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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원래 수사도 그렇게 하시나요?

'주식대박' 검사장과 법무부의 어설픈 대응

[취재파일] 원래 수사도 그렇게 하시나요?
대검과 서울 중앙지검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굵직굵직한 사건과 이른바 '거물급' 피의자의 소환 조사 과정을
수없이 지켜봤습니다. 특히 중량감 있는 피의자의 경우 보통 아침 10시쯤 검찰에 출석해 새벽까지 조사를 받고 귀가합니다.

이런 날이면 출입기자들도 꼼짝 없이 검찰청사를 지키다가 조사를 받고 돌아가는 피의자에게 마이크를 대며 묻습니다.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국민들에게 한말씀?"
 
물론 피의자의 성향에 따라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정답'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다 해명했습니다." 입니다.

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설 정도의 인물들인데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시에 기자들도 똑같이 찍어낸 듯한 단어를 섞어 기사를 씁니다.

"검찰은 어제 누구누구씨를 소환 조사했습니다. 15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습니다. 무슨무슨 혐의에 대해 집중 추궁했습니다." 등등의 문장이 마구 섞여들어갑니다.

어찌보면 이제는 식상하게 들리는 이 문장들 속에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강도 높은', '집중 추궁'이라는 단어입니다. 물론 참신한 글쓰기 노력을 게을리 하는 기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사실 검찰의 피의자 소환 조사를 표현하는 단어로 '강도 높은', '집중 추궁'이라는 표현처럼 적절한 말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계좌 추적과 압수수색, 다른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해 들어오는 검찰의 전방위 압박은 진정한 '집중 추궁'이란 무엇이고, 어떤게 '강도 높은' 조사인 지 알려주는 검찰의 궁극의 '기술'입니다. 또한 서슬퍼런 검찰의 위상을 높여주는 훌륭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증거와 논리로 무장한 검찰 조사가 그만큼 신뢰할 만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습니다.

법무부의 주력이자 핵심 인력들은 바로 이런 검사들입니다. 이번에 120억 원이 넘는 '주식 대박'으로 논란이 된 진경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역시 검사, 그중에서 검사의 꽃이라는 '검사장'입니다. 수많은 수사 실적을 자랑하는 검사장이 자신의 주식 논란에 대해 내놓은 해명은 "아는 지인한테서...", "가격은 주당 수만 원 정도에..."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진경준 검사장을 '피의자'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던 검찰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어설픈 해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의 강도 높은 집중 추궁이었다면 이런 해명이 과연 통했을까 싶지만 이에 대한 법무부의 입장은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집중 추궁의 '달인'들이 모인 집단에서 내놓은 해명이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 논란 끝에 지난 토요일 진경준 검사장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제 법무부가 내놔야할 입장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진경준 검사장의 사표 수리 여부입니다. 이대로 사표를 수리할 경우 진 검사장은 '공인'이 아닌 '사인'의 신분으로 바뀝니다.

'사인'의 신분이 되면 '주식대박'에 대한 '집중 추궁'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2005년 넥슨 장외주식 8천 5백 주를 누구한테 얼마에 샀는지, 이 과정에서 일본 상장 계획과 일본 넥슨 주식으로 교환 결정 예정 사실은 알고 있었는 지 등등의 의혹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도 어려워지게 됩니다. 

주식 좀 안다는 '선수'들은 2005년 당시 넥슨의 주식의 가치를 이미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메이플스토리와 카트라이더가 대박을 친 상황이었고, 갖고만 있으면 언젠가 상장이 예정돼 있는 주식이었다고 합니다.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투자 수익이 보장되는 '카드'였다는 겁니다.
그런 만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주식을 진 검사장은 8천 5백 주나 샀습니다. 일본 상장 전에 주식 분할이 돼 80여 만 주가 됐고, 당시에는 규모를 알 수 없던 투자 수익은 12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간단한 몇 가지 사실만 규명하면 되는 일인 듯 싶지만 검사장 본인도 법무부도 의지가 없어보입니다. 그들이 잘 하는 강도 높은 조사까지도 필요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결국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진 검사장의 재산증식에 대해 '강도 높은' 재검증을 예고 했습니다. 이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모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조사와 수사의 달인들이 모인 집단의 체면이 구겨지는 건 피할 수 없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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