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뭄에 강한 소나무가 왜?
● 200년 된 소나무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뭄에 강한 소나무가 왜?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 소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원래 이곳 지명은 울진군 ‘서면’이였는데, 워낙 금강송이 잘 자라기로 유명해서 작년부터 지명을 ‘금강송면’으로 바꿨습니다.

금강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지켜온 토종 식물로, 곧게 쭉 뻗은 황톳빛 줄기가 특징입니다. 나이테가 다른 소나무보다 훨씬 촘촘하기 때문에 목재로서 강도가 매우 강합니다. 왕의 관을 짜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숭례문 같은 문화재를 복원하는데 쓰이기도 하는 명품 소나무입니다.

취재진이 직접 경북 울진 금강송 군락지를 가봤더니, 고지대에 있는 소나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황톳빛 줄기가 하얗게 변했고, 솔방울과 솔잎이 모두 떨어져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200년 이상 된 굵은 소나무까지 고사한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금강소나무는 조건만 잘 맞으면 500년 넘게 살 수 있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지만 갑작스럽게 죽음이 닥친 것입니다.
2016년 4월 1일,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소나무 고사 현장
헬기를 통해 대략 조사해보니, 이 지역에서만 300그루 이상이 고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산림과학원은 혹시 유행하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재선충에 의한 죽음은 아니었습니다. 1차적인 원인은 극심한 가뭄 때문인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소나무는 원래 가뭄에 강한 나무입니다. 적은 수분에도 잘 버틸 수 있어서, 높은 산이나 바위 지형에서도 잘 사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200년 이상 살아온 나무가 가뭄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고사하고 있는 건 이상합니다. 산림과학원은 가뭄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겨울과 봄철 ‘이상 고온 현상’을 집단 고사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 기후변화로 나무가 정말 죽을까? 이유는 ‘균근균’

기후변화로 나무들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온도가 올라가니까 나무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순 있지만, 기후변화로 ‘정말’ 나무들이 죽는지가 학계의 관심사였습니다.

임종환 산림과학원 기후변화센터 센터장의 연구결과 소나무 집단 고사의 원인은 뿌리 근처에서 자라는 ‘균근균’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균근균'이란 용어가 조금 생소한데요, 소나무 주변에 자라는 수분 공급 미생물들입니다. 소나무가 가뭄에 강한 건 소나무 뿌리 주변에 자라는 균근균들이 주변의 물을 끌어다 소나무에게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닿지 않는 부분에서도 균근균들이 서식하는데, 이 미생물은 먼 곳에 있는 물까지 소나무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우물 같은 존재입니다.

이 균근균 덕분에 바위가 많아 수분 흡수가 어려운 지역에서도 소나무가 물을 효율 적으로 흡수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나무는 가뭄에 잘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균근균들은 소나무에게 물을 공급하고, 소나무는 균근균들에게 탄수화물을 공급하면서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균근균이 없는 겨울철에는 어떻게 할까요? 소나무들은 잎을 최대한 떨어뜨리고, 생명활동(대사활동)을 거의 중단해버립니다. 일종의 겨울잠을 자는 건데, 소나무는 균근균이 생성되기 이전까지는 겨울잠을 자면서 수분과 에너지 없이 죽은 듯 겨울을 버티는 겁니다. 봄철에 기온이 오르면 소나무들은 다시 잠에서 깨어납니다.  

산림과학원 연구결과 균근균은 땅속 온도가 8℃를 넘어야 증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땅속은 바깥 공기와는 달리 계절이 바뀌어도 온도가 천천히 오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소나무가 자라는 중북부 지역은 4월이 돼야 온도가 8℃까지 오릅니다. 따라서 소나무는 4월 정도에 잠에서 깨야 균근균과 공생하며 가뭄을 견딜 수 가 있습니다.

문제는 겨울과 봄철 이상 고온이 잦아지면서 소나무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기를 착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소나무는 바깥 공기의 온도를 기준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4월은 돼야 균근균이 활동을 시작해야 되는데, 2,3월에 고온현상이 나타나면서 소나무들이 활동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죠. 활동을 시작하면 당장 물이 필요한데, 물을 모아줄 균근균이 없는 시기에는 소나무들이 깨어나면서 말라죽는 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바깥 공기는 땅보다 훨씬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급격하게 상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3월 4일에도 서울을 포함한 전국기온이 20℃를 넘는 이상 고온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과거보다 이상고온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서 최근 들어 고사피해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2년, 2007년, 2009년, 2014년 등 2000년대 이후에 소나무 집단 고사피해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소나무, 잣나무, 해송 등 100만 그루 이상이 대규모 고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재선충 피해가 아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확인됐습니다.
산림과학원 연구 결과 소나무와 공생하는 균근균은 땅 속 온도가 8℃를 넘는 조건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중북부 지방은 4월 경에 균근균이 형성되는데, 기후변화로 소나무들이 균근균 생성 이전에 활동을 시작하면서 말라죽고 있다.
● 토종 식물 구상나무도 집단 고사, 토종 침엽수 피해 증가 우려

소나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도 지리산과 한라산에서 집단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많은 침엽수인데, 지리산 1400~1900m 구간인 고산지대에서 집단 고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3년부터 구상나무 고사현상이 지리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고, 멀쩡한 구상나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사가 빠르게 진행 되고 있습니다. 소나무처럼 정확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환경단체들은 구상나무 고사현상도 역시 기후변화에 의한 영향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토종 침엽수들은 점점 보금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북한이나 러시아 기후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지면서 토종 침엽수들이 북쪽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란 견해도 있지만, 침엽수들은 활엽수와는 달리 기후변화에 쉽게 적응을 못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이 땅에서 조상들과 함께 자란 토종 침엽수들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어떤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200년 된 소나무'가 기후변화로 죽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인류는 에어컨과 난방을 하며 기후변화에 무감각해졌지만, 다른 생물들에게 기후변화는 여전히 치명적이고 큰 위협이라는 것이 이번 연구를 통해 또 드러났습니다.

과거 무분별한 벌목으로 산림을 훼손하는 것이 인류였다면, 이제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기후변화로 수만 년을 지켜온 토종 자생식물들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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